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의 세 시기(14대, 14대, 14대)
THE THREE PERIODS OF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1.족보를 세 시기로 나눈 의미
The Meaning of the Three Periods of the Gnealogy
1) 성경에서 숫자가 많이 등장하는데 저자인 하나님께서 아무 의미가 없이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고전14:10)라고 말씀하였습니다.
‘7’은 하늘의 수 3(성부, 성자, 성령)과 땅의 수 4(동, 서, 남, 북)를 합한 수로서 ‘완전수’라고 하며, 7+7=14은 ‘완전수’+‘완전수’로서, 14+14+14=42세대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 필요하고도 충분한 세대임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압축하여 놓은 것이 족보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5장 1절의 아담의 족보{(세페르(책) 톨레돗(족보)}나 마태복음 1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비블로스(책) 게네세오스(족보)}를 “족보 책”이라고 합니다.
2) 다윗의 이름 히브리어 ‘다비드’의 숫자가 ‘달렛’(4)+‘바브’(6)+‘달렛’(4)=14로서 세시기를 14+14+14=42로 나타냅니다.
3) 이스라엘 달력은 니산월을 기준한 종교력보다 티쉬리월을 기준한 민력인 태음력(14일 마다 달의 크기가 변화)에 따라 제 1기는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가는 14일, 제 2기는 보름달에서 초승달로 가는 14일, 제 3기는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가는 14일에서 “14”가 유래하였다고도 합니다.
4) 제 1기 14대는 제 14대 째 다윗 왕을 향해 ‘성장기’, 제 2기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다윗’으로부터 시작된 ‘쇠퇴기’의 14대, 마지막 제 3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향한 ‘회복기’의 14대를 나타냅니다.
5) 신명기 33:1-49에서, 주전 1446년 유월절 다음날인 1월 15일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목전에서 손을 쳐들고 의기양양하게 라암셋에서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41곳에 진을 쳤으며, 41번째 진친 곳은 BC 1407년 11월 1일 모압평지입니다(신1:3, 민33:3, 48). 모압은 ‘아비의 소생, 나의 아버지로부터’라는 뜻입니다. 모압은 여리고 맞은 편 요단 가에 있는 평지입니다(민22:1). “진영이 벧여시못에서부터 아벨싯딤에 이르렀더라”(민33:49)라고 하였는데, 벧여시못부터 아벨싯딤까지는 대략 8km 거리이므로, 이것으로 이스라엘 진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압 평지로 오기 전에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Sihon)과 바산 왕 옥(Og)을 쳐서 그 땅을 정복하였습니다(민21:21-35). 바산 왕과의 전투에서는 멀리 ‘에드레이’까지 올라가 싸웠습니다(민21:33).
모압 평지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발람 선지자의 꾀에 빠져 이방 여인과 음행한 결과 24,000명이 염병으로 죽은 사건이 있었으며(민25:1-9), 제 2차 군인 계수(601,730, 레위 지파 제외)(민26:1-51, 민26:62)가 실시되었고,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민31장), 요단 동편 땅을 분배하였습니다(민 32장). 또한 모세가 마지막으로 광야 제 2세대에게 율법을 재 강론하여 하나님 말씀으로 단단히 재 무장시켰습니다(신1:3-5).
모압 족속은 롯이 큰딸을 통해서 낳은 아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창19:33-37). 그래서 모압은 ‘아비의 소생, 나의 아버지로부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약 1년 가까이 머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받고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가나안에 정탐꾼을 보내어, 결국 약 38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이 선포되었습니다. 신명기 1:5에서 “모세가 요단 저쪽 모압 땅에서 이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설명하기를”은 히브리어로 ‘파다, 새기다’라는 뜻의 ‘바아르’로서, 여기에서는 동사의 피엘 완료형으로 사용되어 ‘상세하게 풀어서 설명하다, 명백히 새기다’라는 뜻이 됩니다. 즉 새로운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율법의 의미를 밝히 설명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속에 새겨지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나안 입성 직전, 마지막 ‘모압 평지’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각별히 주목해야 합니다.
은혜의 말씀, 복된 말씀은 오직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약1:17).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말씀을 귀히 여기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면 가나안 땅에서 복을 받아 번성하며 장수할 것입니다(신30:16).
