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기지교회 3/19 (수)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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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매일성경 (누가복음 12장 35절- 48절)
3월 19일 새벽예배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상대방이 약속 장소에 늦을 때는 할일 없이 내 시간을 죽이면서 기다리는 그 시간들이 막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기다림은 이런 종류의 기다림과는 다릅니다. 막연한 기다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다리는 동안에 우리가 해야될 일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42절) '주께서 이르되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줄 자가 누구냐.'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 내 입에만 양식을 넣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맡은 사람에게 양식을 넣어주는 자라고 하십니다. 또한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잘 못 했을 때도 보여주십니다. 45절은 42절과 대조의 말씀이 나옵니다.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며 취하게 되면' (45절) 주님의 일을 맡은 사람 중에 주님께 칭찬받는 사람은 남을 섬기며 양식을 주는 사람이며, 주님의 기다림을 잘못 이해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의 이익에 초점을 맞춰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주변 사람들의 이권을 뺏고 이용했던 사람들이 주님께 책망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46절)
이 말씀을 우리가 들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기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음을 믿으며 지금 이순간 주님께서 언제든지 다시 오셔도 이상하지않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때까지의 시간사 이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 있음을 오늘 본문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살리는 일에, 양식을 주는 일에, 영적이든 육적이든 시간을 쏟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거창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상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며 내가 주님을 기다리는 청지기라면 내 말이 남의 부족함을 언급하며 내가 무언가에 이득을 취하고 있지는 않는지, 내가 저 사람보다는 괜찮다는 평판이나, 내 마음속의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의 적을 만들어서 집중시키지는 않는지, 내 말이 낙담하고 지쳐있는 사람을 살리고 힘이 되어 주는지에 대해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청지기의 삶을 잘 살고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합니다.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나에게 주어진 발걸음, 하나하나만 따라가보면 내가 정말로 주님의 청지기로서 살아가는 것, 내게 맡겨진 영혼을 돌보는 것에 생각이 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언제 즐거워질까요? 막연한 기다림은 결코 즐거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다림이 즐거워지려면 만남의 날이 반드시 정해져있을 때이고 그 만나는 날이 멀다고 생각되지않고 유의미한 일이 나에게 주어지며 그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단 한가지, 나를 만나는 그분이 내가 가장 사랑하고 의미있는 분이고 좋은 분일때 그 만남은 기다림조차도 떨림이 되는 것입니다.
(37절)'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주인을 잘 기다린 종들을 만났으면 종들이 주인을 섬겨야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주인이 이 종들을 수종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주인은 섬김의 주인인 것입니다. 이 주인이 멋있는 이유는 본인이 대접받으면서 남에게 대접받기 위해 섬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몸소 섬김으로 이 땅을 사셨고 우리가 기다림 끝에 나타나셨을 때도 섬김의 왕으로 우리를 돌보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진짜 청지기는 주님을 아는 청지기입니다. 내 주인이 섬기는 모습을 보이셨으므로 나 역시 섬김으로 낮아지는 청지기가 주님께 사랑받고 맡긴 바를 일할 수 있는 청지기입니다. 모든 것을 가지시고 누리신 주님이, 마지막 순간에도 본인의 권리를 내세우신 것이 아닌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보다 더 잃을 것도, 주님보다 큰 고난도 없는 우리는 왜 낮아지지 못하는 것일까요..혹시 나의 기분이나 나의 조그마한 세움때문은 아닐까요? 혹시 그런 마음이 있다면 주님의 섬김을 이 시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섬김으로 이 땅에 오셨고 섬김으로 모든것을,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은 다시 우리가 만나는 그 영원한 나라에서도 우리를 섬기는 섬김의 왕으로 이 땅에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 이땅을 섬기는 자로 살아가는지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는 청지기로 일하는지 묵상하시며 다시 오실 주님을 생각하며 청지기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