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구속사이며, 구속사의 경륜을 연구하고 살펴보는 일은 건축물로 말하면 뼈대에 해당하고, 사람의 몸으로 말하면 척추에 해당할 만큼 매우 중대한 일입니다. 가장 높은 정상에 올라야 쭉 뻗은 거대한 대자연의 운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듯이, 성경도 구속사의 관점에서 통시적(通時的)으로 살펴야 저자이신 하나님의 뜻에서 이탈하지 않고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창세기”는 신구약 성경의 압축판이므로, 이 속에 하나님의 구속사가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천지 창조’라는 큰 역사를 시발점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구속사를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구속사의 내용은 ‘창조’(창 1장-2장)와 ‘타락’(창 31-14)과 ‘회복(구원)’과 ‘하늘나라 완성’(창 3:15-계 22장)입니다.
“창세기”의 하나님의 구속사(2,300여년)도, ‘창조’(창 1장-2장), ‘타락’(창 3:1-14), ‘회복과 하늘나라 완성’(창 3:15-창 50장)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셋 족속의 10대인 노아와 셈 족속의 10대인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믿음 장인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노아의 믿음에 대하여는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6절)라고 말씀하였고, 아브라함에 대하여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함께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8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이 두 족장의 공통점은 ‘아직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성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한 믿고, 절대적으로 순종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없이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1. 창세기의 분류
Structure of Genesis
창세기는 2,300년에 걸친 긴 하나님의 구속사이며, 제 1부(창 1-11장)는 신학적으로 ‘원(原) 역사’라고 부르며, 천지 창조, 아담의 창조와 타락, 가인과 아벨, 대홍수, 바벨탑 사건을 주 내용으로 하고 아담부터 시작하여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까지의 기간은 약 2,023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에 반역하는 역사가 계속되고 바벨탑 사건으로 그 절정을 이루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역사를 지속해 오셨습니다.
창세기 11장 끝부분에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이주하는 과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마침내 아담의 후손 중에서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불러내는 역사로 마감되고 있습니다.
제 2부(12-50장)는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태동기로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족장들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제 1부(창1-11장)는 창조 기사와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을 부각시켜 놓았고, 제 2부(창12-50장)는 네 명(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족장 개인의 삶을 중심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전체 연대는 약 280여 년에 불과하지만, 내용의 분량은 제 1부보다 5배 가량 많지만, 역사가 진행된 기간은 제 1부의 1/7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볼 때, 창세기 제 1부는 족보를 통하여(창4-5장, 창10-11장) 많은 세대를 더욱 압축하여 기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는 (1) 하늘과 땅의 족보(창1:1-2:4, 2:4-4:26), (2) 아담의 가족의 족보(창5:1-6:8), (3) 노아의 가족의 족보(창6:9-9:29), (4) 노아의 자손들의 족보(창10:1-11:9), (5) 셈의 족보(창11:10-26), (6) 데라(아브라함)의 족보(창11:27-25:11), (7) 이스마엘의 족보(창25:12-18), (8) 이삭의 족보(창25:19-35:29), (9) 에서의 족보(창36:1-37:1), (10) 야곱의 족보(창37:2-50:26)이며, 열 개의 ‘족보’(톨레돗)로 구성되어 있는데, 1~5번 까지 족보는 창세기의 제 1부에 해당되고, 6~10번 까지의 족보는 창세기의 제 2부에 해당됩니다.
각각의 족보에서 서두를 여는 ‘톨레돗’이라는 단어는, 족보를 소개하는 경우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로 구분되었습니다. 이러한 창세기 구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창세기의 족보는 창조와 타락, 심판과 회복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창세기 5장 족보에서 노아는 아담 타락 이후 홍수 심판에 처해진 인류를 회복시켜 줄 구원의 중심인물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11장의 족보에서 아브라함 또한,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의 구원에 도전하는 인류를 온 지면에 흩으신 심판 가운데서 선택하신 구원의 중심인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둘째, 창세기의 족보는 구원 역사를 담당할 중심인물인 아브라함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열 개의 족보는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앞뒤 다섯 개씩 연결되어 있습니다.
