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2,000여년 동안 사단의 방해를 이기시고, 한 사람 '아브라함'을 찾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의 첫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구속사는 나 같은 죄인 한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눈물의 역사'입니다.
* 아브라함의 역사(History of Abraham)에 대하여 좀더 상세하게 알아 보곘습니다.
1. 아브라함의 출생(창11:26), 주전 2166년
Birth of Abraham(Gen 11:26)
노아 892세, 셈 390세, 아버지 데라 70세
아브라함과 노아는 58년간 동시대에 인물이며, 아브라함이 출생할 때 노아로부터 아비 데라까지 10대 조상이 모두 생존(노아, 셈, 아르밧삿, 셀라, 에벨, 벨렉, 르우, 나홀, 데라-창10:21-25, 11:10-26)
아브라함은 아담부터 약 2,000년 후의 인물이며, 다시 아브라함부터 약 2,000년이 흐른 후에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탄생합니다(마1:1). 인류의 기원이 되는 아담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구속 역사의 분기점이 되는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오늘날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남동쪽 비옥한 땅 갈대아 우르에서 셈의 후손으로 주전 2166년에 태어났습니다. 이때는 노아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은 지 대략 292년 되는 해였고, 당시 갈대아 우르는 왕조가 번영기를 맞이한 시대였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중에서도 특별히 비옥한 땅으로, 문명이 발달하여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역사적 발굴에 의하면 당시 갈대아 우르는 달이나 별 같은 자연물을 중심으로 한 우상 숭배가 만연한 도시였는데,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도, 그 영향을 받아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수24:2-3, 14-15). 특히 아브라함 가족이 살던 우르와 하란은 월신(月神)인 ‘신’(Sin)을 숭배하던 중심지로, 아브라함의 가족 가운데 데라, 사라, 밀가, 라반 등은 달 숭배를 연상시키는 이름들입니다.
화려한 물질문명과 우상 숭배의 환경 속에 살던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곳을 떠나 하란으로 가서 머무르다가, 마침내 75세(주전 2091년)에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였습니다(창12:1-4, 행7:2-4).
2. 아브라함의 소명(주전 2091년, 아브라함 75세)(창11:26-32, 12:1-5, 행7:2-4)
Calling of Abraham(Gen 11:26-32, 12:1-5, Acts 7:2-4)
창세기에 기록된 족보의 연대를 계산해 보면, 노아는 아브라함이 태어났을 때 아직 살아 있었으며, 아브라함과 58년이나 동시대에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셈은 아브라함보다 더 오래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노아, 셈, 에벨 같은 경건한 조상들의 신앙을 여러 경로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수받았을 것입니다. 경건한 조상들의 신앙은 영계가 캄캄해진 암흑시대에 밝은 구원의 빛으로 아브라함에게 전해져 왔고, 우상을 숭배하는 환경에서 자란 아브라함의 믿음을 깨웠을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이교도의 가정에서 성장한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은, 아브라함을 개인적으로 불러 구원하시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 인류 구속의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신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던 땅을 두 번 떠났는데, 첫 번째는 아버지 데라와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이고(창11:31, 행7:2-3), 두 번째는 아버지 데라와 함께 오랫동안 정착하여 살던 하란을 75세에 떠난 것입니다(창12:4, 행7:4). 그러나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후 60년 동안 하란에 더 살다가 205세에 그곳에서 죽었습니다(창11:32)
히브리서 11:9에서는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였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도 반겨 주지 않는 낯선 이방 땅에서 아브라함이 나그네로 쓸쓸하고 고독한 세월을 보냈음을 나타냅니다, 이에 대하여 스데반은 사도행전 7:5에서, “그러나 여기서 발붙일 만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라고 설교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온 이후(창12:1-4) 아브라함은 나그네로서의 삶 가운데 고달픈 일들을 얼마나 많이 겪었겠습니까? 타국이기에 억울한 대접을 받아도 말 못하고 무수히 참으며 눈물로 지낸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나온 바 본향을 생각지 않고 돌아갈 기회가 여러 번 있었으나 돌아가지 않고 오직 더 나은 하늘 본향만을 사모했습니다(히11:15-16).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만을 소망하면서 가는 곳마다 믿음으로 여호와 앞에 제단을 쌓았고, 그때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으며 임마누엘의 삶을 살았습니다(창12:7-8, 13:4).
3. 횃불 언약식 체결(창15:1-21), 주전 2082년
Ratification of the covenant of the torch(Gen 15:1-21)
아브라함 84세, 가나안에 도착한 지 10년째(창16:3)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가시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통하여 체결된 언약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노아의 대홍수 후에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베푸신 ‘무지개 언약’(창9:8-17)과, 야곱이 벧엘에서 받은 ‘사닥다리 언약’(창28:10-22), 그리고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과 맺은 ‘횃불 언약’입니다.
