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매일성경 (누가복음 24장 1절-12절)
4월 21일 새벽예배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시대 당시에는 재산 목록에 아내나 여자가 들어갔습니다. 여성을 재산으로 보았지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도 오천명의 숫자 중에서 여자들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여자들의 지위는 얼마나 낮았던지 여성들은 법정에서 증언을 할 수 없었습니다. 법적 효력이 없었던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영광스런 부활을 처음 목도하고 증언한 사람을 보면 법적인 효력이 있었던 남성들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멸시받고 무시받던 여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보고 제자들에게 증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대상들이 실력있고 능력있는 남성이 아니라, 아무도 인정해주지않는 여성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이러한 일들을 강조합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사람들을 동방박사로 집중하고 있지만 누가복음은 그 중 새벽까지 일하고 있던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천사가 나타났다고 집중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 당시 사회에서 취약한 계층이 목자였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이런 자들을 위해 오셨고 이런 자들이 하나님꼐 가장 먼저 영광을 돌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우리에게 이야기 합니다.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고 누구에게 집중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하나님의 세계는 연약하고 나약한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자신의 사역에 귀하게 사용하시고 놀랍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건강한 사람, 돈있는 사람, 실력있고 능렸있고 지휘가 높은 사람들만 세상에서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 세계에서는 비록 장애가 있거나 사회적으로 큰 명예와 계급이 없다할지라도, 혹은 연약하고 나약하며 미약한 힘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귀하고 존귀하며 놀랍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누가복음은 끝까지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실의 삶에서 어떤 사람도 무시하지않고 존귀하게 여기며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경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을 3년반동안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그 놀라운 기적을 눈앞에서 목도한 제자들조차도 여인들의 말을 듣고 믿지를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성격이 급해서 실제로 무덤에 달려가 보았을 뿐이지, 베드로 외에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믿을 수가 없었기에 확인해 볼 생각조차 안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부활이라는 것은 믿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탄생한 이유를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때 모든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만약 그렇게 예수님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면 우리 기독교는 존재하지않고 유대교만 계속해서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속에서 기됵교가 탄생한 이유는 그 뿔뿔히 흩어지고 도망갔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고 예수님이 진리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초대교회 공동체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일요일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는 토요일에 안식일을 행했던 유대교인들이 그 다음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하기 위해서 모여서 드린 예배가 오늘날 우리들의 예배의 시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때문에 시작된 종교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특별히 믿음이 뛰어나서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진 것이 아니라. 제자들도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이었고 부활을 도저히 논하고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눈으로 예수님을 목도하자 자신들의 인생의 목적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부활이 없다면 죽음은 우리에게 얼마나 황망한 것이겠습니까? 어떤 이는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소중하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삶이 끝난다면 절망적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수 없다면, 이것이 우리의 삶이 마지막이라면 우리 삶의 진정한 소망이 도대체 있을까요?
오늘의 본문을 통해 우리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는 분이 아닌, 부활하셨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분이며 죽음이후의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닌, 죽음 이후의 삶을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우리 인생의 최종목표는 무엇입니까? 많은 분들이 잘 죽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한편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의 최종목표는 잘 죽는 것이 아닌, 결국 영광스러운 부활입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목표는 멋지게 죽는것, 아름다운 인생을 살다가 잘 마감하는 것이 아닌, 부활이 우리의 최종 목적이며 방향이 될때 비로소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게 됩니다. 우리의 목표가 아름다운 죽음이라면 오늘 우리는 다르게 살 수도 있습니다.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게 의미있는 것들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의 최종목표가 죽음이 아닌, 부활이 될때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고 우리의 이 시간을 어떻게 쓰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바르게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도 죽음을 향해 달려갔지만 그분의 최종목적은 부활에 맞춰져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의 목표 역시 영광스러운 부활에 맞춰질때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도 존귀히 여김을 받는다는 사실과,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결국 부활하신 주님이기 때문에 우리 역시 부활할 것이기에 우리의 삶의 목표가 단순한 죽음에 맞춰지는 것이 아닌, 부활에 맞춰질때 우리의 삶이 더욱 가치있고 오늘을 의미있게 잘 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 소망의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소망의 주님과 오늘도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