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열왕기상17:17-24) '여호와께서 들으시므로'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야에게 하나님을 알리시기 위한 세번째 사건이 등장합니다.
->(열왕기상17:17)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증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은 사건이 있은 후에 병에 대한 설명이 없는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으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죽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때 여인의 반응이 중요하며, 앞서 엘리야의 말대로 행했던 것이 하나님을 아는 믿음으로 행한 것이 아니였음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열왕기상17: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말합니다.
->여인의 말인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내 아이를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는 전형적인 죄인의 사고방식을 보여줍니다.
->인생가운데 불행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자기의 죄와 행동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그 결과로써 신이 재앙, 벌을 내린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세상사람들은 성경이 말이 안된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이 말이 안되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행한대로 보응하셨다면 온전히 살아있을 사람은 없어야합니다.
->성경이 전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은 죄인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일하시지 않는 이유는 일하심의 대상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여인과 같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의 사고방식을 깨시기 위하여 일하고 계심을 기억하면서 여인의 반응과 엘리야의 반응을 들여다 보아야합니다.
->(열왕기상17:15-16)하나님이 가루와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은혜를 주셨지만 여인은 아무것도 행한 것없고 행할 수 없었던 자신에게 주신 복과 은혜가 넘친다고 감사를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없었다면 병들어 죽기 전에 굶주림에 허덕이다 죽었을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살던 중에 불행한 일이 닥치자마자 은혜의 통로가 되어준 엘리야를 향해서 '당신이 여기에 오는 바람에 내 아들이 죽게 된 것이 아니냐'라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18절에서 여인의 말은 질문형식이나 질문이 아니며, 자기 탓을 하다가 엘리야 탓을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엘리야를 보내신 하나님 탓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인은 바알을 섬겨 예배하던 시돈의 사람이었기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인해서 부정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자식의 죽음 앞에서 누구라도 보일 수 밖에 없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나 동시에 하나님을 모르는 전형적인 사고방식이 드러나고 있음을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엘리야의 반응입니다.
->(열왕기상17:19-20)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쳐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이 말씀에서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했다는 부분이 강조되어서는 안됩니다.
->엘리야도 여인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반응을 보이고 있을 뿐 입니다.
->이세벨의 본국인 시돈에 있는 것도 불안한데 왜 하필 자신이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셨냐고 하나님께 따져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인이나 엘리야나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셨다고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에 대해 제자들이 가진 생각은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은 자기든 부모든 누구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의 사고방식이며, 우리도 이런 생각에 쉽게 사로잡히게 될 때가 많습니다.
->(열왕기상17: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아이의 혼을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엘리야의 특정행동을 신비하게 보면 안됩니다.
->성경은 절대로 치유를 위한 어떤 특별한 방법이나 수단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엘리야의 행동은 하나님이 가르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였기에 하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하나님이 보이시는 반응입니다.
->(열왕기상17: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엘리야의 소리'가 강조점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들으시므로'입니다.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고치시면서 그 사람이나 부모의 죄로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모든 초점은 하나님을 알리시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인간적으로 비통한 상황을 선용하시어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을 알리시는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가 만나는 과정가운데 하나님은 단순히 '믿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기도하면 죽은 사람도 살아난다'는 것을 가르치시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다(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이 일하신다(하나님의 역사)를 엘리야에게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엘리야가 17장에서 하나님을 배워야 18장의 계시사건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사건은 연관성 없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체계적인 계시의 역사로써 들여다보면 그 과정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여호와께서 들으시므로'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어주신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한 여인이 하는 말입니다.
->(열왕기상17: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이전 사건에서는 아무말도 없었던 여인의 입에서 드디어 터져나온 연인의 신앙고백입니다.
->죄인이기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지금 자기에게 일어난 일이 우연이거나 엘리야로 인함이 아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기에 가능한 고백을 엘리야 앞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엘리야는 까마귀 사건, 가루와 기름 사건, 아이가 살아난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에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반응은 단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면서도 아직 하나님의 일하심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하는 반응으로 연결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그치시거나 재촉하지 않으십니다.
->18장 전반부에서 또다시 계시의 사역을 행하십니다.
->이 과정을 하나님편에서 보면 너무나 답답한 것이나 이 과정을 '설복'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인내하시고 설득하셔서 끝에는 수긍하며 엎드리지 아니할 수 없는 자리까지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강조하는 표현이 '설복'입니다.
->이제 엘리야에게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고백이 터져나올 것입니다.
->그 신뢰의 고백은 엘리야의 믿음이 대단했거나 영성이 특별했기 때문이 아닌 하나님이 그에 대하여 설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설복하게 될 때까지 하나님이 그의 삶에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새벽기도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나와있는 우리의 삶이 가능한 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설복하시기까지 일하신 결과인 것을 함께 고백하며 나아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다는 것은 정말 기적중에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친히 지으신 우리를 사랑하시되 하나님을 떠나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 엘리야와 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 설복의 결과인 것을 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즐 아노라'는 탄성을 들을 수 있는 성도의 삶을 날마다 더욱 복되게 누려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