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 (누가복음 2:1‑20) '잊혀지지 않을 땅에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제목으로 말씀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들판의 목자들에게 찬양 받으시는 예수님, 목자들에게 소식을 전하시는 예수님, 시골 동네 베들레헴 여객의 말 구유 위에 놓이셨고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에 대한 성육신 모습은 아무리 반복해서 묵상해도 은혜와 감탄, 감사가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현장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겸손, 낮아지심으로 이 땅에 오셨는가를 베들레헴 여객의 말 구유 위에 놓이신 예수님의 아기 탄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성육신의 은혜가 설명될 것입니다.
‑>왜 세상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세상 시스템의 최고 정점에 있었던 황제의 왕권 강화를 위해서 수행되는 인구 조사의 맥락 속에서 이 땅에 오셨을까를 묵상하다 보면 예수님이 오시는 시기, 상황, 장소, 형태의 모든 것이 겸손의 왕으로 오셨다는 말 이외에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첫 번째 묵상할 것은 '왜 하필 베들레헴, 빵 굽는 터인가' 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 땅이기도 했고 그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4세기쯤에는 예수님의 조상인 다윗 가문의 조상이 되어진 룻과 보아스의 만남의 현장이었으며 더 거슬러서 올라가면 요셉의 어머니이자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였던 라헬이 베냐민을 출산하다가 죽음을 맞이하여 장사되었던 곳이 베들레헴의 옛 이름 에브라다야 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서를 보면 무너지는 유대의 현실과 암울한 미래를 향하여서 예레미야가 고백하고 예언할 때 '너 예루살렘 에브라다야 라헬의 통곡이 있는 성읍아'라는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특별한 이유는 야곱의 대표적인 두 아내 레아와 라헬 중에 생전에 상대적으로 더 큰 사랑을 받았던 여인은 라헬이었고 라헬은 레아와 다른 여인들에 비해서 자녀들을 더 많이 출산한 것이 아니었으며 아브라함이 고향 땅 막벨라에 가족 묘지를 마련했는데 라헬은 가족 묘지에 묻히지 못해서 베들레헴의 옛 땅에 묻혔고 다른 말로 표현하면 라헬은 가문 안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이했었던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야곱의 편애 때문에 사랑을 못 받았다고 여겨지는 레아는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삭과 더불어서 그의 가족 묘지에 장사되었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그녀에게서 유다와 레위 지파의 조상들을 출산합니다.
‑>긍휼의 하나님, 공평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때로는 상호 교차적으로 생전에 상처받고 차별받았던 레아는 가족 묘지에 묻히게 하고 야곱의 사랑을 받았던 라헬은 외딴 곳에 묻혀져 있게 하셨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출애굽 이후에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출애굽 전 요셉이 애굽으로 가기 전에는 베들레헴에 라헬이 묻혔던 곳으로 요셉 지파들의(에브라임, 므낫세) 기억의 장소였는데 후대 출애굽 이후에 이 땅을 사명, 기업으로 물려받은 지파는 레아의 후손인 유다 지파이고 유다 지파는 보아스와 룻, 다윗, 예수님을 통하여 베들레헴은 상처의 땅, 외로운 죽음, 잊혀지는 땅, 동네가 아니라 대대로 기억되고 거론되어지며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구속사와 인도하심 가운데에서 다윗의 고향 땅이기도 하며 예수님의 성육신의 현장이기도 했던 성읍으로 기억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크신 경륜과 섭리 가운데서 단순히 레아와 라헬을 공평하게 서로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넘어서서 라헬이 죽임을 맞이했던 땅에 상처와 잊혀짐만의 장소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영원히 기억되는 장소,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개입하심,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주심과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사용하시는 이름으로 사용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하나님, 우리 가운데서도 베들레헴처럼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어지고, 베들레헴처럼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어지는 그러한 땅과 현실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때로는 상처의 현장일 수도 있고 때로는 외로움과 잊혀지는 현장일 수도 있겠지만 더 크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일하심의 통로로 잊혀지지 않을 땅으로 사용되어질 은혜, 그러한 베들레헴이 있게 하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에 미가서에 등장하는 예언처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다'는 다윗이 베들레헴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선지자의 입술을 통하여 다윗 이상의 기름 부으신 자 메시아가 오실 그 자리를 베들레헴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며 베들레헴은 성경이 말하는 결코 작은 동네가 아니라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서도 임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묵상할 것은 '시기, 상황' 입니다.
‑>성경은 이 모든 시기와 상황을 철저하게 주님이 겸손의 대상으로 오셨다고 이야기합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사도 바울은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신앙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을 '베들레헴의 아기로 오셨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라고 압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의 본질인 겸손과 낮아짐입니다.
*우리가 수십 번, 수백 번 목격하였을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다시 한 번 나를 위하여서 이 땅에 겸손으로 오신 예수님의 은혜가 불러일으키는 참된 인도하심 속에 나아가는 귀한 은혜가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 번째로 묵상할 것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들을 목자들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전파하셨다'는 것입니다.
‑>들판의 목자들은 보통 고용된 일꾼, 주인의 양을 치는 사람들이고 보통 삯꾼의 대표적인 대상들입니다.
‑>이들은 들에서 양떼를 지키다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니 주인의 것을 훔치는 것이 공공연하던 시대였고 주인들은 목자들이 훔쳐갈 것을 미리 예상하고 그것을 감안해서 그들의 몫을 지불하던 시대였으므로 불신의 대상 중에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처음 접하며 증거되게 하는 이들이 목자였습니다.
‑>이 세상의 목자가 아니라 참 목자로 오신, 불신의 대상으로 양떼들을 자신의 몫으로 취하기 위하여서 복잡한 현실 속으로 나아가는 목자가 아니라 정말로 양떼 중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한 참된 목자, 이 세상의 치료제로 오시는 예수님을 성경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러한 묵상의 깊이가 깊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상처 많은 세상, 불신의 세상에 참 목자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은혜,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은혜 가운데 오늘 깊이 나아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라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도 우리에게 은혜를 더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 붙잡고 기도하실 때에 세 가지 기도 제목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첫 번째,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처럼 겸손과 낮아짐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두 번째, 베들레헴이 잊혀지지 않는 땅이 되게 하신 그 은혜를 기억하면서 우리 삶 속의 고난과 아픔도 구원의 소망으로 바꾸어 주옵소서.
‑>세 번째, 공군의 안전을 지키시고 공군 교회의 부흥을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