그 가운데 오직 횃불 언약에서만 언약의 증표로 ‘희생 제물’이 등장합니다(창15:8-10, 17). 이 희생 제사는 장차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속죄 제물로 드려질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예표하고 있습니다(요1:29, 고전5:7).
횃불 언약의 특징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다는 점입니다(창15:17, 사10:17, 62:1)
당시의 일반적인 계약 방식은 쪼갠 고기 사이로 계약을 맺은 양쪽 당사자가 같이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횃불 언약에서는 하나님께서 홀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인간이 타락 후에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가 되어,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상대하여 언약을 체결할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한하신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통하여 일방적으로 언약을 체결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먼저 사랑이요(요일4:10, 19) 은혜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구원도 각 사람의 행위나 업적이나 자격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 사랑과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엡2:8-10).
4. 사라의 여종인 애굽 여자 하갈을 취함(창16:1-14)
Abraham takes Sarah’s Egyptian maidservant Hagar(Gen16:1-14)
주전 2081년, 횃불 언약 1년째, 아브라함 85세
아브라함이 사라의 여종인 애굽 여자 하갈을 첩으로 취할 때 그의 나이는 대략 85세(주전 2081년)였습니다(창16:3)
아브라함과 사라가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사라를 누이로 속여 애굽 왕 바로가 사라를 취할 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창12:10-20). 그때 바로가 아브라함을 후대하여 대가로 준 선물(양, 소, 노비, 암수 나귀, 약대) 가운데 ‘노비’가 있었는데, 그 노비 가운데 하나가 ‘애굽 여자 하갈’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란을 떠날 때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창12:1-4), 10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나이 84세에, 하나님께서는 횃불 언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 별을 보여주시면서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5:5). 그러나 이러한 약속을 받고 1년도 채 지나기 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부인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을 첩으로 취하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였습니다(창16:2). 이 일로 인하여 후에 아브라함의 가정은 큰 불화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하갈은 아브라함과 동침하여 잉태한 후에 여주인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하였습니다(창16:4).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받은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창16:5)라고 했는데, 여기 “욕”은 히브리어로 ‘하마쓰’이며, ‘포악, 강포, 폭력, 나쁜 것’이란 뜻입니다(창6:11). 하갈의 멸시를 받은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을 원망하며 하갈을 학대하였습니다(창16:6). 창세기 16:6의 “학대하였더니”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나’의 피엘(강조)형으로서,
이것은 창세기 15:13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당하는 괴로움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사라가 하갈을 아주 혹독하게 괴롭혔으며, 이에 하갈이 도망을 치고 말았던 것입니다(창16:6下).
‘하갈’은 ‘도망, 탈출’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대로 여주인 사라로부터 도망친 것입니다. 하갈은 자신의 교만 때문에 사라에게서 도망쳐 광야에서 방황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하갈까지도 외면치 않고 찾아가 만나 주셨습니다.
창세기 16: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술 길”은 헤브론과 브엘세바에서 남서쪽으로 통하는 대상로이며, 애굽 북동쪽 국경 지역에서 가까운 가나안 남부 지역입니다(창20:1, 25:18, 출15:22, 삼상15:7, 27:8).
하나님께서 애굽을 향해 도망가는 하갈에게 분부하신 첫 말씀은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라는 것이었습니다(창16:9). 사라가 불친절하게 학대를 할지라도 오히려 그동안의 허물과 실수를 사죄하고, 너의 본분을 다하여 순종하고 충성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갈에게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라고 축복하셨습니다(창16:10). 그리고 지금 잉태한 아이가 ‘아들’이며,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녀의 고통을 크게 위로해 주셨습니다(창16:11). 또한 그 아들이 모든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다툼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전해 주었습니다(창16:12). 이때 하갈은 자신이 경험한 그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자신이 하나님을 뵈온 큰 체험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그 근처 샘물에다가 “브엘라해로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뜻은 ‘살아 계셔서 나를 지켜보시는 자의 우물’입니다(창16:13-14).
