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기지교회] 4/4 (금)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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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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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 | 4/7 대구기지교회 새벽기도회1 | 선우건 | 2025.04.07 | 10 |
4/4 대구기지교회 새벽기도회1 | 선우건 | 2025.04.04 | 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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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매일성경 (누가복음 18장 31절- 43절)
4월 4일 새벽예배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었던 기존의 그리스도, 메시아는 강한 힘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정복하는 존재이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정복당하는 존재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본인의 죽음을 세차례나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도저히 이러한 메시아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31-33절)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데 그곳에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예수님을 진정한 메시아로 고백합니다.(38절)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맹인을 고쳐주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시며 구원을 허락하십니다. (42절) 이 말씀은 열두제자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며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 알지 못하던 제자들이 실제로 영적 시각 장애인임을 가르쳐주고 계신 것입니다. 정작 눈을 뜨고 있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인지 모르는데 눈을 뜨지 못한 시각장애인은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 잘 알고 그에게 나아와 긍휼함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때 예수님께서 이 시각 장애인을 구원하시고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는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는 것, 그것이 중요한 신앙생활의 첫번째 시작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메시아의 개념은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힘과 군대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모든 무리들을 다 심판하며 예루살렘 성의 왕좌에 앉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꾸 죽는다고 말씀하시니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생각한 메시아의 개념은 성경에 충실한 개념이 아닌, 본인들이 만들어낸 개념이었기에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이해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나의 생각, 나의 선입견, 나의 삶의 여정을 통해 가지게 된 개념들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나의 모든 지혜와 생각들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것, 그것이 실제적으로 거듭난 삶을 뜻합니다. 나의 삶은 완전히 죽었고, 이제 나의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제자들의 삶이고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맹인을 구원하시는 오늘 이야기는 어제의 본문과 이어져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누가 경험하게 되느냐는 것은 어린아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15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적 전통, 선입견, 개념들 때문에 정작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입니다. 선입견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두번째 부자관원에게 재물을 팔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며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씁하십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부자가 하나님 복을 받았다고 생각했으므로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 대해 오늘 말씀으로 대답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일때 그것이 바로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해 주십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은 앞에 나오는 모든 사례들을 종합한 사례입니다.
1. 끝까지 간청하는 사람, 2.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는 사람, 3. 앞을 보지 못하지만 에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모시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는 분이심을 알고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이 맹인을 예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말렸습니다.(39절) 유대인이 알고 있는 메시아는 힘을 가진 존재이기때문에 이런 약자들이 앞에 나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도저히 나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일지라도 주님앞에 나아오면 치료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긍휼히 여겨주시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참된 메시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선하고 의미있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말도 안되는 막막함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의 힘과 노력이 아닌, 제 3자의 강력한 힘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구원이란 것은 그런 것입니다. 죄와 사망속에 들어와 있을 때 나의 힘과 노력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끝없는 막막함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역사 외에는 그 어떤 사람도 죄와 사망의 지배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기억해야합니다.
나의 연약함과 막막함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나아와 나의 힘으로 거듭날 수 없음을 고백하며 불쌍히 여겨주시길 간구하고 주님을 붙잡으시며 주님과 동행하며 교제하시는 하루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