셋째, 창세기 1-11장은 성경 전체의 서론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구속사의 시작과 끝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태고사에 나오는 족보는 단순히 한 인물의 가계도가 아니라 구속사의 뼈대를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세페르 톨레돗(족보 책)
Seper Toledoth(Book of the Generations)
창세기에 나오는 10개의 족보는 모두 히브리어 ‘톨레돗’으로 시작됩니다. 이 말은 ‘대략, 계보, 사적, 후예, 약전’으로 번역됩니다. 그런데 이 열 개의 톨레돗 중 특히 창세기 5:1의 톨레돗 앞에는 히브리어에서 ‘책’을 뜻하는 ‘세페르’라는 단어가 함께 기록되어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즉, ‘세페르 톨레돗’입니다.
창세기5: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위의 말씀에서 ‘계보’는 한자로 ‘이을 계(系), 적을 보(譜)’입니다. 그 뜻은 ‘조상 때부터 혈통이나 집안의 역사를 적은 책, 사람의 혈연관계나 학문, 사상 등의 계통 순서를 나타낸’ 기록입니다. ‘계보’는 히브리어로 ‘세페르 톨레돗’입니다. 여기서 ‘보’(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세페르’는 ‘글, 편지, 두루마리, 책’ 등의 뜻을 가집니다. 다른 족보는 대부분 그냥 ‘톨레돗’이지만 창세기 5:1의 족보는 ‘세페르 톨레돗’, 즉 ‘족보 책’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 속에 무슨 뜻이 담겨 있습니까?
창세기 5장의 아담의 계보는 단순히 인명 나열이 아니라 많은 분량의 내용이 담긴 ‘책’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자체가 하나님의 완성된 기록물이며,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일종의 법적인 효력을 지닌 하나님의 계약 문서 책과 같다는 것입니다.
첫 사람의 족보에서 언급된 ‘세페르 톨레돗’이라는 말은(창5:1), 신약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둘째 사람(고전15:45-47)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서도 한 번 더 등장합니다.
마태복음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계보)라”
(창5:1) ‘계보(系譜)’ - ‘세페르 톨레돗’
(마1:1) ‘세계(世系)’ - ‘비블로스 게네세오스’
그냥 톨레돗(족보)이 아니라 세페르 톨레돗(족보 책)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냥 게네세오스(족보)가 아니라 비블로스 게네세오스(족보 책)입니다.
첫 사람(창5:1)과 둘째 사람의 족보(마1:1)를 기록할 때 공통적으로 책(히브리어로 세페르, 헬라어로 비블로스)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장의 족보 역시 하나의 책을 이룰 정도로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완성된 책과 같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족보에는 가장 필요한 것만이 압축되어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족보에 기록되어 있는 인물들이 각 세대 속에서 저마다 거친 세상과 싸우며 담당했던 위대한 사역들을 낱낱이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족보로써 그 방대한 내용을 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시40:5, 71:15-16, 139:16-18, 히11:32).
요한복음 21: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그렇다면 족보에 있는 각 세대를 대표한 인물들이 외치고 있는 공통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 그들은 그토록 외로운 싸움을 계속한 것입니까? 셋의 경건한 후손들과 셈의 경건한 후손들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류 구원을 위해 세상에서 버림받고 외면당하는 뼈아픈 눈물과 한숨, 외로움 속에서도 저마다 구속사의 바톤을 이어받아 달라는 자기 역할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족보는 상고하면 할수록, 인류 구원을 위한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낄 수 있고, 은혜의 심연(深淵)을 풍성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약속의 후손이 오시기까지 경건한 자손들이 담당했던 선한 싸움의 흔적들로 가득합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그 뜨거운 열심이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대속의 역사로 인류 구원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3. 창세기 해석
Analysis of Genesis
1) 창조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는 가운데서도 ‘사람의 창조가 모든 창조 사역의 중심’이였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 가운데 사람의 창조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세익스피어는 “사람은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가, 이성(理性)은 얼마나 무한한가, 그 형상과 동작은 얼마나 명확하고 훌륭한가, 행동은 마치 천사와 같고 이해력은 신과 같다. 세계의 미(美)요, 만물의 영장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영장(靈長)은 ‘만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령하고 기묘한 능력을 지닌 존재, 가장 빼어나고 뛰어난 존재를’를 뜻함으로 사람은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창조의 뜻을 성취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주어진 으뜸가는 존재입니다. 사람의 창조는 결코 우연이나 진화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거기에는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경륜이 담겨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신묘막측, 神妙莫測)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14)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여기서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는, 히브리어로 두 단어인 ‘노라오트 니플레티’입니다. ‘노라오트’는 ‘두려워하다, 경외하다’라는 뜻을 가진 ‘야레’의 수동 분사형이며, ‘니플레티’는 ‘놀랍다, 경이롭다’라는 뜻을 가진 ‘팔라’의 수동 완료형입니다. 따라서 ‘노라오트 니플레티’는 원어로 ‘나는 경외(敬畏)스럽고 경이(驚異)롭게 만들어 졌습니다’(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KJV)라는 의미입니다.
