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새벽말씀
전도서 2:1~11
인생이 쉽지 않음은 우리 모두가 경험으로 아는 사실입니다.
인생이 그저 쉬웠다면 이 자리에 기도하는 분이 계실까
싶습니다.
현실 속에서 수 많은 절망이 발생하고 그로인해 삶은 지치고
소망은 안개처럼 사라지곤 합니다. 믿는 자의 삶도 예외는
아닌것 같습니다.
결코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이 상황속에서
인간은 누구나 생존 본능을 발휘합니다. 떠내려 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지요. 그래서 누군가는 삶을 구축하고
채워보려고 노력합니다.
전도서 기자 역시 자신의 삶을 무언가로 채워보고자 많은 것들을 시도해보는 사람이었죠. 그는 인류 전체의 선발대로 보입니다. 우리를 대신해 먼저 가보고 내적인 만족을 위해서 다양한 영역에 손을 뻗었던 사람이었죠. 지혜, 소유, 쾌락 다 해보았지만
그 결과는 어제 살펴보았듯이 '헛되다' 한마디로 정의가 되지요.
'헛되다' 가 전도서의 핵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도서 기자는 쾌락을 통하여 자기를
만족시켜보려고 합니다.
1절 말씀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낙을 누려보겠으나 이것도 헛되도다 나를 채워주지
않는다는 결론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쾌락을 향해서 손을 뻗어봅니다.
오늘 말씀3~8절에 보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봅니다.
하지만 결과는 11절 그 후에 내가 생각해본즉 내 손으로 행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모든 것을 해보았지만 수고했던 모든것들이 헛되어 바람을 잡는것과 같다 라는 것입니다.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습니다. 여러분들도
해볼 수 있는 것을 다 해보지만 이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해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영혼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해 아래에는 없었다는 것이지요.
채울 수 없는 상황을 두고서 전도서 기자는 '헛되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어떤 것으로도 자신의 영혼이 만족되지 않음을 보고서 전도서 기자는 일종의 절망의 순간을 견뎌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영적 사실을 발견하지요.
허무한 상황에서 허무를 느끼는 것이 은혜입니다. 공허를
느끼는 상황에서 공허를 알고 느끼는 것이 복입니다.
허무해야하는 상황에서 허무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건 질병이고 무감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없는 상태에서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고 할때에 불만족을 느껴야 올바른것 입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않았는데, 세상의 것으로 내 삶을 도배하는데도 불구하고
만족을 느끼고 만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배고플 때 배고픔을 느껴야 하듯 허무와 공허를 느끼는 것이 영적 으로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은 없고 세상의 것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공허를 느끼고 허무를 느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새벽 이자리, 각 가정에서 기도의 자리에 왜 나아갈까요.
세상의 자리에 만족이 안되기때문에
세상의 것으로 허무하기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겠지요.
C.S 루이스는 이런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만족하는 것이 흠이다.'
그는 진짜 만족을 위해 이 땅에서 많은 것을 시도해보라고
과감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영원한 만족이
되는지 정확하게 살펴보라고 합니다.
그가 볼때에 사람들이 만족하지 말아야 할 곳에서
만족 한다는 것이지요. 즉 자동차, 집, 성공에 만족해버립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만족하지 않아야할 곳에서 만족하고 말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더 나아가지 않는다는 취지의
이야기 입니다. 탕자를 보십시요.
그는 자신이 받을 유산을 미리 받고 아버지를 떠납니다.
그는 자기 재산을 소유해보았고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향유해 보았습니다.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내 것, 내 시간, 내 공간
탕자는 만족, 행복을 위해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일시적인
만족을 누렸습니다. 유통기한이 너무나 짧은 만족을 누렸습니다.
어거스틴은,
당신은(하나님) 우리를 당신을 위한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당신의 안에서 안식을 발견할 때 까지는 쉼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
이 찬양을 기억하십시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아버지 품으로 들어갈때에 비로소 만족이 있고
행복이 있으며 그 외에는 허무하다는 것이 전도서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아버지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주 안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아버지 앞에
가지 못할 분, 즉 참된 만족을 누리지 못할 분은 없습니다.
이 시간,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세상모든 짐을
내려놓고 주님 주시는 영원한 만족을 누리는 복된 삶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