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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기지교회

4/10 대구기지교회 새벽기도회

선우건2025.04.10 05:2904.10조회 수 9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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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기지교회] 4/10 (목) 새벽기도회

https://youtube.com/live/Ikn6dZmebP8?feature=share

선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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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민 25.04.10 06:35 댓글 수정 삭제

    샬롬~! 매일성경 (누가복음 20장 41절-21장 4절)
    4월 10일 새벽예배말씀입니다. 

    기독교인 중에 프란시스 쉐퍼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정직한 질문에는 정직한 대답이 주어진다는 모토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왔던 분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쓴 글을 보면 그 분이 하나님께 질문을 가지고 갔을 때 얼마나 놀라운 대답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은 정직한 질문에 정직한 대답을 얻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질문을 했고 이것이 실패하면 예수님의 놀라우심 앞에 마음을 정돈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예수님을 곤혹스럽게 하실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질문을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정직한 질문을 하는 것과 안하는 사람의 신앙적인 대답의 깊이와 차이는 엄청난 격차로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질문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함이거나 나의 유익함을 갖기 위함이라면 이 질문은 나의 신앙에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41절)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지 않았던 것처럼 종교지도자들 역시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만 규정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리스도가 주 되심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을 꼬집는 것이 아닌, 본질적으로 그들이 예배하지 않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 특히 서기관들의 외식에 관해 이들은 인사를 받고 높은 자리를 좋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6절) 이들은 왜 종교지도자가 되었을까요?  이들이 종교지도자가 된 이유는 하나님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종교생활을 하니까 권력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들이 그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합니다.(47절) 과부는 구약시대에서 가장 가난한 자이며 도움이 필요한 자에 늘 언급이 되었던 대상입니다. 그런데 과부의 돈까지도 그들은 탐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행하는 일은 가장 가난한 사람의 돈을 빼앗는 강도이면서 종교적인 경건으로 포장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들이 길게 기도하는 이유는 과부를 위해서가 아닌, 과부의 돈을 가져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종교적인 모습으로 약자의 것을 빼앗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분노가 되겠습니까? 그들이 예배하는 대상은 하나님이 아닌, 권력과 돈이었습니다. 중세시대에서 성직자는 높은 위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성직자들이 가장 부패했던 시대가 중세시대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높은 대접을 받기 위해, 선생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돈이 되었기 때문에 성직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일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 중에 이런 일들을 겪음으로 마음이 상하셨던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위로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주님은 과부의 헌금이야기를 통해 중심을 보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의 신은 권력과 돈임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속지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헌금의 금액으로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분이 아닙니다. 과부의 마음을 보고 과부의 헌금이 가장 크다고 칭찬하신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이 주시는 엄청난 위로입니다. 가정의 문제로, 삶의 문제로 예배에 자유롭게 나오는 것이 어려운분들이 계십니다. 노예로 끌려간 요셉도 예배에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며 남의 눈에 띄지않는 곳에서 기도해야했고 일터 가운데서 노예로 살면서 그 순간순간마다 기도해야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것을 가장 큰 예배로 여기셨고 요셉의 삶을 보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평가가 늘 붙습니다. 
     목사님께서 한강의 야경을 보러가셨을때   야경의 아름다움은 누군가가 그시간까지 야근을 하며 만들어낸 아름다움임을 깨달았다고 하십니다. 그때 목사님께서는 일을 해야해서 예배를 빠지는 분들을 판단하기 보다 믿음을 지키려고 틈틈히 말씀을 보거나 기도하는 분들이 있음을 생각하며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닌, 그분들의 삶 가운데 안보이는 곳에서 몸부림치는 그들의 마음을 보는 목회자가 되시고 싶으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배자리에 나오라고 다그치는 목회자가 아닌, 버티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응원과 격려를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주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겉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합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종교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포장했고 으스댔습니다. 낮은 자들을 무시하고 우월감을 느꼈습니다. 오늘도 이런 일이 발생하고 그런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외로운 길, 외롭지 않도록 성령하나님께서 동행하십니다. 믿음의 사람, 성경대로 살아가려는 사람은 외로울 것입니다. 그 분의 겉모습만 보고 기존의 틀대로만 생각하니 힘들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내면을 보시고 응원하십니다. 외롭지 않도록 성령하나님만 동행하는 것이 아닌, 바울에게 디모데를, 다니엘에게 세친구를, 모세에게 아론을 붙여준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 믿음의 사람을 반드시 붙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보시는 주님 앞에서  좌절하지 마시고 때로는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하여 마음 상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그 외로운 길, 혼자 걸어가지 않도록  믿음의 사람을 붙여주실 것을 기대하며 신앙생활을 나아가길 원합니다.  겉으로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거나 나의 종교적인 열심으로 으스대는 것이 아니라 일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우리 공동체에 주어지길 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영성이 주어져서 그들에게 필요한 격려와 힘을 불어주는 역할, "힘드시죠? 당신의 신앙생활이 이 과부의 헌금처럼 큽니다. "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랑의 고백과 입술이 우리 공동체에 주어지는 놀라운 하늘의 역사가 나타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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