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예레미야 14:1-12)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가뭄을 겪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예레미야의 대화가 14장 끝까지 이어집니다.
->가뭄이 얼마가 지났는지, 하나님이 가뭄을 의도적으로 주신 것인지, 단순히 비가오지 않는 자연현상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설명은 없습니다.
->성경에 가뭄과 기근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창세기 요셉의 일대기를 보면 애굽의 바로가 애굽 땅에 7년간 풍년이 들고 곧이어 7년간 흉년이 있을 꿈을 꾸었을 때 하나님이 요셉을 통하여 그 꿈을 해석하게 하시어 애굽이 풍년 때에 수확을 잘 관리하여 흉년을 잘 극복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때 7년의 풍년이 하나님의 복이거나 7년의 흉년이 하나님의 벌이라는 설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바로가 요셉의 꿈 해석을 보면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리셨음을 강조합니다.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엘리야가 아합에게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말하고 실제로 3년간 비가 오지 않습니다.
->3년 비가 오지 않는 이때에도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한 벌이라는 설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3년 후에 비가 내릴 때에도 하나님의 재앙이 그쳤다거나 비를 주셔도 될 만큼 이스라엘이 회개했다는 설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유명한 갈멜산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것을 알리신 후에 비를 내려주십니다.
->열왕기하 3장을 보면 북이스라엘 여호람 왕과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 에돔 왕이 동맹을 맺고 모압과 전쟁을 하려고 출전했으나 떠난지 7일만에 군사와 가축을 먹일 물이 없게 됩니다. (세 나라의 동맹만으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전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뭄, 기근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자기들의 잘못으로 물이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골짜기의 개천을 파게 하시어 이들에게 물을 공급해주시고 전쟁에서도 이기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가뭄과 관련된 성경의 사건들은 하나님을 알리시고, 계시하시는 이적이었을 뿐 절대로 인간에게 벌을 내리는 재앙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열 가지 재앙이라고 부르는 출애굽기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애굽에 대하여 내리신 재앙이 아니라 애굽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하나님을 알리시기 위하여 행하신 이적으로써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열가지 재앙을 행하실 때마다 반복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이적이 인간에 대한 재앙과 형벌 그 자체에 목적인적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가뭄이 있었다는 사실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다, 치셨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사고 방식이 기독교인들 가운데 만연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목사님들 중에도 심각한 자연재해를 입은 나라들에 대해 특히 타종교에 기반을 둔 국가들에 대하여 '하나님이 심판하셨다' 말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자연재해보다 심각한 것이 하나님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가뭄을 비롯한 여러 기후의 현상은 인류역사 내내 지속되고 반복되어 왔습니다.
->우리가 유심히 보아야할 것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예레미야의 반응과 예레미야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2-6절) 죄로 인하여 깨진 세상에 가뭄까지 더해져서 이스라엘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2절)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피곤하여 땅 위에서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로 오르도다'
->(4절)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마음이 상해서, 낙심해서, 기가 막혀서) 그의 머리를 가리는도다'
->(7절) 예레미야의 반응입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9절) '어찌하여 놀란 자 같으시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예레미야의 말을 보면 그동안 잘못을 뉘우칠 만큼 제대로 회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10-12절)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이스라엘이 금식하며, 부르짖었고 가뭄이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번제와 소제를 드렸으나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고 듣지 않으셨습니다.'
->이 일은 잘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금식하며, 부르짖고 번제와 소제를 드린 것은 여호와 신앙의 방식이 아니라 우상종교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여도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뭄이 들자 그동안 하지 않던 행동을 합니다. (기우제)
->사람들이 기우제를 드리는 이유는 '신에게 무언가 잘못 것이 있어서 가뭄이 들었다, 잘못한 것에 대하여 신을 달래는 일이 필요하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같은 이유에서 이스라엘의 행동에 기인했습니다.
->이들은 우상종교에서 신을 인식하는 방식과 바알을 섬기던 방법대로 따른 행동이었습니다.
->(10-12절)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듣지않고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않겠고 칼과 기근, 전염병으로 멸하시겠다고 엄포를 놓으시는 이유는 그방식과 방법이 틀렸다는 것, 나는 우상과 다른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가뭄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문제인식은 전혀 다릅니다.
->(10절) 하나님은 정성껏 예배드리지 않음과 합당한 종교행위를 하지 않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죄'가 문제라고 말씀합니다.
->가뭄이 가져온 어려움보다 죄가 가져오는 괴로움이 비할 수 없이 극심하다는 것을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자취한 죄의 결과를 당하고 있으며, 거기에 가뭄이 더하여졌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할 일은 가뭄을 거두고 비를 내려달라고 금식하며, 부르짖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 것이 아니러 죄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어그러진 길로만 행하는 그들의 발을 멈추는 것입니다.
->선지자 호세야를 통하여 간절하게 전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시고 제사를 원하지 않으시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깨닫지 않고 그들의 발을 멈추지 못하며, 죄에서 떠나지 못합니다.
->이것은 비단 이스라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죄를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없도록 죄, 사단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4장 후반부에서 하나님은 이런 죄인의 처지를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눈물을 흘릴만큼 아파하시며,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죄인을 위하여 죄에서 건지시며,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이 일에 관한 소식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로부터 건져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알아가게 되었다, 아는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복음 안에서 우리가 깨닫고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상종교의 방식을 따를 이유, 필요도 없습니다.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 뜻하지 않게 찾아온 고난을 하나님의 벌로 여기지 마시고 제사가 아닌 인애로 번제가 아닌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복음으로 말미암는 변화를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뭄도 어찌할 수 없는 하나님의 풍요, 복음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하늘의 신령한 풍요함을 우리 삶의 자리에서 누리며,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