참으로 아무 자격이 없는 애굽 여종 하갈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이유는, 하갈을 사라 수하에 들어가도록 하여 헝클어진 영적 질서를 다시 바로잡고 사라를 통한 언약을 이루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지 못하고 사람의 말을 들은 결과 스스로 인생의 노정을 험난하게 만들었고, 자신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고통을 겪고 방황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5. 여종 하갈을 통한 ‘이스마엘’의 출생(창16:15-16)
Birth of Ishmael through Hargar(Gen16:15-16)
주전 2080년, 횃불 언약 2년째, 아브라함 86세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때는 아브라함 86세(주전 2080년)였습니다(창16:16). 아브라함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창15:4)라고 하신 후손에 대한 약속을, 어리석게도 사라의 말을 듣고 몸종 하갈을 통해서 이루려 하였습니다. 횃불 언약을 체결하기 직전에도 아브라함은 다메섹 엘리에셀을 자신의 후사로 삼으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창15:3). 하나님의 뜻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성취하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방법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며, 인간적인 방법으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사55:9).
아브라함과 사라의 불신은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가정의 불화와 분쟁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이 불행은 아브라함 당대에 끝나지 않고 먼 훗날 아브라함의 자손에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쫓겨난 하갈은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할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로부터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창21:18). 이에 하갈은 이스마엘이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자기와 같은 종족인 애굽 여인을 이스마엘의 아내로 삼게 하였고(창21:21), 그 아들들은 열두 부족(느바욧, 게달, 앗브엘, 밉삼, 미스바, 두마, 맛사, 하닷, 데마, 여둘, 나비스, 게드마)의 지도자(방백)가 되었습니다(창25:12-18).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99세에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라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었습니다(창17:20). 또한 그보다 14년 전(아브라함 85세), 임신 중인 하갈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창16:10)라고 하신 말씀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이스마엘의 장래에 관하여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창16: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은 오늘날 아랍 족속의 조상입니다. 중동 전쟁은 유대인과 아랍인의 싸움인데, ‘유대인’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신 ‘이삭의 후예’입니다. 결국 오늘날 중동 전쟁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자손을 주실 때까지 믿음으로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여 인간적인 방법을 시도한 결과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행한 방법이 이처럼 그 자신과 후손에게 큰 가시와 올무가 된 것입니다.
6. 아브라함과 사라의 개명(창17:5, 15-16)과 할례 언약 (창17:9-14, 17-27)
Abraham and Sarai renamed(Gen 17, 15-16) Covenant of circumcision
(Gen17:9-14, 17-24)
주전 2067, 횃불 언약 15년째
아브라함 99세, 사라 89세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은 이후 13년 동안 한 번도 그에게 나타나지 않으셨고 철저하게 침묵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불신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신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99세 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창17:1)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아니 엘 샤다이”로 이것은 ‘네가 지금까지 믿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한 번 약속한 것은 아무리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이루는 존재’임을 아브라함에게 상기시키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개명(改名)을 명하신 후, 할례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창17:9-14). 본래 이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열국의 아버지)’으로 개명되었습니다(창17:5). ‘아브람’은 ‘고귀한 아버지’라는 뜻으로 개인적인 의미를 가지며, ‘아브라함’은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공적(公的)인 의미를 가집니다. 이것은 장차 아브라함이 혈통을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될 것을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롬4:16, 갈3:7, 29)
이 후에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명령하셨습니다.
할례(circumcision)는 히브리어로 ‘물로트’, 헬라어로 ‘페리토메’인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가 난 지 8일 만에 생식기 끝의 껍질을 베어내는 예식입니다(창17:12, 레12:3, 눅2:21).
창세기 17:10에서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표이자(창17:14), 언약을 준수하겠다는 표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의 표징’으로서(창17:11), 언약의 징표가 몸에 흔적으로 남아 있어 항상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하도록 하신 중대한 예식입니다(창17:13).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개명과 할례를 명령하신 후에, 바로 사라의 이름을 개명하시고 아들이 생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창17:16). 아브라함의 아내는 본래의 이름 ‘사래’에서 ‘사라’로 개명되었습니다(창17:15-16). ‘사래’는 ‘여주인, 나의 공주’라는 뜻으로 단순히 한 가정의 여주인이라는 의미이지만, ‘사라’는 ‘열국의 어미’라는 뜻으로 공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사라가 낳은 이삭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많이 나타날 것을 예시하신 것입니다(갈4:26, 31).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할례 언약을 통하여 자손을 약속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아들이 생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창17:17-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창17:19)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할 자가 아니고 이삭만이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할 자라는 것을 확실히 선포하셨습니다. 하갈이 낳은 아들 이스마엘도 열두 방백을 낳아 큰 나라가 되게 할 것이지만,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7:20-2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습니다(창17:22).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날, 아브라함은 곧바로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할례를 시행하였습니다. “당일에” 아브라함 자신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그 집의 모든 남자(집에서 생장한 자와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습니다(창17:2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