신묘막측(神妙莫測)은 한자어로 ‘신통하고 묘하게 감히 측량할 수 없음’이라는 뜻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솜씨는 인간의 능력으로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고 놀라운 것이며, 실로,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한 걸작품입니다.
사람의 창조는 창세기 1장과 2장에 크게 두 번 나타나는데, 창세기 1:26-28에서는 전 우주와 만물에 포함된 사람의 기원과 위치를, 창세기 2:7-25에서는 언약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상태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전 우주 만물 가운데 사람을 가장 나중에 창조하셨으며, 마지막에 창조하신 사람에게 가장 큰 관심과 기대를 두셨습니다. 모든 창조가 오직 사람을 위한 것(사45:18, 51:13, 렘27:5)이며, 사람은 분명 다른 피조물과 구별된 존귀한 존재입니다(시49:12, 20). 사람의 존귀성은,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타난 창조의 과정에서, 선명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은 사람의 창조를 말씀하고 있는 창세기 1:27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창조 행위를 가리키는 ‘바라’가 세 번이나 쓰인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베첼렘 베찰모 하이담 에트 엘로힘 바이브라
오탐 바라 우네케바 자카르 오토 바라 엘로힘
여기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창조하시되,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시니,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니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단독으로 친히 창조하신 행위에만 쓰이는 히브리어 ‘바라’가 창세기 1:27에서 세 번이나 쓰인 것은, 인간 창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이 이날 최고 절정에 이르렀음을 강렬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바라’는 창세기 1장에 다섯 번 나오는데, 나머지 두 번은 창세기 1:1, 21에서 쓰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사람의 창조는 창조 중의 창조요, 모든 창조의 면류관이며, 초절정(超絶頂)이었습니다.
2) 타락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시면서, 두 가지 할 일과 한 가지 금령(禁令)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두 가지 일은,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는 것’이었습니다(창2:15). 또한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창2:16-17).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 영역으로서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함으로 온전한 질서’를 이루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16-17에서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여부에 따라 죽음과 영생이 결정되므로, 이것을 ‘행위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행위 언약 체결 후에, 유혹자 뱀이 여자가 혼자 있는 틈을 타서 찾아 왔습니다(창3:1). 여자는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습니다. 여자는 뱀과의 대화 내용을 남자에게 말하지 않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남자에게도 주어 먹게 하여 결국 남자도 타락하고 말았습니다(창3:6).
여자가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무시하고, 여자의 말을 듣고, 하나님과 맺은 ‘행위 언약’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아담은 비참한 타락을 하였고, ‘영생의 아담’은 ‘죽음의 아담’으로 전락하였습니다.
3) 회복(구원)
악령의 궤계로 죄를 저지르는 것은 대단히 쉽고 짧지만, 하늘의 회복(구원)을 하여 완성에 이르기까지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처음 보여 주신 것은, 바로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 “여자의 후손”은 장차 마리아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킵니다(마1:18-20). 갈라디아서 4:4에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 마리아를 통해서 이 세상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자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는데, 이는 이사야 7:14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는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마1:21-23).
창세기 3:15에서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가 상한다’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가리키며, ‘사단의 머리가 상한다’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단을 완전히 멸하실 것을 뜻합니다(요일3:8, 히2:14). 타락한 사람에게 저주와 형벌을 내리시는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구원의 약속을 함께 주셨던 것입니다. 이 약속의 보증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친히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습니다. 창세기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제 새 언약의 성취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약속은 ‘여자의 후손’(창3:15)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 그 초석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으로 최종 성취됩니다.
