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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3-12.12 새벽말씀

권화영2023.12.12 17:4112.12조회 수 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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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욥기34:1-37)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받기를 원하노니'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엘리후가 등장하는 순간을 다시 보겠습니다.

->(욥기32:4-5) '엘리후는 그들의 나이가 자기보다 여러 해 위이므로 욥에게 말하기를 참고 있다가 세 사람의 입 대답이 없음을 보고 화를 내니라'

->일반적으로 젊은이들끼리 논쟁을 하고 해결되지 않을 때 어르신이 등장하여 연장자다운 지혜를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욥기는 전혀 다른 양상입니다.

->(욥기32:6) 엘리후가 말한대로 어르신들이 갑론을박하는 것을 지켜본 연소한 젊은이가 참다못해 등장하여 혼을내고 정리하는 특별한 모양새입니다.

->엘리후가 주장하는 지혜는 세 친구와 동일한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의 주장이며, 세 친구의 주장을 집대성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가장 어린 엘리후가 욥을 훈계하는 최후의 인물로 등장하는 것일까요?

->세 친구들이 욥을 정죄할 때마다 근거로 삼는 것은 경험, 연륜, 전통이었습니다.

->조상때부터 터득하고 태어난 후로 체득했다고 주장한 것은 '신은 행한대로 갚는다 고로 악인은 고통을 당한다 그러므로 너는 악인이다'라는 인과, 보응, 행위의 원리였습니다.

->그런데 인과, 보응, 행위의 원리가 오랜시간 깨우친 원리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인물이 엘리후입니다.

->연소한 사람, 경험과 연륜, 전통과는 어울리지 않은 자가 등장하여 주장하는 바가 세 친구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세 친구들의 원리가 오랜시간의 결과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젊은이가 하는 말이 더 강화되고 정교하며, 치밀하게 다듬어진 내용입니다.

->결국 엘리후의 등장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엘리후가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원리가 시간의 결과물이 아닌 죄성이며,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들이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결과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기에 생겨난 죄의 원리이며, 죄 안에서 죄가 왜곡한 신에대한 개념, 관념 원리로써 등장하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부터 엘리후까지 이들 모두가 하나님을 언급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은 일반적인 세상의 신일 뿐입니다.

 

->구약을 보실 때 구약의 인물중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하나님을 알리시는 계시의 과정이 없이 하나님의 바른내용을 말하는 경우가 없음을 꼭 전제해야 합니다.

->(창세기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가 등장합니다.

->(창세기6:5) 그런데 앞서 하나님이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들은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다는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입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인 죄인들 가운데 노아만 남달라서 의롭고 완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말합니다.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계시의 과정이 있었기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가 가능한 것입니다.

->욥도 마찬가지이며, 하나님의 소개를 직접받으면서 등장합니다.

->(욥기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욥에 대하여 자신감을 가지실만한 계시의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의 온전함과 정직함 또한 그의 유별난 성정이거나 특출한 자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열매인 것을 성경의 맥락 위에서 전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정이 없는 사람이 언급하는 하나님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며, 여호와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원리도 하나님의 원리일수가 없습니다.

->죄인들이 생각할 수밖에 없고 죄인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원리를 죄인들의 대표가 되어 이야기하고 있으며, 욥을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까닭없이 고난을 당하는 욥에 대하서 까닭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부터 이들의 원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욥기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욥에 대한 엘리후의 본격적인 말이 34-37장까지 길게 시작되지만 욥은 더이상 반박하지 않으며, 하나님도 엘리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것이 특이점입니다.

->33장에서 엘리후가 세 친구들의 주장과 차별성이 있어보이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욥기33:16-18, 29-30) 앞선 세 친구들이 하나님과 신에 대한 공의적, 심판적 측면을 강조했다면 엘리후는 계몽적 측면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계몽적: 가르쳐서 깨우쳐 주는 것)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너는 심판당한 것이다, 너는 지금 악에 대한 보응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너 잘되라고 하시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말은 전혀 신선하거나 특별한 말이 아닙니다.

->신의 계몽적 활동 또한 세상의 신들, 우상종교의 신들에게서 동일하게 기대되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교이든지 신의 심판만을 말하지 않고 상과 벌, 복과 화로써 인간을 지배하고 통제한다는 것이 신을 섬기는 대부분 종교의 보편적 신관입니다.

->엘리후도 다르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과, 응보, 행위의 원리에 기초하여 욥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욥기 33장에서 욥의 말을 인용하여 의롭지 못하다고 정죄했으며, 오늘 본문에서도 욥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욥기34:5-6)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라고 인용합니다.

->그러나 분석해보면 욥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조금씩 다르게 과장하고 왜곡하여 인용아닌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을 이런식으로 전하면 안됩니다.

 

->(욥기34:7-9) 욥을 평가하는 말이며, 결론은 자기들의 원리를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욥이 당하는 고난을 그들도 설명할 수 없기에 결국 욥이 악인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욥기34:10-12) 엘리후는 하나님을 전능자로 일컫고 있으며, 세 친구들의 주장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욥기34:21-27) 전능자이시기에 사람의 걸음을 감찰하실 수 있다고 얘기하며, 꺾어버리고 뒤집어 엎어 흩어버리고 사람들 앞에서 치시며, 혹시 죄를 깨닫고 돌아오면 목숨만은 건져주는 일을 하는 자가 전능자의 역할이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 하나님의 길을 깨닫지 못하는 자, 하나님의 길을 걷지 못하고 죄의 길을 걷는 자들에 대한 전능자의 역할이라고 엘리후가 얘기합니다.

 

->욥에 대한 엘리후의 결론입니다.

->(욥기34:36)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만약 하나님이 엘리후가 주장하는 전능자와 같은 분이라면 죄인의 구원은 불가능함을 깊이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엘리후의 주장대로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모든 길을 깨닫지 못하는 죄인들에 대해서 행한대로 갚으신다면 죄인의 구원은 불가능하며, 구약의 역사가 필요없는 것입니다.

->구약역사 내내 예언자를 보내어 외치게 하실 필요가 없으며, 행한대로 갚으시면 되고 망한대로 두시면 그만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를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하시는 분, 자기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신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엘리후와 세 친구들이 말하는 신들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이신 것과 그들이 주장하는 신과의 비교속에서 다시한번 깊이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오늘 기도하는 시간 가운데 그 하나님을 묵상하시고 그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시고 의지하시면서 나아가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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