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 (누가복음 5:27‑39) '회복의 부르심'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시면서 질병 때문에 사망의 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 질병으로 인해서 사회적으로 죽음을 경험하고 있었던 이들을 찾아오셔서 만져주셨고 그의 죄 사함을 통하여 자유케 하시는 모습을 목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 사회 편견 속에서 사망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그들을 주님께서 새롭게 하시며 특별히 그들을 불러내시는 장면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새로운 일이나 관계, 여러 가지 새로움을 갈망할 때가 있으나 그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나의 문제들, 내면의 문제들, 과거의 죄책감, 실패의 기억들이 이런 새로운 출발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나 족쇄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 속에 등장하는 레위라고 하는 사람, 헬라어 이름으로 마태이고 마태복음에서는 마태가 세리였다가 부름받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아마도 부모가 그의 이름을 지을 때에는 레위 지파에게 하나님께서 주셨던 원대한 기대들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그는 로마에게 세금을 상납하는 피지배 계급의 구조 속에서 중간에 세금을 납품하고 자신에게 이윤을 남기려면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해야 했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현실, 그리고 그가 맺어왔던 과거들이 하나님 나라의 부르심 가운데에서는 분명하게 걸림돌, 족쇄가 될 만한 것이었으나 그랬던 레위를 예수님께서 찾아오셨고 그에게 따라오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많은 이들의 비판, 특별히 바리새인들의 집중적인 비판 속에서도 예수님의 오심이 무엇인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궁극적으로 다른 것인지를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나의 과거들, 연약함들이 주님 안에 있을 때는 새 출발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될 수 없는 것임을 믿기 바랍니다.
‑>임재하신 예수님 앞에 서 있을 때 예수님과 함께하는 성도의 새 출발은 단순한 변조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 출발이므로 철저하게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며 예수님만을 따라가면서 감당되어져야 합니다.
‑>레위라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서 가장 변화된 사람 중에 한 사람이고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가장 낮은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기록하는 중심에 서 있는 사도로 쓰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의 행복이 있다면 과거의 나의 이름과 그 발자취를 넘어서서 새로운 삶과 새로운 사명을 경험하게 되어진다는 것이 성도의 행복인 줄로 믿습니다.
‑>로마 제국의 세금을 납품하기 위해서 동족 유대인들에게는 매국노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 그래서 상대적으로는 돈과 가까이 있었기에 동족들보다는 좀 더 부유하게 살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종교적, 사회적으로는 배척당한 사람들이었으며 당시 이들의 성전 출입을 제한시키는 풍토가 강했습니다.
‑>그러므로 본인과 가족들도 철저하게 신앙 공동체인 유대 공동체 사회 속에서 단절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탈출로가 보이지 않았던 이들은 계속해서 돈, 세금이 인생의 유일한 구원의 줄기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나를 따르라' 말씀하십니다.
‑>이 한마디가 이 한 사람과 그 가정의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잔치에 참여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완전히 새로운 잔치의 주인공 옆에서 그 잔치의 측근에 머무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본질적인 부르심, 예수님이 우리를 불러내심이 참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르심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성경은 증명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분의 식탁에 앉아 있는 구성원들이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에게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5:31‑3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운동, 죄인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며, 잃어버린 양떼들도 모두 주님 앞에서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 주님의 백성으로 구실을 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의 기준으로 떳떳하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는 은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모여든 죄인임을 알게 되는 이들, 예수님 앞에 불러내는 병든 자들, 연약한 자들임을 깨닫게 되는 이들에게는 자신에게 찾아와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믿음 가운데에 '나' 라는 철옹성에 가로막혀서 보지 못하는 연약함들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다 보여지고, 예수님을 고백하던 그 감동, 그때의 눈물이 회복되는 복된 하루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새로운 질서를 선포하시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비판합니다.
‑>(누가복음 5: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하나님 나라 운동이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좋은 것이라면 최소한 자신들이 지켜온 종교적인 상식은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금식은 경건함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중요한 신앙 행위였기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누가복음 5: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늘상 해오던 종교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시는 주체이신 예수님이 앞에 서 있는데 지금 네가 하고 싶은 신앙생활을 하겠느냐 질문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때로는 예수님이 우리 앞에 임재해 계시는데 '예수님 잠깐 기도할께요, 잠깐 찬송 한 곡 부를께요, 잠깐 전도할께요' 라며 주님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종교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일깨우시기 위하여 예수님의 신앙 가르침과 내가 하고 있는 종교 생활과 다른 것인가, 불편하다는 가르침을 주시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거부감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은혜의 눈으로 바라보면 예수님과 함께 있는 하나님 나라는 기쁨과 즐거움의 시간이고 자유함과 은혜를 만끽하는 충만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습관적인 종교 생활에 사로잡혀서 예수님 앞에 있는 기쁨, 은혜의 충만을 놓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새 옷과 새 포도주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존의 방식, 내가 해오던 신앙생활로는 하나님 나라를 품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새롭게 하실 때에는 우리도 새로운 그릇을 준비해서 주님의 은혜를 품어낼 수 있어야 됩니다.
*레위가 모든 것을 버리고 순종했듯이, 우리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전적으로 순종하며 따라 나서는 결단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신랑 앞에 있는 이들의 기쁨의 충만함을 우리 가운데 회복하실 줄로 믿는 그 마음으로 주님과 동행하시는 복된 하루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 붙잡고 기도하실 때 세 가지 기도 제목으로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첫 번째, 주님이 주신 부르심에 망설이지 않고 믿음으로 결단하게 하옵소서.
‑>두 번째, 낡은 습관과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변화와 성장을 이루게 하옵소서.
‑>세 번째, 공군의 안전을 지키시고 오산 기지 교회를 이끌어 주옵소서.
(청년부 수련회와 세례식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