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기지교회 1/6 (월)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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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매일성경 (여호수아 4:1-24)
25년 1월 6일 새벽예배말씀입니다.
(9절)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두개를 세웠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5절)각 지파에서 뽑힌 열두명이 요단강이 갈라졌을때 들어가 각각 하나의 돌을 들고 나왔습니다.(8절)강바닥에서 들고나온 돌을 자신이 유숙한 곳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20절)가져온 돌들을 길갈에 세우고 기념합니다.
9장과 20절의 말씀이 이상합니다. 유단강 한가운데 돌을 세워 기념했는데 20절에서는 유단강에서 가져나온 돌을 길갈에 세워 기념했다고 나와있습니다. 여기서 학자들의 관점은 9절의 돌과 20절의 돌이 다르다는 관점, 같은돌이라고 보는 관점으로 나뉩니다.
9절의 돌과 20절의 돌이 다르다는 관점은 여호수아저자가 훗날 여호수아를 쓸때 다시 한번 찾아가서 그 돌을 확인했다는 9절 마지막 말씀에 집중합니다. 같은 돌이라는 관점은 요단강 한가운데 세운 돌들이 강의 유숙때문에 없어졌을것이며 요단강 가운데 세운 돌을 기념하고 가져가서 길갈에 세웠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요단강을 멈추시는 하나님, 인간의 능력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기억하게끔 했던 것이 열두개의 돌입니다. 강바닥에서 꺼낸 돌을 본 사람은 누구나 요단강을 건넜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잘 잊어버립니다. 매일매일 내가 경험한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며 이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은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요단강을 떨리는 마음으로 밟았던 제사장들과 뒤따른 백성들, 강의 촉감을 느꼈던 사람들, 기적의 당사자들은 이 돌들을 보면 기억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이 돌들이 자손들을 위한 증거라고 말합니다. (6,21절)
요단강을 직접 건너지않았고 직접 그 생생한 현장을 목도하지못했던 자녀들의 입장에서 이 열두개의 돌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과거의 돌을 본 자손들이 요단가을 갈랐던 하나님을 경외하려면 어떻게 할까요? 아마도 길갈의 오래된 돌들이 아니라 부모가 살아있는 돌이 되었을때 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삶에 요단을 갈랐던 하나님이 보여야합니다. 그래야 자녀들을 요단강 가운데 있던 돌을 볼때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커다란 교회건축물로, 교회안의 여러시스템으로 이런 돌들을 남겨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요즘 세상의 최첨단의 것들과 비교할때 초라하고 비루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돌이 되어야하고 증인이 되어야합니다.
말씀을 전해주신 선우건목사님의 일화를 소개해드립니다.
목사님 아버님의 사무실 책상위엔 항상 선우건 목사님의 어릴 적 사진이 있었는데 아버님을 찾아가서 자신의 사진을 보며 아버님의 사랑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사진에 나와 있는 목사님의 어릴 적 모습이 귀여워서도 사진에 신비한 힘이 있어서도 아닌, 힘들때 마다 선우건목사님의 사진을 보시며 힘을 내시는 아버님의 사랑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사진이 매체가 되어 평소에 선우건 목사님을 사랑하시는 아버님의 사랑을 알게 해주신 것이지 사진이 신비한 능력을 가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열두개의 돌에 만족하는 우리가 되어선 안됩니다. 하나님을 닮은 살아있는 증인으로, 살아있는 돌로 살아가는 대구기지교회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