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욥기10:1-22)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욥기 8장의 빌닷의 말에 대한 욥의 대답이 9-10장까지 이어집니다.
->(욥기8:4)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빌닷의 말의 핵심입니다.
->'네가 당하는 모든 일이 네 자녀들이 죄를 지어 당하는 결과이다' 말합니다.
->(욥기8:5-6)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빌닷이 말합니다.
->빌닷이 말하는 죄, 찾음과 간구, 청결과 정직은 모두 행위와 관계된 것입니다.
->존재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것을 모르기에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여기고 모든 일이 자기의 행위와 하나님의 보응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엘리바스와 빌닷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욥기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고 모든 것이 자기 하기에 달렸다는 지독한 죄인의 발상으로 말합니다.
->'내 시작은 (죄로인하여) 미약하였으나 (네가 찾고, 간구하고 청결하고 정직하면)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과의 원리, 행위의 원리에 기반한 죄의 원리일 뿐이며, 하나님의 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욥이 빌닷의 말에 대하여 대답합니다.
->(욥기9:1-3)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라는 욥의 말은 빌닷의 원리에 동의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이 빌닷이 말하는 원리로 돌아가고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는 의미입니다.
->(욥기9:2) 욥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인과와 보응, 조건행위의 원리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인 '~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말합니다.
->욥에게는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없다, 무엇을 할 수 없다'는 자기존재에 대한 깊은 인식이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참을 수가 없기에 말을 한다고 했으며, 빌닷은 욥에게 언제까지 네가 그런 투로 말을 할테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참을 수 없는 말투로 말하는 자들은 욥이 아닌 엘리바스와 빌닷인 것입니다.
->우리는 엘리바스와 빌닷의 말을 교회 안팎에서 수없이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없는 인생에 대하여 인식했다면 할 수 없는 말들을 너무나 쉽게 확정적으로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합니다.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각종 자연재해와 인재가 있을 때마다 해서는 안될 말들이 교회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비단 교회의 문제만이 아니라 내 안에도 엘리바스와 빌닷의 원리가 차고 넘칩니다.
->(욥기9:3)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는 욥의 말을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없는 인생이기에 사람은 하나님의 천 마디에 단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다고 하나님의 바른 지식으로 대답의 포문을 연 욥은 사람과 다른 하나님, 지혜와 권능에 있어서 수준과 차원이 다르신 하나님의 어떠함을 외치기 시작합니다.
->(욥기9:4,11,17-20) 자신이 당하는 까닭 없는 고난에 대하여 '감히 내가 무엇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무슨 말을 택할 수도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욥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욥은 여전히 괴롭고 살아 있는 것이 버겁고 더이상 버틸힘이 없음에 토로하는 내용입니다.
->(욥기9:21) '내가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말합니다
->욥은 자신이 온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행위적 온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존재,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존재,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산다는 것,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존재로써 온전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온전함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너무나도 극심했던 나머지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라고 한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괴로움을 이길 수 없고 더이상 희망은 가질 수 없기에 하는 말을 가지고 신앙과 불신앙, 의로움과 불의함을 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여전히 괴롭고 살아있는 것이 버겁고 더이상 버틸힘이 없지만 하나님을 알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욥기9:4-10) 앞서 욥은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다 산과 땅과 해와 별과 하늘과 바다도 모두 하나님께서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으며, 측량할 수 없는 큰 일과 셀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외치고 있는 욥의 말의 강조점은 무엇일까요?
->(고린도전서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말씀합니다.
->그 강함으로 이루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세상과 군대에서 매일같이 지치고 마음 상하는 이유는 그 지혜와 강함 때문입니다.
->지혜있는 자가 그의 지혜로 지혜없는 자를 위해주지 않으며, 자기 지혜를 뽐내고 자기 우위를 점할 뿐입니다.
->힘이 강한 자가 그 힘으로 힘이 약한 자를 감당해주지 않으며, 자기 힘을 과시하고 약자들 위에 군림할 뿐입니다.
->사람이 이러하다면 하나님은 어떠합니까?
->사람보다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신 하나님은 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행하십니까?
->우리는 엘리바스와 빌닷의 말과 같이 지혜로우신 하나님이 행한대로 보응하신다, 힘이 강하신 하나님이 행하지 못하면 심판하신다, 매달리고 부르짖어야 응답하신다, 시험하시며 일부러 고난을 주신다라고 하나님에 대해 세상의 자혜자와 강한자보다 결코 덜하지 않으신다라고 듣게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상 속에서 부자연스러운 종교행위를 강요받으며 해왔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욥이 말합니다.
->(욥기10:2-6)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니이까, 주께도 육신의 눈이 있나이까 주께서 사람처럼 보시나이까, 주의 날이 어찌 사람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해와 같기로,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들추어내시나이까' 질문의 형식이나 질문이 아닙니다.
->질문의 끝마다 욥이 외치는 대답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아니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신 하나님은 사람과 다른 분이시지 않습니까'의 욥의 답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욥기10:7)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말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다, 하나님은 다른 분이시다'라고 욥이 고백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욥기10:11-12) '피부와 살을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엮으시고,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욥의 피부와 살을 입히셨을 때 욥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욥이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았을 때에 욥의 인생가운데 찾아오셔서 아무런 값 없이 생명과 은혜를 주시고 보살핌으로 지켜주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욥이 일생동안 경험했기에 나를 주의 손에서 벗어나게 할 자가 없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욥이 알고 고백하며, 경외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은혜로 역사하시는 욥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께 오늘도 진실된 기도와 찬송으로 나아아가시기를 바라고 지혜롭고 힘이 강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의 원리에 따라서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아내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