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 (사도행전4:10‑12) '우리에게 주신'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어떤 장소적인 개념이나 현세와 내세라는 시간적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인식과 하나님의 인식, 즉 인식적 개념이 대조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죄의 인식,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인식을 의미합니다.
‑>이 인식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구절입니다.
‑>(사도행전4:10‑11)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유대교 지도자들과 로마 관리들의 탄압에 의해서 백성이 어쩔 수 없이 동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를 죽였다고 말합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 모든 사람이 예수를 죽이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어쩌면 가장 악의적인 태도를 보인 그룹은 지도자들, 관리들이 아니라 백성들입니다.
‑>지도자들이나 관리들은 처음부터 적대적이거나 냉담한 반응을 보였지만 백성들은 속된 말로 먹을 수 있는 것 다 받아먹고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쳤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서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모든 사람을 상징하는 표현은 '건축자들' 입니다.
‑>'건축자'는 다른 말로 '건축가'이며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입니다.
‑>고대의 건축자, 건축가들은 결과물이 곧 그들의 권위이자 명성이었기에 최고의 공법과 최상의 자재를 사용했습니다.
‑>건축자들에게 건축의 성패를 결정지을 가장 중요한 자재가 돌이며, 주춧돌이 기초가 되어야 안정적인 건물이 세워질 수 있습니다.
‑>'주춧돌'을 이스라엘에서는 '모퉁잇돌'입니다.
‑>모퉁잇돌은 변두리에 있는 사소한 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 전체를 지탱하는 중요한 돌입니다.
‑>결국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라 함은 모퉁잇돌이 될 수 없는 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돌, 한 사람이라도 알아볼 수 있는 그런 돌이 아니었다는 의미입니다.
‑>'건축자들'은 모든 사람의 판단을 대표하기에 모든 사람이 예수를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의 기록입니다.
‑>(요한복음1:10‑11)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에 대하여 아무도 몰랐다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4:11) 누구도 예수를 모퉁잇돌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예수가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이 구절은 베드로가 병자를 고쳐준 후에 유대교 지도자들이 무슨 권위로 했느냐고 문제 삼는 상황 속에서 베드로가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이며, 핵심은 예수가 너희가 버린 돌인데 그 예수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즉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죄인 되어 있기에 예수를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을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예수를 죽일 것도 다 알고 계셨으며, 혹시나 해서 아들을 보내주신 것이 아니라 그럴 줄 알고 예수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내신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행할 일, 그리스도만이 이룰 수 있는 구원의 일을 기대하셨기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집이 잘 지어지고 세워지게 하시므로써 이 돌을 버린 건축자들의 판단과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 너희 모든 죄인의 인식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시는 것입니다.
‑>결국 죄를 문제로 여기신 하나님의 인식, 하나님의 방법이 옳았다는 것이 예수를 통하여 증명이 된 것입니다.
‑>죄로부터 구원받아서 죄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로 행하는 성도의 삶이 그 증거로서 사도행전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이 말씀의 강조점을 '하나님이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라고 하면 하나님은 독선적인 분, 기독교는 배타적인 종교로 오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하니 죄인들이 구원받을 만하다고 여기는 길을 다 차단하시고 모든 방법을 시도조차 할 수 없게끔 통제하셨다는 뉘앙스로 전달되어 한 길, 한 방법만 강요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 진리, 생명이라고 믿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이 구절은 '하나님이 구원받을 만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복음으로 강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이름, 다른 길, 다른 방법을 차단하시거나 통제하신 적이 없습니다.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러 갈 때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의 거리낌이나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하나님이 하나님 신앙을 강요하신 적이 없고 징계나 처벌로 겁박하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그렇게 오해할 뿐 하나님은 단 한 번도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 신앙을 강요하시거나 겁박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가볼 수 있는 모든 길, 해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허용해 주십니다.
‑>이 말에 대해 하나님이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책임을 다하셨습니다.
‑>죄의 길에서 괴로워할 때 구출해 주시고 죄의 방법으로 망하게 되었을 때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죄인은 자기가 가볼 수 있는 길, 해볼 수 있는 방법이 단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죄인들이 고안하고 구성해 낸 마지막 결과물이 유대교라는 구원의 체계였습니다.
‑>모든 것이 인간의 행위에 달렸다는 죄의 인식, 죄의 기준, 죄의 원리가 얼마나 비참한 사회와 비인격적인 관계를 만들어내었는지 구약 말미와 복음서를 통해서 그 실상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인의 길, 죄인의 방법이 다하였다'는 것을 복음서는 '때가 찼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해볼 수 있는 것 다 해봤다, 때가 차매 예수가 오셨고, 때가 차매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바는 모퉁이의 머릿돌로 쓸 만한 다른 돌이 있었는데 무조건 예수를 그 돌로 사용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건축자들,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그들이 그 돌을 고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은 쓸 만한 돌을 찾지도 못하고 집을 세우지도 못했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모퉁잇돌로 주셨지만 건축자들은 가장 좋은 돌, 가장 견고한 반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 돌을 버리고 말았다, 그냥 버리지 않고 산산조각을 내어서 버렸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죄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도무지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 다른 길, 다른 방법이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구원을 받을 만한 이름, 구원을 받을 만한 길과 방법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복음으로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받을 만한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기에 우리는 그 이름을 받은, 그 이름에 속한, 그 이름으로 사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로 사는 자들, 예수의 마음을 아는 자들, 예수의 원리로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복음 안에서 깨닫고 성경을 통해서 배워야만 성도답게 살 수 있고, 하나님 나라의 복과 유업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의 근거입니다.
‑>(사도행전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받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베드로가 예수 이름으로 병자를 일으켰다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살고 있느냐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느냐의 변화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예수의 이름, 예수의 마음과 원리, 하나님의 인식과 은혜의 방식으로 살고 있다고 담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구원의 이름, 예수의 이름, 예수의 마음과 원리, 하나님의 인식과 은혜의 방식으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가정과 일터, 관계 속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예수의 이름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