4) 하늘나라 완성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1) 천국의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하나님) (2) 나라(천국,가나안) (3) 민족(신앙인,이스라엘) (4) 하늘의 법(십계명, 창세기에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7대 언약과 10대 허락과 10대 명령) (5)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한 고난의 신앙 여정이 있어야 합니다.
(1)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천국(가나안)의 모형을 보여 주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 나라(천국,가나안), 국민(이스라엘)(하늘의 별과 땅의 모래)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천국 백성이라 하지 않고, 왜 ‘하늘’의 별과 ‘땅’의 백성이라고 하셨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하늘의 별은 이삭의 자손, 땅의 모래는 이스마엘의 자손을 의미하지는 않았을까요?)
(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완성(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 7대 언약, 10대 허락, 10대 명령)을 이루셨습니다.
∎ “믿음의 노정”(천국 지적도)
아브라함은 죄악과 우상이 만연한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걷쳐 하나님의 나라(가나안)의 입성을 성취하기 위하여 신앙(믿음)의 여정(하늘나라 완성)을 갈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절제하며, 인내하며 끝까지 걸어갔습니다.
첫 번째 장소: 우르(아브라함의 출생, 주전 2166년)⇒두 번째 장소: 하란(75세, 주전 2091년 까지 거주)⇒세 번째 장소: 세겜(75세, 주전 2091년)⇒네 번째 장소: 벧엘과 아이 사이(75세, 주전 2091년)⇒다섯 번째 장소: 애굽(76세, 주전 2090년 추정)⇒여섯 번째 장소: 벧엘과 아이 사이(76-83세, 주전 2090-2083년)⇒일곱 번째 장소: 헤브론(83-99세, 주전 2083-2067년)⇒여덟 번째 장소: 그랄(99세, 주전 2067년)⇒아홉 번째 장소: 브엘세바(100-136세,주전 2066-2030년 추정)⇒열 번째 장소: 헤브론(137-175세, 주전 2029-1991년)
∎ “7대 언약과 하나님 나라”
성경은 언약에서 언약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기록입니다. 구속사의 각 시대 시대를 연결하는 고리가 언약이며, 언약은 ‘구속사’를 이루는 중요한 방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에덴동산에서 행위 언약을 체결하시고,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창 3:15). 그리고 노아와 언약을 체결하시고, 그 다음에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75세에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후 175세에 죽을 때까지 100년 동안 아브라함과 일곱 번에 걸쳐서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언약들은 전체 구속사를 압축해 놓은 설계도와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 건설에 대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한 나라가 세워지려면 영토(국토)와 국민(백성), 그리고 주권(헌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하여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체결하신 언약 속에는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이 나타나 있는데, 하나님의 주권은 하나님의 말씀과 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시거나 명령하시고 아브라함이 이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주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일곱 가지 언약들은, 이처럼 ‘땅’과 ‘자손’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영원한 나라 천국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언약은 그 시기와 장소, 언약과 하나님 나라(하나님의 주권), 구속사적 의미를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데, 지면성 여기서는 일곱가지 언약에 대해서만 간단히 기술하겠습니다.
❶ 아브라함을 통한 큰 민족의 약속, 아브라함의 복이 됨(창12:1-3)
❷ 하나님께서 주실 땅을 처음으로 밝히심(창12:7)
❸ 가나안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창13:14-18)
❹ 횃불 언약: 가나안 땅과 자손에 대한 선명한 약속(창15:1-21)
❺ 할례 언약: 영원한 언약의 증표(창17:1-22)
❻ 이삭 탄생에 대한 약속의 재 확증(창18:10)
❼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음(창22:15-18)
∎ “10대 허락(축복)”
허락이 신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허락에서 나옵니다. 먼저 하나님의 허락이 있고, 그 허락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와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에 도착한 다음에(창 12:1, 5, 행 7:2-4), 세겜, 벧엘, 헤브론, 브엘세바, 모리아의 한 산 등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때 허락받은 말씀이 수십 개에 달하지만, 중복된 것이 있으므로 이를 종별하면 ‘10대 허락’입니다. 이 10대 허락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 복’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❶ 큰 나라(큰 민족)(Great Nation)(창12:1-5, 16:10, 17:5-8, 21-2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❷ 큰 이름(Great Name)(창12:1-3, 17:4-6, 18:18, 느9:7, 마1:4, 갈3:1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위로’는 헬라어 ‘파라칼레오’로, ‘파라’(곁에)라는 단어와 ‘칼레오’(부르다)라는 단어가 합성된 것입니다. ‘위로’는 곁에서 이름을 불러 주는 것입니다.
