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욥기7:1-21)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욥은 까닭 없는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욥기를 바라볼 때 중요한 전제는 욥이 당하는 고난이 그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과 대화 중에 사탄에게 전권을 주셔서 욥을 치게 하셨다는 문학적 설정은 하나님이 덤턱이를 쓰더라도 욥에게 고난당한 까닭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욥은 아브라함, 야곱, 이삭과 같이 하나님을 아는 존재,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알게 된 존재로써 그들과 동일하게 강조되는 인물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되기까지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를 위하여 일하셨다는 전제가 생략되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욥에 대하여 욥이 하나님에 대하여 자신감이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욥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열매이며, 욥에게 하나님은 온전히 아는 대상, 온전히 알기에 마땅히 경외할 수 있는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욥은 인과의 원리, 보응의 원리, 행위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인과, 보응, 행위의 원리로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까닭 없이 고난을 당하면서도 다른 인식과 방응을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욥의 대답이 6,7장까지 이어지며, 대부분의 내용이 호소입니다.
->(욥기6:4)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육신적인 고통과 더불어 시시때때로 엄습해오는 두려움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호소입니다.
->(욥기6:8-9)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자신을 멸하실 작정을 하시지 않고서는 이 고난, 고통을 설명할 길이 없다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욥기7:3,7) '고달픈 밤이 작정되었다,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부르짖을 만큼 너무나 가혹한 시간을 지나고 있음을 호소, 토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은 고난에 대하여 초연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초연함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초연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원리가 있기에 다르게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이 신앙의 영역입니다.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가운데서도 욥이 보이는 다름, 하나님을 아는 자이기에 보일 수 있는 다름을 확인하는 것이 욥기를 읽어나갈 때 중요한 지점입니다.
->(욥기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이 모든 일이 자기와 자기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았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자기 행위에 대하여 자신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욥기6:23) '내가 하나님과 원수가 아니고서야 하나님이 폭군이 아니고서야 너의(엘리바스) 말처럼 하셨겠느냐'라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엘리바스의 논리로 그의 말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욥은 엘리바스에 대해서만 당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할 말을 다하고 있습니다.
->(욥기7:11) '그러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말합니다.
->불평은 불신앙이 아니며, 우리는 하나님께 얼마든지 불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평을 허용하실뿐 아니라 수용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불평의 대상이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곱씹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신과 다른 종교가 말하는 신들과는 절대적인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평의 대상이 되어 주십니다.
->욥은 먼저 자신이 얼마나 힘겹고 고통스러운지를 불평합니다.
->(욥기7:12-14) '내가 바다의 괴물입니까, 나는 괴물도 아닌데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잠든 중에도 왜 나를 지키십니까, 나를 가만두지 않으십니까'라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욥기7:19) '~내가 침을 삼키는 짧은 시간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이제 그만하십시오, 이제 나를 놓아주십시오'라고 애원하기까지 자기의 고통을 하나님께 불평하는 욥의 모습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부분까지는 고통자체에 대한 불평이었습니다.
->이제 욥은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이 아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일하심의 원리를 근거로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로서 하나님께 맞서는 것입니다. (존재 VS 존재)
->(욥기7:20) 하나님을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라고 부릅니다.
->'감찰'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성품을 담기에는 우리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으므로 '사람을 살피시는 이여' 라고 바꾸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된 것은 하나님이 그를 살피셨기 때문입니다.
->욥의 모든 소유도 하나님이 그를 살피신 상징, 결과로써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하나님이 그들의 인생 가운데 찾아오셔서 살피시며, 그들을 감당하시고 설득하신 결과로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삶의 결과가 있었던 것입니다.
->욥이 부르는 하나님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인생을 지금껏 살펴주셨던 하나님, 나로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셨던 하나님을 부르고 있으며, 자신을 살펴주신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등장할 수 있는 핵심 표현은 '어찌하여' 입니다.
->(욥기7:20-21)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나님은 이런 분이 아니시잖아요'라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일하심의 원리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불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어떤 자리까지 이끌어가실지, 하나님의 일하심의 궁극적 목적지가 어디인지 다 알 수 없는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불평의 방식일지라도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알게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의지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일하심의 원리가 원수나 폭군과는 다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의 다른 인식과 반응입니다.
->그러나 다르게 인식, 반응하기 위해서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고난 중에 힘쓰고 애쓰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그 때 일하게 됩니다.
->욥기가 전하는 메세지는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일한다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의 원리를 붙들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욥기가 전하는 메세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일한 것이며, 그 지식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충만하게 이르도록 하나님이 성령으로 일하실 것입니다.
*그 일하심의 능력을 경험하는 매일의 삶이 되시기를, 평생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살펴주시는 우리의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