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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중앙교회

11월15일 새벽말씀

김선미2022.11.15 15:2611.15조회 수 3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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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새벽말씀

다니엘7:1~14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꿈을 꿉니다.

시대적으로 조금 거슬러 올라간 시점이지요.

7장에서 이전의 꿈을 다니엘이 이야기합니다.

이 꿈은 크게 두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첫번째 부분은 

네 짐승에 관련된 꿈입니다. 

고대 종교문헌에서 바다는 긍정적 공간이 아니며 혼돈,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 이해되었습니다.이처럼 혼돈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다라는 곳에서 큰 짐승 넷이 잉태되어 나왔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짐승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기이하고 험악합니다.

이것이 꿈의 첫번째 부분입니다.

다음 본문에서 나타나겠지만 이 네 짐승은 

세상에 나타날 강력한제국 (바멜론,바사,그리스,로마)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지요.

 

두번째 부분은 

짐승의 나라가 아니라 반대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네 짐승의 모습으로 두려워진 우리의 마음이 다시 새로와지고

정화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짐승의 나라를 어떻게 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11절에 짐승이 죽임을 당합니다.강력하며 대적이 없어 보였던 그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시체가 불에 던져지죠.

12절에서는 그 남은 짐승들도 

모든 권세를 상실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짐승의 나라를 이처럼 붙잡고 좌우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본문은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을 묘사하며 마무리하는데요. 믿음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13~14절말씀

내가 또 밤에 환상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구름을

타고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라

 

짐승의 나라는 어둡고 침울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권세의 나라를 묘사하는 이 말씀은

영광 그 자체입니다. 

이 모습을 다니엘이 꿈을 통하여 본 것입니다.

다니엘은 꿈을 꾸는 자, 꿈을 가진 자이지요. 

그 꿈이 다니엘을 강하게 만듭니다. 그의 학식과 지식이

그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꿈과 환상이

다니엘을 강력하게 만들지요. 

다니엘이 꾼 꿈이 무었입니까?

세상에는 강력한 짐승들이 많지만 그 모든 것을 장악하며

그들에게 철퇴를 날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이지요.

이런 꿈이 있었기에 더 강한 분이 누구인지 알았기에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포기할 수

없었던것입니다. 진짜 강한 분이 누군지 알았기 때문에

그는 두려움 없이 나갔던 것입니다.

누가 강한 자 입니까?

큰 소리를 내고 자기뜻을 관철시키는 자를 세상에서는 강한 자 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보면 강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증언 이지요.

이들은 네 짐승들의 운명과 같습니다.

한때는 강한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고 강력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 결말을 보십시요.

강한 자는 강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 새벽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 

강하신 하나님을 아는 자가 강한 자입니다.

자신에게 강한 힘이 있는자가 아니라 강하신 하나님을 아는 자가 강한 자입니다.

약한 자는 세상이 짐승처럼 날뛸때 

짐승처럼 되려고하는 자 

그들을 닮아 가려고 하는 자가 약한 자입니다.

세상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며 협박하고

만사를 좌지우지할때 나도 그들과 같은 모습을 갖추려고 한다면 

그런 자가 오히려 약한 자라고 성경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보십시요. 그분의 강함이 언제 극명하게 드러났습니까?

바리새인들을 꾸짖던 회당, 장사하던 사람들을 채찍질하며

내쫓던 성전도 아니며 예수님의 가장 가장 강력한 모습은

가장 약해보이는 곳.

골고다 언덕 십자가입니다. 

가장 어두운 무덤 속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가장 강력한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그때 예수님은 부활하셨지요. 

즉, 가장 약할때에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되어야합니다.

세상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낸다고 우리도 그같이 한다면

그것은 우리도 세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우리는 잘 기억해야합니다. 

힘을 준다고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힘을 빼는 것이 더 고차원적인 영성이며 힘을 빼는 것이

더 어려운 고급기술입니다.

예를 들자면

테니스 라켓. 헤드 끝의 무게를 느껴야 강력한 볼을

칠 수 있는데요. 그러려면 팔의 힘을 빼야하죠.

팔에 힘을 꽉주고 있으면 그 라켓의 무게를 느낄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온종일 힘을 꽉주고 살면 

우리 인생속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강함을 느낄수가 없습니다.

우리 힘을 빼야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강함이 느껴지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야한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때 베드로는 힘을 주며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하지 않았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다고 그것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기의 힘이 많이들어갔을 그때에 베드로는 

가장 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셨고 

너도 갈릴리 사람 저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말하는 여종앞에서 두려움에 뒷걸음 치게됩니다.

그렇게 힘을 주었던 베드로가 '너도 에수와 함께 있었지?' 

그 말앞에 뒷걸음치며 약해집니다. 그 후에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통곡합니다. 그때가 바로 베드로가 강력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예수의 부활을 보게되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로서 베드로는 대표적인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힘을 준다고 얼마나 강력해지겠습니까

한계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을 기억하십시요.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우리의 몸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을 두려워 말고 영혼까지도 멸망시킬 수 있는 그분을 두려워 하라고 합니다. 

 

어제 말씀을 나누었지요. 세상의 힘은 기껏해야 우리를 사자굴에 넣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은 두려워하면서 영원한 시간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최악의 실수이며 착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을 빼는 것이 강력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을 빼야 

하나님의 강함을 누릴 수있습니다. 

우리는 힘을 내라. 화이팅! 하라고 합니다.

힘은 내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내가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힘을 주실 때 우리가 강력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받으라' 힘을 받으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힘을 받으려면 우리는 힘을 빼야합니다.

성찬할때에 보시면 나와서 두 손을 펼칩니다. 

꽉 쥐는것이 아니라 손을 펼칩니다. 

우리의 손을 펼쳐야 떡이 임하고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꽉 쥐는 것이 아니라 힘을 풀고 주님께 나아가는 겁니다. 

여러분 , 우리 힘으로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강함으로 살아가는 복된 삶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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