❸ 큰 땅(Great Land)(창12:7, 13:14-17, 15:7, 18-21, 17:6-8, 26:3, 28:4, 13-15, 35:12, 50:24, 출6:8, 신6:18, 수1:2-4, 1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❹ 큰 자손(Great Descendants)(창13:14-17, 15:2-5, 17:6-8, 20-22, 22:15-18, 출1:7, 9, 12, 민23:10, 왕상3:8)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❺ 큰 장수(A Good Old Age)(창15:15, 25:7-8)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
❻ 큰 승리(Great Victory)(창12:3, 10-12, 15:1, 12-14, 18:18, 20:6-7, 22:15-19, 26:11, 시105:8-15, 42-43)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10-12)
❼ 메시아(The Messiah)(창12:1-5, 15:4-6, 18:17-19)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❽ 큰 의(Great Justification)(창15:6, 롬4:3, 9, 18-25, 5:1)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5:6)
❾ 큰 상급(Great Reward)(창15:1, 롬4:3, 9, 18-25, 5:1)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10-12)
❿ 큰 복(Incredible Blessing)(창22:16-17)
‘큰복’은 예수님의 팔 복 전체(마5:1-12)를 하나로 묶어 표현한 것으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들과 연결된 팔 복은 ‘큰 복’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10대 허락(복)은 오늘날 우리에게 허락하신 ‘10대 허락(복)’이요, 우리에게 허락하신 ‘팔 복’입니다.
마지막 때를 지날 수 있는 ‘7 복(허락)’도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셨습니다.
⓵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⓶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
⓷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계16:15)
⓸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계19:9)
⓹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20:6)
⓺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계22:7)
⓻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계22:14)
하나님께서 주신 허락(복)은 받는 사람들의 온전한 ‘믿음’과 절대 ‘순종’과 하나님 말씀에 의지한 ‘행함’으로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 대하여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順從, Obedience)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11: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10대 명령과 아브라함의 순종”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 노정에서 가장 귀한 것이 있다면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강점은 순종이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은 행동하는 믿음, 즉 순종의 신앙이었고, 그의 모든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부터 시작하여(행7:2-3), 모리아산 정상 도달까지(창22장) 그리고 그의 전 일생이 마칠 때까지, 아브라함의 생애는 오직 ‘약속 성취’를 위한 ‘온전한 순종(順從, Obedience)’에 이르는 신앙의 연단 과정이었습니다.
