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예레미야 21:1-14)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시기를 특정할 만한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이름이 등장합니다.
->20장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자 여호와의 성전 총감독인 바스훌이 유다백성의 영적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샘플이었듯이 시드기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드기야가 여호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유다백성이 여호와를 어떻게 대했는지 여호와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드기야를 통해서 여호와의 백성이 여호와를 전혀 의지, 의뢰하지 않았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21:1-2) 시드기야의 짧은 말 속에서도 여호와가 언급되고 있지만 여호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드기야의 말을 들여다 보기 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주위 민족들과 같이 왕을 세우고자 할 때 기억하라고 했던 신명기의 두 가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왕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지만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왕을 원할 것을 아셨기에 미리 주셨던 말씀입니다.
->(신명기17:18-20) 첫째, '하나님은 율법책을 평생 자기 옆에 두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배우라'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을 찾아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왕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야하는 주체가 왕이지만 왕이 대표하는 모든 백성도 그러해야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21:2)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라고 시드기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시드기야에게 여호와는 옆에 계신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시드기야의 관계는 중재자의 중재자가 있기까지 거리가 굉장히 먼, 멀다못해 완전히 단절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들이닥칠 때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분간하지 못하고 죄에서 돌이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둘째, '율법과 율법의 모든 말과 규례를 지켜 행하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삶의 결과를 복으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복을 전혀 누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자기들이 얼마나 복을 받았는지, 이 복을 자신들만 갖고 있을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흘러 보내야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에 하나님의 백성된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고 세움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혜택을 누리지 못했으며, 급박한 위기상황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활용하지도 못했습니다.
->(예레미야11:4-5) 이스라엘의 순종이 선행되어야 이루어질 약속처럼 보이나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고 하신 약속을 이루셨으며, 이 약속은 이스라엘이 순종한 행위의 결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어 주겠다, 되어 주리라' 말씀하셨으나 약속을 붙들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지독하게 불순종했으나 하나님이 맹세하셨던 대로 행하셨기에 이루어진 은혜의 결과로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땅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이스라엘을 바로 오늘 증명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오늘이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약속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드기야는 하나님도 약속도 몰랐으며 자기 옆에 두지 않았기에 하나님을 의지, 의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21:2) 시드기야의 말속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겠다가 아니라 선지자에게 종교행위, 신탁을 통한 종교적 요행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드기야에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21:3-7) '너희를 무장해제 시키겠다, 전염병에 죽으리라, 전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측은히 , 긍휼히,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 라고 말씀합니다.
->시드기야와 유다백성에게는 실낱같은 희망마저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과장법을 사용하시어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것이 이스라엘이 자취하여 당할 수 밖에 없는 마땅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말을 듣지 않고 나를 떠나서 나의 보호를 받지 않은 결과로 이르게 된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만약 이스라엘을 이러한 종말에 내버려두실 작정이셨다면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끝나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 가지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8절)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그러나 하나님이 사망의 길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자취한 길입니다.
->(9절)'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나' 라고 말씀하시며, 사망의 길 바로 옆에 다른 한 길, 피할 길, 생명의 길을 내주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정복당하면 항복할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을 측은히, 긍휼히, 불쌍히 여기지 않는 바벨론의 손에서 하나님이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에게 역사하시어 너희를 구원하고 보존, 유지하고 말겠다,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약속입니다.
->(12절) 시드기야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아침마다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말씀합니다.
->위기상황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힘들고 복잡한 것, 신이나 종교와 관련된 것도 아닌 일상에 관한 말씀입니다.
->종교적 요행을 바라던 시드기야에게 단지 일상과 관련된 '정의롭게 판결하여' 라고 말씀합니다.
->종교적으로 무엇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일상을 잘 살아라, 일상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복을 누리라 하십니다.
->매일 기도의 자리에 나오시는 우리에게 주시는 응답도 동일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를 베푸시거나 은혜를 약속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를 것을 권하십니다.
->하나님의 일관된 패턴입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왕이 듣지 않으니 유다백성이 들었을리가 없습니다.
->모두가 그리하지 않았으며,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지 않고 자기 안위를 위한 악행만을 지속할 뿐입니다. (악행:하나님을 떠난 것)
->바벨론에 사로 잡히게 될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죄에 사로잡혀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모두 죄에 사로잡혀 죄가 죄인 줄 모르고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떠난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기도하는 시간, 오늘 하루 주어진 시간 속에서 '왜 인생에 복음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가?, 왜 나에게 복음이 필요한가?'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살 길이 없는 우리의 죄성이 자각되신 만큼 복음을 묵상하시고 복음안에 거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성도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존귀하고 소중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여전히 죄가 역사하는 세상의 한복판에서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는 삶,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로 행하는 삶을 복으로 누리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이러한 소망을 갖고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우리의 삶을 맡기십시오.
->우리는 상과 벌, 복과 저주로 동기부여 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 성령께서 복음이 우리를 기도하게 하고 은혜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신비로 이끌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