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칭의와 이행칭의에 대한 이해
1. 서언
오늘날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바울의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가 '행위로 구원 얻는다'는 야고보의 이행칭의(以信稱義) 사상을 오해하여 부정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그러나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와 야고보의 이행칭의 교훈은 전혀 상반된 내용이 아니라 서로 조화되며 보충되는 내용입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와 빌립보서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를 말하고 있습니다 (롬3:28,갈2:16, 빌3:9).
야고보서에서는 '사람이 믿음으로가 아니라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행칭의(以信稱義)를 말하고 있습니다 (약2:24). 이 모순 되는 듯한 바울서신과 야고보서의 내용을 상호 이해의 필요가 있습니다.
2. 바울의 이신칭의 (以信稱義)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공식은 바울서신 중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와 빌립보서에만 나타납니다. 이 공식은 항상 유대교의 특권의식과 논쟁하는 상황에서 나타납니다.
바울이 '일반적인 행위'가 아닌 '율법의 행위'를 거부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는 의를 획득하기 위한 통로로 간주되었던 율법을 거부하고 믿음을 강조한 것입니다.이신칭의론은 이방인 개종자들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한 약속에 진정한 상속자들이 될 수 있다는 권리를 옹호하려는 독특하고도 제한된 목적을 위해 창출되었습니다.
이방인 개종자들의 권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기초되어 있습니다. 그 이신칭의론이 상실될 뻔했던 이방인 크리스천의 권익이 보호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의 권익이란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충분한 상속자들이 도리 수 있다는 권리를 말합니다.
3. 야고보의 이행칭의 (以行稱義)
야고보가 말한 '행위'는 주로 '일반 행위'를 말합니다.
일반 행위와 관련된 행위는 1:4와 2:14을 포함하여 11번 사용됩니다.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위가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의 양식조차 없는데 너희 중에 누가 그들에게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라' 하고 말하면서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행위'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일반 행위를 뜻합니다. 그것은 '율법'이라는 용어 자체가 전혀 사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행위는 율법의 행위를 말하기 보다는 단지 기독교적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야고보의 선언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하늘나라에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다(마7:21)"고 한 예수님의 선언과 내용이 일치합니다. 야고보서2:24에 "사람이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한 이 행위 역시 율법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2:24이 아브라함의 행위를 강조하는 구절(2,21)의 결론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행위'는 율법의 행위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이 주어지기 전의 인물입니다.
4. 결언
바울의 사상과 야고보의 사상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용어의 다른 사용법을 통해 각기 다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사상과 야고보의 사상의 경우는 양자 택일할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주로 '(기독교적) 믿음'을 옹호하고 '(유대교적)행위'를 비판하는 반면, 야고보는 주로 '(유대교적) 믿음'을 비판하고 '(기독교적) 행위'를 옹호한 것입니다.
인용한 글이며, 온전한 신앙을 위하여 올린 글입니다'
구정회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