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 (열왕기하 5:1‑7) '고치리이다, 고치라 하느냐'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열왕기하 5장은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치유받은 사건으로 유명한 내용입니다.
‑>나아만이 처음에는 엘리사의 말에 반발했지만 결국 말씀에 순종하여 치유를 받았다는 내용으로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로 나아만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서 그가 요단강의 자리까지 겸손하게 낮아졌다든지, 요단강에 여섯번 몸을 잠그고 씻는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음에도 일곱번을 채우기까지 순종했다는 교훈이 자연스럽게 강조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제는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일하심의 근거를 찾는 습관을 버리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행함이나 됨됨이를 보고 반응하는 식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이 은혜로 일하신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 은혜로 일하심을 통해서 과연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가, 무엇을 가르쳐내고자 하시는가를 분별하려는 묵상의 방향과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열왕기하 5: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으니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1절의 내용은 우리의 생각을 벗어나는 부분이 많습니다.
‑>나아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이었지만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나아만에게 그렇게 행하실 만한 이유가 나오지 않으며 단지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아람을 구원하게 하시므로 그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었다는 설명뿐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그 당시에 불치의 병일 뿐만 아니라 신의 저주라고 여겨졌던 나병에 걸렸습니다.
‑>나병에 걸린 시점이 아람을 구원하기 전인지 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가 나병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큰 용사로서 아람 왕의 총애를 받으며 아람의 군대 장관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 덕분인 것은 확실합니다.
‑>나아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입니다.
‑>이러한 나아만이 열왕기하 5장의 중심 인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과 이 사람, 이 사람과 이 무리의 대조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리시고 하나님의 일하심의 원리를 가르치시기 때문에 열왕기서를 볼 때 대조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열왕기서에서 하나님이 대조를 통해서 일하시는 이유는 여호수아서까지는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역사이기에 하나님을 알리시기 위해 안 될 만한 사람, 안 될 만한 방법, 안 될 만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친히 일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리시지만 사사기 이후 왕정 시대에 접어들면서는 이스라엘, 인간이 주도하는 역사이기에 하나님을 배웠어야 할 이들이 하나님을 전혀 배우지 못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무익한 길,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고 여겨진 자들, 대표적으로 수넴 여인, 이방인, 나아만 같은 자들이 도리어 하나님을 아는 자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이스라엘도 하지 못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으로 드러내시고 부끄럽게 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리시는 목적은 동일하시만 방식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열왕기서를 볼 때 누가, 무엇이 대조되는지를 확인하고 그 대조 속에서 선명하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원리, 하나님의 방식을 확인하면서 하나님을 배우는 올바른 묵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하면서 성경을 내 생각대로 그저 세상을 살면서 익숙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해석하며 세상과 다르신 하나님을 잘 분별해내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지 못하면 우리의 삶 속에서 성도다움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식적으로 채워져 갈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첫 번째 대조되는 대상은 이스라엘 땅에서 아람으로 사로잡혀 가서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던 어린 소녀와 이스라엘 왕입니다.
‑>어린 소녀의 신분은 사로잡혀 갔으니 종, 어린 여종이며 같은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신분상으로 닿을 수 없는 왕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대조되는 내용입니다.
‑>(열왕기하 5: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이 말씀에서 말하는 선지자는 엘리사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일하고 계시기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역할입니다.
‑>어린 소녀는 아람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엘리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소녀는 그간 엘리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행한 일들을 통하여 엘리사라면 나병을 고치고도 남을 만하다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나아만의 아내는 어린 소녀의 말을 듣자마자 곧장 나아만에게 전했던 것 같으며 나아만은 아내의 말을 듣고 왕에게 갑니다.
‑>(열왕기하 5:4‑6)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아람 왕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낸 글에는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엘리사에 관한 정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나병을 고칠 수 있을 만한 자라면 이스라엘 왕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여겼기에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며 왕의 격에 맞게 왕을 상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 왕은 격에 맞지 않은 반응을 보입니다.
‑>(열왕기하 5: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어쩌면 아람 왕의 글 가운데 엘리사에 관한 정보가 빠져 있는 것이 이스라엘 왕의 무지를 더욱더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알고 있겠거니 하고 글을 보냈는데 이스라엘 왕은 전혀 모르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린 소녀와 달리 이스라엘 왕은 앞선 3장에 이스라엘 동맹군과 모압과의 전쟁 과정에서 물이 없어 패하게 될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고 승리 예언까지 해주었던 엘리사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또한 4장을 거쳐오며 죽었다가 살아나는 아이의 사건들이 왕에게까지 들리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라고 하나님까지 언급하면서도 엘리사를 찾지 않는 것을 보니 그러한 일련의 경험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도 하나님을 배우지 못할까'라는 답답함이 느껴지지만 왕은 부족한 것이 없으며 헛짓을 해도 고통당하는 것은 왕이 아니라 어린 소녀 같은 힘없는 백성일 뿐이고 왕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하나님을 찾고 의지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망할 때까지 자기 눈이 뽑힐 때까지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종의 신분과 왕의 신분 중에 누가 평안할까요?
‑>어쩌면 우리 마음속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그래도 왕이 평안하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어린 소녀와 이스라엘 왕 중에서 누가 평안해 보입니까?
‑>아람의 이방 나라에 사로잡혀 가서 여종 노릇을 하고 있는 어린 소녀가 평안해 보입니까 아니면 이스라엘 왕이 평안해 보입니까?
‑>하나님은 어린 소녀가 평안해 보인다는 대답을 듣고 싶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문제 상황이라 할지라도 문제가 안 되지만 하나님을 모르면 아무런 문제가 아닌데도 문제 상황이 되어버리는 결과를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린 소녀가 문제 상황에 처해 있지만 어린 소녀에게 그 문제가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은 전혀 문제 상황에 있지 않은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대조를 기억하면서 기도하시고 우리의 삶을 살아내는 모든 시간 속에서 깊이 들여다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대조되는 대상은 엘리사와 나아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통해서 이방인 나아만을 가르치시는 결과로 나아만이 후반부에서 이스라엘을 부끄럽게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부끄럽게 하시기 위해서 먼저 엘리사와 나아만을 대조하고 후반부에서 나아만과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대조됩니다.
‑>연속된 대조 속에서 '하나님이 과연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무엇을 가르쳐내고자 하시는가' 묵상해 보시기를 원합니다.
‑>금요일 새벽시간까지 이들을 통하여 무엇이 대조되는지를 가능한 많이 찾아보시고 함께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어린 소녀와 이스라엘 왕의 대조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를 귀 기울여 들으시면서 기도의 자리, 삶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