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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3-8.15 새벽말씀

권화영2023.08.15 10:3908.15조회 수 3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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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예레미야 19:14-20:18)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토기장이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는 그릇과 같이 죄로인한 비참한 결과를 자취할 것이지만 사람을 지으신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이 결코 이스라엘을 깨버리거나 죄인을 내버리지 않으시고 도리어 불쌍히 여기셔서 깨지고 망가진 죄인의 형상을 다른 그릇, 새로운 형상의 그릇으로 만드시겠다는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자기의견에 좋은대로 행하신 결과입니다.

->왜 이런 결과, 은혜를 주셨느냐 물으신다면 그것이 하나님이 좋게 여기신 의견이었다는 대답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내신 다른 그릇, 새로운 그릇은 보배를 가진 질그릇입니다.

->(고린도후서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며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입니다.

->(고린도후서4:4,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가진 보배는 하나님이신 그스리도이십니다.

->질그릇이 귀한 것이 아니라 담고 있는 보배, 그리스도가 귀하기에 귀한 것입니다.

->로마서 9장의 표현대로 진노의 그릇이었던 우리가 어떻게 보배로우신 그리스도를 담는 질그릇으로 새롭게 되었을까요?

->(고린도후서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은 송구영신 때 지나간 과거는 잊고 새롭게 출발하라는 의미로 사용하라고 주신 구절이 아니라 이전 것, 죄인되었던 우리의 옛사람이 지나가고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 새 것이 되었다고 선언하는 복음 중에 복음인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새것이 되었을까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었기에 우리가 새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일어난 일이 무엇이기에 우리가 새것이 되었을까요?

->(고린도후서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한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게 여겨주셨기 때문에 보배를 담은 질그릇으로 새롭게 된 줄로 믿습니다.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결과일진데 죄인되었던 우리가 완전한 깨뜨림을 당하지 않고 도리어 새로운 그릇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우리의 토기장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인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레미야18:6)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의 말씀은 우리를 안심하게 하는 충분한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다루기 전에 토기장이의 비유가 복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더 상기하는 이유는 복음을 전제하고 본문으로부터 20장 끝까지의 내용을 들여다 보아야 하나님과 다른 죄인들이 보일 수 밖에 없는 양상과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행하실 일을 내다보지 못한 예레미야의 한계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14) 예레미야가 도벳에서 돌아와 다시 모든 백성에게 재앙이 내릴 것을 예언한 장소는 여호와의 집 뜰입니다.

->(20:1-2)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채워 두었더니'

-> 예레미야 예언 직후 벌어진 일입니다.

->바스훌은 여호와 성전의 총감독인 여호와의 제사장입니다.

->바스훌은 여호와 성전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여호와를 부정하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하나님의 예언 때문에 하나님의 집에 나무 고랑을 차고 갇혀있는 꼴이므로 어이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단순히 종교지도자 한 사람이 타락한 것으로 보면 안됩니다.

->여호와의 제사장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조차도 여호와에 대하여 무지했다는 것은 온 백성이 그러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에게 희망, 소망은 없는 것이며 온 백성이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는 반증입니다.

->바스훌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관심이 없습니다.

->바스훌에게는 자신의 자리, 기득권을 지키고 유지하며 견고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의 실상입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모든 백성들이 취할 수 밖에 없는 삶의 원리가 이와 같았음을 바스훌이 대표자로써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0:3)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의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을 풀어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예언합니다.

->바스훌의 뜻은 '주위에 비옥한'이며 마골밋사빕은 '사면에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자기 주위의 비옥함을 위해서 힘쓰고 애쓰며 살아온 죄인들의 결과가 사면의 두려움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자기가 중심이 된 원리는 결국 약육강식의 원리로 점철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약육강식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결국 약육강식에 사로잡히게 되고 희생당하고 맙니다.

->이스라엘이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이들은 가장 지혜롭고 가능성 있어보이며 미래가 밝아보이는 선택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구원받은 우리, 복음안에 있어야 할 우리, 세상과 구별되어야 할 우리도 세상의 원리를 당연하게 여기면서 철저하게 순응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몰라서 그렇다 하더라도 성도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잘 되려고 애쓰고 세상기준에 조금도 뒤쳐지지 않으려고 자신 뿐 아니라 자식들까지도 비교와 경쟁의 자리로 몰아넣고 있다면 이것이 더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는 자, 알아야 할 자가 모르는 자처럼 살고 있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며, 불쌍한 일입니다.

->바스훌의 원리로 행하는 자들이 결국 맞이하게 될 결과를 언어유희로 비꼬신 것입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삶에 나타난 결과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지혜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세명의 정적을 제거했을 뿐인데 그 결과 솔로몬을 대적하는 세개의 거대한 세력이 일어난 것으로 인생이 마무리 됩니다.

->외부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위아래에서 에돔의 왕자 하닷과 수리아의 왕국을 건설한 르손이 동맹을 맺고 쳐들어왔고 내부적으로는 신복 여로보암이 반역한 결과로 나라가 분열됩니다.

->솔로몬이 그토록 쟁취하고자 했던 샬롬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20:7-18) 그렇다면 예레미야는 사람과 다른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을 의지, 신뢰하고 있는지 죄로인하여 터져버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기대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원합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시고 선지자로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또한 예레미야가 다른백성보다 하나님께 근접해 있다는 것도 사실이나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신뢰하고 있었다면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의로움을 끝까지 주장하거나 왜 모태에서 죽이지 않았느냐고 항의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될지 저렇게 될지 모르는 입장에서 예언을 듣지 마시고 복음 안에서 은혜를 받은 자로써 예언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써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자, 성도로써 예언을 들으십시오.

->우리는 망할 수도 있고 망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들이 아니라 영원히 보장된 자들입니다.

->죄와 사망의 심판으로부터 자유하게 된 성도로써 예언을 복음으로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로인해 예언을 통해 하나님께서 전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마음이 바르게 분별되어지고 이 세상이 지금 심판의 현장이라는 것도 바르게 보여지며, 그 가운데서 구별된 은혜를 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에 가득한 바스훌의 원리를 바로 분별하여 죄를 이기실 수 있기를 바라며, 그 결국이 마골밋사빕이라는 것이라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영적인 눈을 떠서 바라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그러한 세상으로부터 구별해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기대가 얼마나 크신지 바로 아시어 예레미야와는 다른 반응으로 나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순간에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실 수 있기를 성령께서 그렇게 도우시고 복음안에서 이끌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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