주의 날이 가까울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해야 합니다(딤후3:14).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창18:18-19, 신6:7, 11:19, 잠22:6).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부종(附從)’하고(신30:20), ‘하나님께 친근(親近)’히 하는 생활입니다(신10:20, 수22:5, 23:8). ‘부종’과 ‘친근’은 모두 히브리어로 ‘다바크’입니다. 그 뜻은 ‘매달리다, 집착하다, 굳게 결합하다’ 입니다. 남녀가 한 몸이 되는 것처럼(창2:24)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가 되어 영적으로 완전무장할 때, 비로소 하나님 나라에 당당히 입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재 무장하여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있는 ‘길갈’에 42번째 진을 쳤습니다. ‘진을 친다’는 영어로는 ‘tented’이며 ‘거한다’라는 뜻입니다.
6) 길갈은 제 42차로 진을 친 장소입니다(수4:19). 길갈의 의미는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수5:9)는 뜻으로, 그 어원은 ‘구르다, 굴러 떨어지다’라는 뜻의 ‘갈랄’입니다. 요단 서편 여리고 동쪽에 위치하며 요단강에서 8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진을 친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통과한 후 이곳에 열두 돌의 기념비를 세웠고(수4:19-24), 할례를 행하였으며(수5:2-9), 유월절을 지켰습니다(수5:10-11). 유월절을 지킨 후에는 만나가 그쳤습니다(수5:12). 길갈은 훗날 가나안 정복의 교두보(橋頭堡)가 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수9:6, 14:6).
총 광야 생활 기간이 5일 부족한 40년에 약속의 땅 가나안 입성하여 “첫째 달(정월)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편) 경계(지경) 길갈에 진”(수4:19)을 쳤습니다.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하나님께서는 광야 노중에서 난 자들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수5:5). 그 이유는 그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38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기 시작한 이후 할례를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를 통하여 다시 가나안을 소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언약된 백성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공격해 올 수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할례를 받은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순종과 믿음을 뜻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례를 받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켜 주실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할례의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시고, 여호수아 5:9에서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애굽의 수치’란 무엇을 뜻합니까?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받았던 수치요, 광야 40년 동안 애굽의 속성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했던 죄인의 수치입니다. 긍휼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할례와 함께 이 모든 수치를 다 해결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수치스러운 과거의 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악된 인생들이 당해야 할 수치를 걸머지시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사53:3-6, 히12:2). 우리의 죄로 인한 부끄러운 수치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전히 굴려 버리심으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고후5: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 성도들의 모든 죄악된 수치가 영영히 사라지고(욜2:26-27) 마지막 나팔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살전4:16-17, 고전15:51-53, 빌3:21, 요일3:2).
7) 예수님의 족보에서도 41대까지는 사람(남자)에게서 ‘낳고 낳고’(에겐에센, 능동태)였지만, 42대 째는 마태복음 1:16에서 “ ...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라고 여자에게서 ‘나시니라’(에겐겐네데, 수동태)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3:15의 성취입니다.
요한복음 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거하시며’는 ‘tented’입니다.
8) 성도들은 42대 만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의 말씀으로 훈련받고, 절대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여” 새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가나안 땅(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는 ① 이 세상(광야) 노정에서 불평 불만하지 말어야 하며 ②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예수님 안에 거하여 예수님과 함께 영생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삶을 사는 자만이 가능한 길입니다.
천국을 들어갈 때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에베소서 6:10-17의 하나님 말씀에서 보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는 방어용 무기이지만 17절에는 강력한 말씀의 공격용 무기가 있습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0:2에서는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작은 책)를 들고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라고 하였고, 요한계시록 10:8-9에서는 ‘작은 두루마리(작은 책)을 먹어 버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압을 벌하시고(사25:10), 시온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십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고 ‘길갈’의 뜻처럼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천하에서 제하시리라(사25:6-22)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꼭 붙잡고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고 있으며, 모압에서 마지막 나팔 소리가 있듯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성도들에게 마지막 나팔 소리에 깨어 있는 자들이나 잠자는 자들은 사망을 삼키고 순식간에 다 변화될 것입니다(고전15:5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