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새벽말씀
다니엘11:20~35
오늘본문 말씀은 북 왕국과 남방 왕의 계속되는 다툼과
그 사이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당하는 고난에 대한 내용입니다.
본문은 헬라왕국이 4개로 나눠진 이후
북방의 셀레우코스왕조와 남방의 푸톨레마요스 왕조가
전쟁한 과정을 바탕으로 합니다.
두 왕조에 속한 왕들이 서로 쟁탈전을 벌이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이런 역사적 예언을 통해서 인간의 역사는
자신이 살기위해 남을 이용하며 짓밟고 배신하는 것이
상식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자기 살기위해 남을 죽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세상왕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갑니다.
세상왕국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싸움을 벌이지만
그 싸움의 불똥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떨어집니다.
오늘 말씀 31절에 보시면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것이며
다름아닌 북방왕의 군대가 하나님의 성전
거룩한 성전을 덮쳤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나 완악했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제사를 폐하는
일을 범합니다.
그리고 가증한것
즉 거룩한 곳에 어울리지 않는 악하고 비천한 것을
성전안에 세웠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가장 거룩하고 귀하게 여기는 성전,
자기 생명처럼 지킨 성전을 보란듯이 짓밟고 더렵혔던것입니다.
이 성전은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고 뿌리깊은 역사를
지닌 곳이며 많은 기억을 가진 곳입니다.
이런곳을 더럽혔다는 것은 너무나 큰 파괴력을 가진 행동입니다.
고대 전쟁에서는 대표하는 장수가 죽임을 당하면
그 군대의 전체병력이 전의를 상실합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도 대표자들의 싸움입니다.
골리앗이 지면 그 나라 모든 군대가 폐하는 것이지요.
성전의 짓밟힘은 주님의 백성들의 내면에 가장 큰 실패감을
안겨주었을 겁니다. 살아야할 의지를 상실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32절에서 참 중요한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32절 하반부에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세상의 권력과 폭력이 강력한 힘을 뿜어내고 있는 때에
여전히 건실하게 존재하는 자들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성전이 더러워지고 무너졌을 그때에도 강하게 용맹을 떨치고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그런 상황에서도 건실하게 우뚝 서있있었다 라는 증언입니다.
히브리세계에서 '안다'라는 말은 지식의 문제, 이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경험의 문제, 인격의 문제입니다.
부부가 결혼해서 서로 깊이있게 알게되는
그정도의 앎이 '안다' 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외워서 아는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아담이 하와를 보면서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고백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자기의 모든것으로 여기며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자'는 바로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세상 모두가 주님의 백성을 박해하고 짓밟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자들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흔히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여기에 한가지를 더해야합니다. 바로 '지신'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더해야합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심어줘야만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아는지식,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있으면 그 자녀는 언제 어디서든지
승리할 수 있는 것이지요.
다니엘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었습니다.
얼마전에 살펴보았던 다니엘의 기도를 보면
다니엘은 짐승의 나라에 살고 있지만 그 나라에 현혹되거나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거룩한 지식이
짐승의 나라가 몰고 오는 모든 두려움과 위협을
능가하게 했던 것이지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을 아는 자가 강하다고 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수 있을까요?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여러분이 한 사람을 아는 것도 평생이 걸립니다.
남편을 아십니까? 아내를 아십니까?
아직도 잘 모르시겠지요. 자녀는 더더욱 모릅니다.
한 사람. 사람이 사람을 아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피조물이 하나님을 어떻게 안다는 것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우리 노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노력에 달린 문제입니다. 우리가 노력하기전에
하나님이 먼저 노력하셨음을 기억하시기바랍니다.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며 말씀도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노력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상상을 초월한 노력,
인간이 되시는 그 정도의 노력,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있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 수준, 인간의 모습으로 와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는 자 가 될 수있게 되며
하나님을 아는 기회가 활짝 열린겁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하나님을 아는 자리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예배의 자리가 그렇고 기도의 순간이 그렇습니다.
새벽에도 여러분의 영적 창문을 활짝 여시고
다니엘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했듯이
이 시간이 그런 기도의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많은 업무와 알아야할 세상의 것들이 많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것,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서
오늘도 수많은 짐승들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앞에서도
승리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