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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3-10.20 새벽말씀

권화영2023.10.20 10:4410.20조회 수 1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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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열왕기상18:1-15)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성경을 볼 때 중요한 관점은 '창세기3장부터 십자가 사건까지의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가 주인되기로 결단한 인간을 죄가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유자였던 인간이 죄의 종이 되어 죄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적인 상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 죄에 대하여 살고 죄만 아는 자'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죄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창세기와 복음서 사이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죄인이라는 것을 반드시 전제해야 합니다.

->모든 인물이 죄인이라는 것을 전제한 후부터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전에는 이사람이 무슨일을 했는지 본받을 만한 모습이 있는지 인물중심으로 사람의 행동에 따라서 복을 주시거나 벌을 내리시는 일반적인 신의 개념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인됨을 전제하게 되면 성경의 어느 장도 하나님의 일하심이 없는 장이 없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에스더서도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동일한 죄인으로 바라보며,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과 모르드개의 애국애족의 정신이 아닌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을 왕삼은 망한 백성을 포로로 사로잡혀간 땅에서도 끝까지 책임지시고 멸절될 수 밖에 없는 위기 가운데에서 은혜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입니다.

->열왕기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는 대신 요구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은 왕정제도였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이 왕이 되어 자기들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왕정시대 자체가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은 시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보시기에 더 악을 행했다하여 더 악한 죄인이 아니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하여 죄인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인이 아닌 것 같은 사람이 등장하며,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만 찾아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자로 사용하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예를들어 오늘 본문의 오바댜와 같은 인물이 그러합니다.

->(열왕기상18:3-4)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말합니다.

->마치 일제강점기에 독립투사를 돕는일과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죽음을 무릅쓴 행동을 한 것입니다.

->(열왕기상18:12)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어두운 아합시대에 스스로 말할 만큼 한줄기 빛이 될만한 하나님의 사람인 것처럼 보입니다.

->과연 본문의 초점이 엘리야와 더불어 오바댜의 신앙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것인지 들여다보기 원합니다.

 

->살기충천한 이세벨의 위협속에서도 선지자를 백 명이나 도왔던 오바댜입니다.

->이러한 오바댜라면 '아합에게 가서 내가 있는 곳을 알리라'는 엘리야에 대하여 조금도 주저함없이 아합에게 알리겠다고 말하는 것이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의 일반적인 태도입니다.

->기근이 길어지자 아합이 오바댜와 물 근원을 찾아서 직접 나서게 됩니다.

->지역을 나누어 찾기로 하고 서로 다른 길로 갈 때에 오바댜가 가던 길 위에서 엘리야를 만났고 한눈에 알아보며, 하는 말은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열왕기상18:7-9) 이세벨 앞에서도 죽음을 불사한 것처럼 보였던 오바댜가 아합의 손에 넘겨져서 죽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앞선 17장에서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과부와 엘리야가 보인 반응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열왕기상18:10-12) 오바댜는 하나님도 엘리야도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18:13) 오바댜는 여호와의 선지자에게 떡과 물을 먹였으며, 할 만큼 했으니 자신을 위험하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18:16)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그에게 말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가다가'

->이후 오바댜는 더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멋있게 등장한 것 같았지만 엘리야를 만나고 나서 온통 겁먹기만 하다가 아합과 연결해 주는 것으로 역할을 다합니다.

 

->엘리야와 오바댜가 만나는 장면에서 마치 독립투사들이 만나는 것 같은 비장한 모습이 아니라 열왕기상 18장이 가능하도록 지금까지 역사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숨기고 먹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했다'는 설명에 답이 있습니다.

->'경외하다'라는 단어는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두려워하다'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오바댜가 엘리야에게 한 말들을 고려해 본다면 이세벨보다 더 두려운 존재의 드라이브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행동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선지자들을 보호한 행동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앞선 17장에서 하나님이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리시는 과정, 엘리야 한사람을 기르치기 위해서 세번씩이나 계시사건을 일키신 하나님이 오바댜에게도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로 하여금 오바댜를 만나게 하시고 그를 통해서 아합과 이세벨이 엘리야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상세하게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기까지가 오바댜의 역할입니다.

 

->하나님이 오바댜를 통해서 상세한 상황을 듣게 하신 이유는 17장의 일하심을 통해서 18장의 엘리야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마치 창세기12-21장 까지의 일하심을 통해 아브라함을 변화시키신 하나님이 22장에서 이삭을 바치게 하는 상황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보여주시기 위함인 것처럼 변화된 엘리야를 보여주시는 장면이 (열왕기상18:15)부터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18:1-2) 엘리야가 기꺼이 아합에게 갈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엘리야의 그간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신뢰했기에 엘리야는 아합을 향한 발걸음을 편안히 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죽을 것 같은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기에 내딛을 수 있는 걸음이었습니다.

->(열왕기상18:15) '엘리야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오늘 아합에게 보이리라' 말합니다.

->오바댜의 말을 듣고 나서도 '내가 오늘 아합에게 보이리라'고 여호와를 진정으로 신뢰하는 엘리야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아합에게로 가는 여호와를 지극히 두려워하는 오바댜 사이에서 하나님을 아는 자의 다름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제 이후로 아합과 만나는 장면을 묵상하시면서 엘리야의 다름을 확인하실 수 있기를 바라고 그 다름이 엘리야의 남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와 은혜로 말미암은 거룩함인 것을 분별할 수 있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성도되게 하신 은혜를 엘리야보다 더 멋지고 평안하게 누려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또한 엘리야보다 더 복된 자리, 하나님을 더 알며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성도의 자리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더 큰 은혜인지를 우리가 고백하면서 나아갈 수 있게 된 줄로 믿고 그러한 은혜가 경험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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