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시편 92:1-15) '주께서 행하신 일'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표제는 '안식일의 찬송 시' 입니다.
->안식일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편인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안식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2-3) 안식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안식의 사전적 의미는 '편히 쉰다'입니다.
->(창세기 2:2-3) 핵심은 '마치시니, 마치시고' 입니다.
->하나님이 창조로 뜻하시고 계획하신 모든 일을 '마치셨다, 완성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2:3)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어떤 결핍이나 부족없이 모두 완성하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일곱째 날만 거룩하고 복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날 이후의 모든 날이 복되고 거룩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창조의 은혜와 분복을 누리는 모든 날이 안식일이고 주님의 날인 것입니다.
->매일의 삶이 안식이고 주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안식을 스스로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안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죄인인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안식을 갈구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무엇으로도 안식을 얻지 못하는 형편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들 가운데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하나님을 떠나서 결코 안식할 수 없는 길, 파멸과 고생이 있는 길을 걸어가는 죄인들에게 오직 하나님 안에 있는 안식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출애굽의 은혜는 자기들의 힘으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종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백성 된 자리로 옮기시는 은혜를 베푸신 후에 안식일을 제정하십니다.
->출애굽기의 안식일에서 가장 핵심은 '아무일도 하지 말라' 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의 수고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죄인의 수준을 헤아려서 하신 말씀입니다.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이 초점이 아니라 '아무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기억해야 하는 바'가 초점입니다.
->안식일을 제정한 의도와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하나님 안에만 안식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매일 만나를 내려주시고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치의 만나를 내려주시는 세심한 배려는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었습니다.
->안식일은 단순히 쉬는 날, 아무일도 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안식일이라는 표제처럼 이러한 마음을 담아서 찬송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도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지존자,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부르며 찬양하는 것으로 노래를 시작합니다.
->(1-3절) 하나님이 지존자로서 인생을 위하시는 분이심을 인자와 성실로써 일하심을 통하여 알게 하셨기에 시편기자의 고백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 가운데 드리는 감사, 찬양, 기도, 봉헌 등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반응으로써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내게 주어진 결과에 대한 반응일 뿐 내가 원하는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이것이 타종교와의 차이입니다.
->(4,5절)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내가 기쁘고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친다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신앙의 바른순서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기독교는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종교이고 그 일하심의 혜택을 받아 감사하고 찬양하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경배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지존하시기에 일하신다는 개념이 자연스러워져야 합니다.
->세상의 지존자는 결코 일하지 않고 일함의 혜택을 자신이 누릴 뿐입니다.
->하나님이 지존자라할 때에는 지존자의 일하심의 혜택을 인생이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존자로서 하나님에 대하여 어리석은 자와 무지한 자를 경히 여기시거나 내버리지 않으시고 도리어 불쌍히 여기시어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때까지 감당하시고 설득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아볼 때까지, 알게 될 때까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사랑할 때까지 그들을 위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주시는 것이 어리석은 자와 무지한 자에게 필요한 일인 것입니다.
->(7,10절)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시편기자가 받은 은혜입니다.
->(11절) '내 원수들이 보응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귀로 들었도다'
->보응의 원리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시편기자의 기도대로 우리도 기도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죄인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은 다릅니다.
->죄인은 언제나 행함을 기준으로 악인과 의인을 나눕니다.
->자기기준으로 악한행동과 선한행동을 나눕니다.
->나와 원수이거나 나를 치면 보응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구약과 복음서 가운데에서의 하나님은 악인과 의인을 구분하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죄를 범할 수 밖에 없음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악인과 의인을 구분하지 않으십니다.
->(마5:45)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예수님의 산상수훈 가운데에서 악인과 선인,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가 따로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설명하시는 말씀입니다.
->악인과 불의한 자일지라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해를 비추시고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을 떠나서 원수된 죄인 일지라도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하신다는 복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죄인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전혀다른 것입니다.
->(12,13절) 하나님을 떠나서 죄가운데 심기고 뿌리를 내려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여호와의 집으로 옮겨 심으셔서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시편기자의 고백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의 의인이 누리는 복을 담아내십니다.
->기자 자신은 자기 행위의 결과로 생각할지 몰라도 하나님이 죄인들 가운데서 자기백성으로 택하여 부르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의인이라 칭함을 받고 의인의 복을 누리는 일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죄인 되었던 우리에게 주께서 동일하게 행하신 일,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는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안식을 누릴 수 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셔서 우리의 안식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안식을 결코 누릴 수 없으며, 영원히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멸망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셔서 우리의 안식이 되어주신 것, 죄인된 우리를 하나님의 안식의 자리로 들어올 수 있도록 끌어안아주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의 강조점은 '내게로 오라'가 아닌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입니다.
->그 이유는 아무도 예수를 하나님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았으며, 모든 사람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도망가고 말았지만 예수님은 기꺼이 모든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안식으로 죄인들을 다시 불러 모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기꺼이 행하신 것입니다.
->불의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는 것만이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 안에서 창조 때의 안식을 누리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예수님이 아셨기 때문입니다.
->(15절)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라'
->하나님께 불의가 없음을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선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악 가운데 있는 자기백성을 구원하시는 일로써 하나님께서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된다는 사실을 바라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께서 행하신 일, 복음으로 말미암아 회복된 안식을 누리시고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자답게 여유가 넘치고 포용력 있는 삶으로 성도됨을 세상가운데 선포하시며 나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