❶ “떠나라(떠나가라)”(75세, 주전 2091년, 하란)(창12:1,행7:2-3)
(▶믿음의 시작은 세상을 떠남으로 시작된다)
❷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일어나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83세, 주전 2083년, 헤브론 근방)(창13:14-18)
(▶세상을 떠난 자는 더 이상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눈을 들어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❸ “제물을 드리라”(84세, 주전 2082년, 헤브론)(창15:8-9)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내가 제물이 되어 완전히 죽어야 산다)
❹ “내 앞에서 완전하라”(99세, 주전 2067년, 헤브론)(창17:1)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만이 완전해 질 수 있다)
❺ “개명하라”(99세, 주전 2067년, 헤브론)(창15:5, 15)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비전 가운데 살아야 한다)
❻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99세, 주전 2067년, 헤브론)(창17:9)
(▶하나님의 언약은, 말씀을 후대에 전수함으로 지켜지고 성취된다)
❼ “다 할례를 받으라”(99세, 주전2067년, 헤브론)(창17:10-14)
(▶언약 백성은 세상과 구별된 표가 있어야 한다)
❽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라”(99세, 주전 2067년, 헤브론)(창18:17-19)
(▶의와 공도는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로서, 의와 공도를 행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❾ “여종(첩)과 그 아들(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103세, 주전 2063, 브엘세바)(창21:10)
(▶죄의 근원과 열매를 함께 제거해야만 참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다”
❿“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125-136세, 주전 2041-2030년, 브엘세바)(창22:1-2)
(▶하나님께 인정받는 장성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것까지도 아낌없이 드려야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들을 믿었는데, 그 약속들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주어진 것들이며, 그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허락하신 것들입니다. 이사야 55:3에 “허락한 확실한 은혜”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볼 때 ‘허락한 확실한’에 해당하는 단어는 ‘아만’의 수동분사형으로서, 한글 개역성경의 번역대로 ‘확고하게 허락된’이란 뜻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다윗 언약의 근거가 된 아브라함의 언약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확실한 은혜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들은 유업으로 나타났는데, 그 유업들의 실체는 하나님 나라였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허락하심으로 나타나는 은혜와 약속과 믿음이라는 세가지 요소는, 성도에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는 구속사의 중대한 개념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도구로 쓰임 받기 위하여, 허락하신 은혜로 주어진 약속들을 온전히 믿고 나아가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주전 2166년에 태어난 아브라함은 예수님보다 약 2,000년 전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들이 궁극적으로 메시아에 대한 약속임을 확신하였고, 마침내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구속 사역을 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미리 보고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오래 참은 결과, 그 약속들을 실제로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6:14-15에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오래 참아’는 헬라어 ‘마크로뒤메오’의 과거분사형으로, 아브라함이 끈질기게 기다렸음을 나타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당장에 이루어지지 않아도 계속 끈질기게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약속을 받고 이삭을 얻기까지 25년을 기다렸습니다. 그의 전생애는 하나님의 약속들이 계속 성취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100년 삶(75세부터 175세까지)은, 천국을 소망하는 모든 신앙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100년의 삶의 노정은 마치 천국의 지적도(地籍圖)와 같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일평생 잘 믿은 것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때로 실수를 저지르고, 때로 육신적 행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결국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창22:12).
오늘날 신령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기를 소원하는 성도는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겠다”라는 하늘의 음성을 들을 때까지, 아브라함의 행사를 따라 모리아의 한 산의 정상을 향하여 순례자의 길, 순종의 길, 인내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를 보고 기뻐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볼 것을 즐거워하면서 보고 기뻐해야 합니다. 간절한 소망과 기쁨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완전히 성취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렸습니다. 비록 우리에게 부족한 점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의 약속들을 믿기만 하면, 반드시 그 성취를 목격하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허락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마1:1). 그러나 아직도 그 약속들은 성취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제 그 약속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되고, 구속사의 대단원의 막이 내려질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 새롭게 시작된 구속사는 그 결말에도 아브라함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마치 하나님의 전체 구속사의 통로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며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의 구원도 아브라함과 연결되었습니다. 구원받은 거지 나사로도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눅16:22-23). 거지 나사로의 구원도 아브라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8:11에서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서로부터 오는 많은 사람들의 구원도 역시 아브라함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9에서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오늘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요8:39). 아브라함과 함께 복 받을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갈3:9).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아브라함의 행사를 진정으로 하는 자인지 찾고 계십니다(요8:39). 누가 하나님 나라의 참 시민으로서 팔복을 소유할 자인지 찾고 계십니다. 누가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는 자, 의로 인정받은 믿음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인지 찾고 계십니다. 누가 아브라함처럼, 비록 중간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행동도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 견고해져서 그 약속을 믿고 마침내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까지 하나님께 드리는 자인지 찾고 계십니다. 누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주권적인 택하심과 부르심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 마침내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영화롭게 되는 자인지 찾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며(골1:27), 예수님의 재림으로 모든 구속사는 완성이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성도는, 주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마지막 영적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구속사 완성의 주역이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14에서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구속사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거룩한 영적인 통로로 쓰임 받기 위하여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아낌없이 바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시고,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참고 기다리는 가운데, 마침내 나사로처럼 오직 허락하신 은혜로 팔복을 누리며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어 천국 시민으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아 영생복락을 누리는 최후의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