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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중앙교회

11월16일 새벽말씀

김선미2022.11.16 15:5011.16조회 수 4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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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 새벽말씀

다니엘 7:15~28

 

어제 본문에서 다니엘이 환상을 보았던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니엘이 다른 이의 꿈은 

잘 해석하였으나 자신의 환상은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하였고

근심하고 번민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16절 내가 그곁에 모셔 선 자들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말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려주며 이르되 

 

해석이 안되니 가서 묻는데 그 존재가 환상의 의미를 훤히 드러내줍니다. 

17절 말씀을 보시면 

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 

 

환상은 크고 장황하였으나 간결하게 이야기해 줍니다.

이 나라가 정확하게 어떤나라들을 말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요. 다니엘은 이 네 짐승중에 네번째 짐승에 대하여

더 알고 싶어합니다.

그 네번째 짐승이 더 무서우며 강력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본문 곳곳에 네번째 짐승의 묘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강하고 무섭고 괴팍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괴롭게 하는 나라가 

네번째 짐승의 나라입니다.

이 해석을 듣던 다니엘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이 해석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해석이 26절과 27절에 나와 있으며

이것이 이 환상의 핵심입니다.  

이 말씀을 선포하듯 함께 읽겠습니다.

 

26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 

27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

 

이것이 무시무시한 환상의 핵심이고 결론입니다.

넷째 짐승이 아무리 강력해보여도 

주인공도 중심도 아닙니다. 이꿈과 환상은 하나님이 주인공이며 그분의 나라가 중심입니다.

넷째 짐승은 잠시 이시대를 지나는 배역에 불과합니다.

신앙이란 짐승의 나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토대로 

잠시 세상의 권세를 누리는 짐승의 나라를 보게되는 것입니다.

더 강력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뒷 배경으로 해서

잠시뿐인 나라를 바라보는 것이 신앙입니다.

우리 삶속에서도 넷째 짐승들이 많이 있지요. 폭력적인 권세를 누리며 자랑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없이 여기고 내가 하나님인 것 처럼 여기며

그의 성도들을 괴롭게 하는 그런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지만 본문이 증언하는 진실에 귀를 기울이기 원합니다.

 

아무리 강력해 보여도 이 짐승의 나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선택하라고 합니다.

어떤 나라를 더 사랑할 것인가 

어떤나라를 더 두려워 하며 

어느나라의 시민으로 살고 싶은가 

그 득세하는 세상권력 나라의 시민으로 살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것인가 선택하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힘과 권세는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영원할 것처럼 행세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계속 반복되는 주제인데요.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잠언 9장 16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영원하신분이 누구인지 구별할 줄 아는것이 지혜의 시작, 지혜의 근본입니다.

 

열왕기하 6장에

아람군대가 엘리사 선지자 한 사람을 붙잡고자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 옵니다. 엘리사가 있는 성읍을 다 에워싸 버리지요.

그야말로 인해전술입니다. 엘리사의 종이 이 광경을 보고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엘리사가(열왕기하 6:16~17) 대답하되 두려워 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데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마와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엘리사의 기도는 청년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라고 합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새로운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수정체가 있습니다. 수정체를 열었다가 

조였다가 하면서 보는 대상을 조정합니다.

신앙이란 이처럼 영적인 수정체가 조리개를 조정하면서

조금 더 다른 세계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짧은 현실을 영원이라고하는 시간 뒤에 두고 보는것

그것이 신앙의 힘입니다.

현실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하나님의 크신 권능앞에 두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번 반복해서 들었습니다만 

문제만 보지 않고 그 문제를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앞에 두고 보는 것. 

시야각이 달라지는 것이 신앙의 능력입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로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하늘에서 보면 작은 언덕에 불과합니다. 태산만 보면 너무 높고 험악하여 절대 오를 수 없는 대상으로

보이지만 하늘을 배경으로 바라보면 그저 낮은 언덕일뿐이지요. 

넷째 짐승의 나라를 인간의 눈으로 본다면 

정말 강력해서 두렵고 떨리는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배경으로하여 그 넷째 나라를 보면

능치 못할 일이 없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해서 우리가 상대할 수 있게 되는것입니다.

본문의 메세지가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라입니다. 

진짜 두려워 할 대상을 두려워 해라 당장 보기에 넷째 짐승,

그의 나라가 가장 두렵지만 

그 넷째 짐승. 그 나라를

영원하신 하나님앞에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두려워 할지 알게 됩니다. 

순간을 두려워하여 영원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나라 그 영원성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태산에 시선을 빼앗겨 더 높은 하늘을 간과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고,

넷째 짐승을 두려워 하느라 진작 두려워해야할 하나님을

뒷전으로 하지 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일이면 우리 자녀들이 수능시험을 봅니다. 

나이 스물즈음에 받아야하는 평가죠. 

우리 자녀들이 잘 이겨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 한 가지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평가. 스물 즈음에 받는 이 평가를 

두려워할 줄 알면서 더 영원한 심판, 

더 영원한 평가에 대하여 무감하다면 

우리 삶은 다시 정비되어야 합니다. 

수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원한 평가, 영원한 심판이라는 것이지요. 

우리 삶의 어떤 문제보다 하나님이 더 크고 강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의 일하심을

우리가 간과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내일있을 자녀들의 시험문제도 

여러분의 건강문제도 

자녀, 배우자, 부모님들의 모든 문제들도 

더 크고 강하신 하나님 앞에 두고 볼 줄 아는

신앙의 시야가 열리는 복됨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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