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예레미야 12:7-17) '내 집, 내 소유'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 예레미야서는 성경적 분량이 많아서 대선지서일 뿐 예레미야가 대선자자로 불리울만한 신앙적 위인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쓰실만한 사람,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 쓰시도록 준비된 사람이라는 것은 애당초 없습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르게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순서는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주셔야 사람이 반응할 수 있고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하나님이 세우셔야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사람이 대신하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지금 예레미야가 자기의 능력, 영성, 준비됨과 탁월함으로 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일하는 존재는 오직 하나님이시고 존경과 칭송 받으실 대상도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본받고 닮아가야할 대상도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 개신교에서 성인, 위인이라는 개념이 나올 수 없는 개념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을 참고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참아내고 계십니다.
->예레미야를 참고 계실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혼자서 하는 말과 하나님이 예레미야로 하여금 전하게 하시는 말씀 사이에 차이가 나타나고 차원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마음과 심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불러왔지만 정작 이스라엘에 대하여 눈물을 흘리시고 '슬프도다' 탄식하시면서 말할 수 없이 애통해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과 택하신 백성이 하나님을 떠난 죄로 인하여 깨지고 상하게 된 것을 바라보게 되는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이 어떠한지를 전하시기 위해 예레미야를 택하여 세우신 것입니다.
->(12:1)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이는 질문이 아니라 항의 입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변론을 하시고 인간의 항의를 받으신다는 것은 다른 종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질문이 나올만한 주제가 신정론입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질문이나 예레미야가 질문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레미야가 전했습니다.
->악한 자와 반역한 자가 따로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과 이스라엘이 죄 가운데 있다, 죄인되어 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에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입에서 '그들에게 주의 보복을 보리이다,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구별하여 주옵소서' 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12:6) 하나님이 이러한 예레미야에 대하여 항의하는 말씀입니다.
->'그래 예레미야야 니 말대로 내가 이 땅 주민에게 보복하고 그들을 끌어내어 죽인다면 네 형제와 아버지의 집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 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는 하나님이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하는 예레미야의 생각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12:7-10) '내 집, 내 소유, 내 마음을 사랑하는 것, 내 포도와 내 몫, 내가 기뻐하는 땅'이 강조점입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공존합니다.
->'내 집을 버리며, 내 소유를 내던져,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겼나니, 내 소유를 미워하였음이로다, 내 소유를 삼키게 하나' 어울리지 않는 표현들이 덧붙여져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도 자기 집, 자기 소유를 끔찍이 여기는데 하나님은 내 집, 내 소유라 할지라도 떠나거나 하나님께 죄를 범하면 가차없이 버리시고 내던지실까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이렇게 하실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모든 사람이 죄인 되어있는 상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결과론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결과론이란? 행위의 동기와 상관없이 오직 행위의 결과를 판단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표현과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어떻게 행하셨는지,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에 대하여 어떻게 일하셨는지에 대한 결과만을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포로로 사로잡혀간 중에도 그 백성을 보호, 보존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언하신 예언대로 모든일이 되었다는 것은 그 시간 가운데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버리시거나 내던지시지 않았고 오히려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 자기백성을 위하여 끝까지 신실하게 일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언대로 되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구나, 내던지지 않으시고 끝까지 함께 하면서 보호, 보존하시기 위하여 신실하게 일하심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일하심의 끝에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늘 십자가를 두시고 성경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을 여전히 하나님의 소유로 여기시고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셔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버리시고 내던지시는 사랑으로 죄인 되었던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까지 일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비롯해서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결과론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 소유된 이스라엘에 대한 책임을 다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땅에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으로 살도록 그들을 구원,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성경의 결과를 바라보시면서 성경을 읽어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2:11-13) '온 땅이 황폐함은 이를 마음에 두는 자가 없음이로다, 한 사람도 없음이로다, 모든 육체가 평안하지 못하도다,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고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는 것은 여호와의 분노로 말미암음이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죄에 사로잡혀서 오직 죄의 마음과 원리로만 행한 결과가 황폐함, 평안없음입니다.
->하나님이 밀, 소산을 안주신 것이 아니니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산을 가지고 스스로 수치를 당하는 것이 모든 죄인이 만들어 내는 결과라는 말입니다.
->죄로인한 황폐함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도리어 모든 육체가 평안하지 못하게 된 것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12:15) 불쌍히 여기시기에 구원하시고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잘한 것, 달라진 것이 있어서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12:16-17) 표현상으로 '이스라엘이 내 백성의 도를 따르면 세움을 입으려니와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벌하리라' 조건적 교훈으로 보이지만 이스라엘의 백성 중에 한 사람도 여호와의 도, 백성의 도를 따른 자가 없기에 의미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의미상으로 보면 순종하지 않아 멸절될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하나님의 도를 따르는 백성으로 새롭게 하시겠다는 결과론적인 복음으로 들으실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들으시고 그 복음이 성취된 자로써 우리를 부르시고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복음의 도를 따라 하나님의 백성다운 복 된 삶을 누리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