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욥기36:1-25) '하나님은 능하시나'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엘리후의 말에 욥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엘리후는 말을 이어갑니다.
->(욥기36:2-4) 자신의 말이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언가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대부분 쓸데없는 일을 벌일 때입니다.
->엘리후가 하나님을 위하여 말한다고하지만 사실은 하나님, 신에 대한 자기의 지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욥기36:3)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얻고~'의 뜻은 하나님, 신을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하여 먼 데까지 가는 수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욥기36:4) '진실로 내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있느니라' 말합니다.
->이렇게 얘기할만한 이유는 어렵게 찾아다니면서 배운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신을 알고 진리,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구도종교라 합니다.
->구도란 도를 구한다, 인간편에서 신, 진리, 경지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구도종교의 두가지 전제는 인간 편에서 신을 알고 진리, 구원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구도종교에서 수도와 고행의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고 고행, 진리에 가까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우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결국 엘리후는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에게 의를 돌리기 위하여 말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 스스로 수고하여 어렵게 얻는 온전한 지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함으로 자기에게서 의를 찾기위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지식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엘리후가 하나님을 위하여 한 말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욥기36:5-6)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사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말합니다.
->늘 같은 패턴이며, 하나님의 전능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아무도 멸하시지 아니하시며,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이나 두말은 서로 모순됩니다.
->'아무도'는 흠이 없는 사람을 의미하고 '흠없는 사람을 멸시하지 않으시고 악인은 살려두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친구들과 엘리후가 얘기했던신에 부합하는 내용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공정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고난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말합니다.
->고난은 악인이 만들어낸 결과이기에 행위의 원리에 따르면 당연히 까닭없이 고난을 받는자에게는 공의를 베풀고 권리를 옹호해 주어야 맞는 것입니다.
->앞서 세 친구와 엘리후가 하나님의 전능성을 강조한 목적은 하나님의 공정성을 부각하기 위함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여 공정하게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까닭없이 당하는 고난은 있을 수 없다,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악을 행했거나 흠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아니고서는 고통을 당할리가 없다는 일관된 주장입니다.
->의인에 대한 신의 행함입니다.
->(욥기36:7)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말합니다.
->하나님의 계몽성을 말합니다.
->(요1기36:8-10)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말합니다.
->언뜻보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과 비슷해 보입니다.
->죄의 결과를 알게 하시고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는 것처럼 보이나 전혀 다릅니다.
->엘리후의 신은 철저하게 인간의 행위가 기준이며, 행위로만 움직이는 신입니다.
->악하고 교만한 행위에 대하여 신이 취한 조치가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히게 하는 악에 대한 보응인 것입니다.
->엘리후의 신이 악하고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고 교훈을 듣게 하고 죄악을 돌이키게 하는 역할은 행위에 대하여 보응하는 것, 벌을 주는 것입니다.
->(욥기36:11-12)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여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철저하게 행위에 따라서 신의 보응이 달라지는 것을 일관되게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욥에 대한 동일한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욥기36:17)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그대에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정의가 그대를 잡았나니'
->욥이 악인이며, 하나님, 신이 심판과 정의를 행하신 결과이다 말합니다.
->(욥기36:21)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그대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욥의 고통이 악을 택한 결과라는 것을 거듭강조하는 말입니다.
->엘리후는 또다시 같은 패턴의 말을 합니다.
->(욥기36:22) 높이 계신 하나님은 권능이 크시다, 자연만물을 주관하시는 전능성을 가지신 분이심을 말하면서 다시한번 전능성을 강조합니다.
->전능성을 또다시 강조하는 이유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정의가 언제나 타당해야 악인이 받는 벌, 욥이 당하는 고통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과 정의가 늘 타당하기 위해서는 신이 전능해야 합니다.
->엘리후의 말대로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세상의 모든 신도 전능합니다.
->문제는 '신이 전능성을 무엇을 위해서 사용하는가'입니다.
->엘리후의 신은 공정성을 인간의 행위를 저울에 달아서 의로우냐 불의하냐를 따지는 기준으로만 사용합니다.
->엘리후의 신은 전능성을 철저하게 인간의 행위에만 심판합니다.
->엘리후의 신은 계몽성을 인간의 불의한 행위에 대하여 벌을 주고 고통을 더하는 방식으로 계몽의 여지를 조금더 준다는 의미에서 다른 신의 역할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신이 인간에 대하여 움직이는 논리가 오직 인간의 행위일 뿐입니다.
->엘리후를 비롯한 네 사람이 욥에게 인과와 보응의 원리, 행위의 원리를 일관되게 주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에 사로잡힌 인간의 상태, 죄인된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기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모르기에 세상의 모든 종교가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죄를 인식할 수 없기에 하나님과 분리된 죄인의 모든 행동이 악하고 불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기에 인간에게 늘 가능성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자기 힘, 자기의 의로 구원에 이르고 진리에 이르며, 신에게 이를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곧 '자기의 의'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 되었기에 선을 행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자기의 의로 된다고 여기지만 결국 죄에 속한 열매만 거둘 수밖에 없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말합니다.
->그러므로 죄인에게는 답이 없고 소망도 없으며, 오로지 절망뿐인 것입니다.
-> 이러한 죄인에 대하여 기독교도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공의롭고 정의롭다고 말합니다.
->다른 종교와 다름은 하나님은 죄인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정성은 죄인의 처지 그대로 불쌍히 여기고 죄를 고려해주시며, 죄 때문에 아프고 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헤아려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능력, 전능성을 행하십니다.
->높이계신 하나님이 낮은 나를 봐주십니다, 연약한 나를 능하신 그분이 품어 주시며, 구원의 능력을 행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죄인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행하시는 일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몽성은 우리가 성도답게 행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끊임없이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설득해주십니다.
->복음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공정하시며, 계몽하시는 그 일에 있어서 전혀 다른 방식과 원리로 일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엘리후의 말과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을 다시한번 묵상하시면서 비교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복음의 렌즈를 끼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과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의 표현방식이 비슷하다할지라도 일하는 방식과 원리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기에 죄인되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입을 수 있게 되었으며, 복음의 은혜 안에서 다시한번 하나님을 바라보시면서 오늘 나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전능성과 공정성, 계몽성이 어떠한 다름으로 우리에게 보여지는 지를 바라보시면서 죄인되었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며, 나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