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열왕기상20:13-21)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감당하시고 설득하시어 하나님을 알게 하므로 엘리야가 하나님을 아는지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죄인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성경은 엘리야를 비롯한 그 어떤 인물도 영웅화, 위인화하지 않습니다.
->엘리야를 본받을 만한 신앙적 위인으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엘리야가 있어서 이스라엘이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며, 그의 힘이 빠져서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 디셉사람 엘리야를 먼저 찾아오셔서 그를 선지자로 세우신 것과 엘리야로 하여금 아합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성취해 오신 이유는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함' 입니다.
->아합과 엘리야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모든 일하심의 유일한 목적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엘리야이기에 여전히 건재한 이세벨 앞에서 차라리 자기를 죽여달라고 얘기하고 자포자기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열왕기상19:9-13) 하나님은 엘리야를 일으키셔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라고 물으셨을 때 엘리야가 두번 반복하여 주장하던 말을 잘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일하심의 목적을 모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19:10.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라고 동일한 대답을 두번 반복합니다.
->이 말씀에서 핵심적인 표현은 '내가 열심이 유별하오니, 오직 나만 남았거늘'이며 엘리야가 하고 싶었던 말인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희망으로 여기는 것처럼 엘리야 스스로 모든 것이 자기하기에 달렸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엘리야가 왜 이렇게 오락가락 하는지 궁금하다면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됩니다.
->우리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면서도 시시때때로 모든것이 나하기에 달린 것처럼 두려움에 사로잡히거나 조바심을 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첫 대답을 들으시고 먼저 크고 강한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고 지진 후에는 불이 있는 광경을 보여주십니다.
->이때 엘리야의 심경은 하나님이 당장이라도 이세벨을 잡아주실거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십니다.
->(열왕기상19:15-17)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으로 가서 이르거든 아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내가 열심이 유별하다'는 엘리야의 말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나의 목적은 너의 열심으로 아합을 잡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열심으로 너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말씀하는 것입니다.
->바람과 지진도 제어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나라의 정세와 세계역사를 주관하시므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겠다고 엘리야에게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오직 나만 남았거늘' 이라는 엘리야의 말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열왕기상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말씀합니다.
->우리는 '칠천 명'에 감동을 받지만 이 말씀은 아합의 악한 통치아래에서도 신앙의 정조를 지킨 칭찬이 아니라 도리어 아무도 하나님을 알길 없는 죄의 속박 아래에서도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자들이 있도록 하나님이 일으키시겠다, 일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하나님의 대답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장에서의 특이점은 19장에서 주인공과 같았던 엘리야가 사라집니다.
->오직 나만 남았다던 엘리야를 퇴장시키시고 엘리야를 잡아 죽이겠다는 아합과 이세벨의 눈앞에 아람의 왕 벤하닷과 왕 삼십이 명의 군대를 이끌고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그곳을 치는 광경을 펼쳐놓으십니다.
->그리고 아람의 벤하닷 왕과 이스라엘의 왕 아합, 이스라엘의 왕과 나라의 장로들 즉 죄인들이 나라의 안팎에서 주고받는 치사스러운 대화를 늘어놓으신 후에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오늘 본문입니다.
->(열왕기상20:13) 가장 중요한 핵심구절입니다.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엘리야의 부재를 이름도 모르는 한 선지자로 채우고 있으며, 지금까지 엘리야가 일했다는 것이 아님을 반증합니다.
->한 선지자가 하나님의 일하심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합을 때려잡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람과의 전쟁 승패가 문제가 아니며, 이스라엘의 통일, 분열, 멸망도 하나님께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로 사로잡혀가는 것, 다시돌아오는 것, 성전을 다시 짓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거나 목적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문제가 되는 것은 단 하나 '죄' 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가왕이 되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므로 고통과 불행을 자초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유일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여전히 변함없이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입니다.
*죄가 문제인 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모든 일하심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것을 성경을 읽어가는 가운데 잊지 않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이 목적입니다.
->오늘 20장의 상황 가운데 어떻게 일하셔야 사람들과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나라까지도 하나님을 알게 하실만한 컨텐츠가 될 수 있을까요?
->(열왕기상20:14-21) '아람의 벤하닷 왕과 삼십이 명의 엄청난 군대를 이스라엘의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 이백삼십이 명과 칠천 명에 불과한 군대가 이기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 컨텐츠는 처음 나온 것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여호수아까지, 사사시대, 다윗시대에 걸쳐서 꾸준히 사용하고 계십니다.
->가장 안될 만한 사람과 방법, 사건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로 죄인들의 생각을 깨시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열왕기상20:19-21)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과 그들을 따르는 군대가 성읍에 나가서 각각 적군을 쳐죽이매 아람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이 쫓으니 아람 왕 벤하닷이 말을 타고 마병과 더불어 도망하여 피하니라'
->까마귀로 엘리야를 먹이신 일,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일,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팰백오십 명을 이기게 하신 일과 같이 말도 안되는 일,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아람 왕 아합, 전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시기 위한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이보다 더 말도 안되는 일,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일인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 나온 그 어떤 사람보다 불가능한 일, 말이 안되는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피흘려 죽으신 일이며, 그 죽음에서 머물러 계시지 않으시고 다시 부활하시어 산 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어주신 일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위대한 일은 우리가 본적도 없는 십자가 사건을 믿어지게 하신 일이며, 새벽기도회까지 나와서 우리의 지극히 작은 부분까지도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는 하나님의 백성, 성도가 되게하신 일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말이 안되고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알고,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는 백성이 되게 하기까지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오늘 기도하시며 오늘 하루의 삶을 살아가시는 가운데 깊이 묵상하시면서 하나님 앞에서 감탄, 감복, 탄복, 찬양, 감사 하시며, 나아가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오늘 하루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고 하나님을 확연하게 알 수 있는 말씀을 선물로 여기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