12월 6일 새벽말씀
전도서 5: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 참 많습니다.
적지 않은 능력을 주셨고 이렇게 기도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능력을 주셨기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 중 하나가
바로 말하기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말을 배워가는 과정을 보면
정말 신기하죠. 어떻게 저런말을 배웠을까. 들었다고 어떻게
조합해서 말을 할까. 부모가 아이에게 10개를 알려줘야 10개를 말하는게 아니더라구요. 부모가 10개를 알려주면 아이는
그 10개를 마중물 삼아 100개 1000개를 말합니다. 한 개를
알려주면 그것을 적용해서 더 풍성하고 창조적인 능력을
보여준다는 것이죠. 이처럼 말하기 능력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 맞습니다. 부모가 다 해주지 않아도
그 이상의 것을 하는 것을보면
하나님이 심어 놓으신 말하는 달란트가 있다는 것이죠.
본문의 말씀은 말에 대한 진리를 들려줍니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와 말은 무엇인가.
말은 어떻게 활용하는 것인가에 대해
오늘 본문이 이야기 하고 있죠. 말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전도서 기자는 5장에서 그 말의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1절에 보면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해드리고
어떤 행동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듣는 것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듣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섭리,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때에 심어놓으신 질서가 바로
듣는 것입니다. 들어야 인간이고 들어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섭리대로, 의도대로 존재하고 또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듣기는 참 중요합니다.
사무엘상 15장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말하는 순종은 들음입니다.
무언가를 행하기전에 우리는 들어야합니다. 듣지 않고
순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들어야 행할 수 있고 들어야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내면에 영적인 그릇이 있는데요.
이 그릇에 주님의 거룩한 진리로 차곡차곡 채워져야 비로소
우리의 삶에서부터 진리와 생명과 긍휼과 사랑이 흘러나오는
겁니다.
input이죠. input이 되어야 우리는 비로소 output,
무언가를 행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들어야 말할 수 있습니다. 듣지 않고 어떻게 말하며 어떻게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겠습니까.
듣기가 우선입니다.
2절 말씀을 보시면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말을 줄여라 입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데요.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아라
말을 적게 할것이라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죠.
말을 적게하라. 말을 함부로하지 말아라 .듣기는 많이 들어도
말을 적게하라고 합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세울수도 있고
말 한마디로 사람을 10년, 20년, 평생토록 짓밟아 놓을 수도
있기때문입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말의 의미, 말의가치를 그렇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말할때가 있습니다.
함부로 상처를 주거나 함부로 실언을 합니다.
말 한마디로 세상을 세우기도하고 무너뜨리기도합니다.
기억하시길 원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많이 들어라
이것이 첫번째 메세지입니다.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
우리가 말하기전에 백마디 말씀, 천마디, 만 마디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많이 듣고 적게 말할 수록 그 말은 진득한
생명의 언어가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일상, 세상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듣기보다 말하기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듣지 않지요.
그래서 요즘 비꼬는 말이 '설교하지마. 강조하지마.' 이겁니다.
오늘날 시대문화예요.
듣기는 게을리하고 말하기는 무분별하게 하지 않습니까.
들을 시간은 없고 말할 시간만 확보해서 많이 말하려고 하지요.
여러분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요.
말 한마디 하기전에 우리는 얼마만큼의 말씀을 듣고 있는가?
복음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인데요.
예수님을 보시면 해가 지면
홀로 산에 기도하기위해 가십니다.
대표적인 기도가 겟세마네 기도로 우리는 기억하는데요.
그곳에서 기도의 방점은
듣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잔을 할 수만 있다면 지나가게 하옵소서
말씀합니다. 먼저 이야기하지만 결론은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나님의 원대로 하옵소서
내 소원을 말하는 것이 기도의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자기의 소원을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결론은
바로 성부의 소원을 듣는것, 하나님의 마음을 귀담아 듣는것
그것이 기도의 결론이었습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듣기라고 고백할 수 있겠지요.
하나님의 언어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으로 우리 영혼을 가득
채우는 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밤이 새도록 하나님의 언어로 자기의 영혼을 가득 채운뒤에
그 뒤에 세상속으로 나아가시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과 언어로 가득 채운다음 그때 비로소 세상으로 들어가고 사람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죠.
그러니까 생명의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들었기에 말할 수
있었음을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십니다.
신앙의 핵심은 말하기 연습이 아닙니다. 듣기연습,
듣는것. 잘 듣는 사람이 결국 승리합니다.
전도훈련에서는 많이 말하는 것을 시키지만 진짜 전도는
어떻게 멘트를 하고 어떻게 이어나가는지 훈련받는데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먼저 주님의 사랑을 담아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난 경험, 경험이 있어야 주의 말씀.
그 언어가 터져나오는 것입니다. 듣고 나서 말할 때 진리의 언어, 생명의 언어, 영광 가득한 농도 높은 원액과 같은 언어가
되는것입니다.
설교는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먼저 듣기입니다. 설교에서 말하기가 10이라면
듣기는 90 이상 일 수 있습니다.
들어야지 우리의 언어는
비로소 원액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을 살리는 말, 회복시키는 말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예요. 서두에서 언급했듯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능력 중 하나가 말하기 인데요. 그 말을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겠습니까. 아담이 처음에 하와에게 했던 말이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너는 나다.
내가 곧 너다. 그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나 죄를 범했을떄 그입술은 변질되죠.
왜 선악과를 먹었어. 하나님이 내게 있게 하신 여자 때문에
먹었습니다로 말이 바뀝니다.
이처럼 한 마디로 사람을 세울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어의 능력을 주신 이유는
회복시키라는 것입니다. 쓰러져 있는 영혼을 붙잡아주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말하기에 집중할때가 아니라 듣기에 집중할때
비로소 진정한 언어의 말하는 통로가 될 수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기도합니다. 기도는 듣기 입니다. 하나님의 음성, 그분의 섭리,
그 분의 영광을 깊이 듣는 새벽시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