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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중앙교회

11월17일 새벽말씀

김선미2022.11.17 12:1211.17조회 수 3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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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 새벽말씀

다니엘8:1~14

 

벨사살 왕 제3년이라고 오늘 본문이 시작됩니다.

다니엘은 또 환상을 보게 되는데요. 

환상이라고 하는것은 알기어려운 말입니다.

그래서 다니엘 6장까지는 우리가 익숙하여 재미있게

읽게 되지만 7장 이후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지요.

하지만 하나씩 파고들면 하나님이 이런 위로를 주시는 구나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두뿔을 가진 숫양이 등장합니다.

숫양이 강력하여 서쪽과 북쪽 남쪽을 향하여 들이받는 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어떤 짐승도 이를 당해내지 못했다는 것이

첫번째 내용입니다.

이때 두 눈사이에 현저한 뿔이 있는 숫염소가 서쪽에서부터

등장합니다. 이 숫염소가 숫양을 쳐 냅니다.

이전까지 강력해보였던 숫양을 쳐 냈고

강력한 두 뿔이 꺽이고 맙니다. 

숫양은 숫염소를 대적할 힘이 없었던겁니다. 

이 숫염소는 더 강력한 짐승인 것이지요. 

오늘 말씀이후 8장 20~21절에 숫양은 메대와 바사왕들을

숫염소는 헬라왕들을 의미합니다.

숫염소의 큰 뿔은 첫째왕 알렉산더이겠구요. 

그 이후 4개의뿔이 나온다고 하지요.

알렉산더 왕 이후에 4명의 왕이 지역을 분할해서 다스렸는데

그 네명의 왕을 가리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염소의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왔는데요.

이뿔이 참 악랄한 일을 벌이는데 11절과12절 말씀을 보시면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없애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백성이 매일 드리는 제사가 넘긴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군대의 주재를 대적했다고 하는데요. 군대의 주재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없앴으며

성소를 헐어버렸습니다. 그리고 12절 마지막 형통하였더라

누가 형통한 것입니까

뿔 .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형통한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의 형통이라고 하는 이 주제, 

현실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있는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는 사람만 형통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을 매일 보게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악한자들의 형통인것이지요. 

이것은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주제입니다.

시편73:3에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우리만 그런것이 아니고 시편 기자도 그들의 형통함을 보고 질투하는 마음이 나타났으며 그것을 보고 견디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예레미아 12장1절 말씀인데요. 악한 자가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평탄한겁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묻습니다.

시편기자와 선지자 모두 악한자의 형통을 목격해야만 했고

이는 그들에게 해석하기 어려운사건이었지요.

악한 자가 형통할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형통하다고 해서 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형통하지만 악인일 수 있습니다. 우리 눈에만 보이는 형통이 곧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장해보십시요.

어려움이 있습니다. 몸이 좋지 않고 길이 좀 막혔고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버리셨다고 결론 내릴수 있을 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이 있다고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의 일을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하면

결국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하게 됩니다.

이스라엘백성.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입니다.

그런데 왜 노예로 살고 광야길을 걷습니까?

우리눈에 보이는 형통함의 정도에따라 

하나님이 일하시냐 일하지 않으시냐를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당장에 드러나기도 하지만

아주 서서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아예 마지막에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의 사건으로 하나님을 판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말씀 13절을 보십시요.

이런일이 언제까지 지속됩니까 이렇게 악한 자가 형통하고 하나님의 제사를 성소를 무너뜨리는 일이 언제가지 지속됩니까 라고 물었을 때에 

 

14절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되리라 하였느니라

 

그때에야 성소가 정결하게 된다 회복된다 말씀합니다.

이천삼백주야를 문자적으로 함축적으로 어떻게 봐야할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악한 자의 형통은 끝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메세지가 무엇일까요?

신앙인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살지 않습니다.

우리눈에 보이는것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악인이 때로는 형통합니다.

그러나 나타나는 현상으로 하나님을 판단해서는 안되겠지요. 

오늘말씀에서 이천삼백주야라고 합니다.

신앙인의 눈은

현재를 살지만 이천삼백주야 뒤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이천삼백주야를 문자적, 함축적으로 해석하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는 시작점이지요.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내가 성공하고 실패하는 시간이 아닌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 

그때가 바로 본문이 말하는 이천삼백주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시선이 오늘 코 앞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그 때를 바라보면서 

현재를 산다면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홍해, 여리고 성, 골리앗들이 즐비하여도 

그 모든것들을 이겨낼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으로 오늘도 내일도 한평생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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