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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5-2.26 새벽말씀

권화영2025.02.26 09:3502.26조회 수 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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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 (누가복음 7:1‑17) '예수님의 권위와 긍휼' 제목으로 은혜 나누겠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말씀을 통해서 만난 예수님을 어떻게 기억하고 품고 살아가고 있는가, 실질적으로 내면의 고백 속에서 그분을 어떻게 바라보고 만나면서 살고 있는가'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가치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제자도의 길을 말씀하셨던 평지설교를 마치시고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시는 초반부의 모습을 누가복음이 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누가복음이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들에게 전하고 싶은 예수님의 모습은 로마의 군대 백부장의 종을 고치신 사건과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사건입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의 공통점은 주님의 말씀에는 병과 죽음의 권세를 넘어서는 권위가 있으시다, 주님께서 그 권위를 사용하시는 이유는 주님의 긍휼 때문임을 성경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주님의 권위가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있는 것이고 주님의 말씀 가운데서 우리 삶의 요소와 삶의 지경들이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이며 주님의 긍휼을 힘입어서 살아가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누가복음 7:1‑10) 백부장의 종을 고쳐달라고 요청하신 일에 응하신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방인 군대의 지휘관이므로 예수님이 시작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회복하시는 일과 상관없는 집안의 일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나 누가복음은 우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예수님께서 이끌어내신 하나님 나라는 보편적인 나라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인종이나 지역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지경은 우리가 생각했던 경계를 훨씬 넘어서는 것임을 소개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백부장의 종을 고치시는 사건 속에서 긍휼이라는 단어가 이 사건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종 하나가 병들어 죽는 문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문제이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으나 종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안쓰럽게 여기고 살려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품었고 예수님의 긍휼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그곳 가운데서 긍휼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유대인의 장로들이 백부장의 입장에서 예수님에게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7:3) 회당 공동체로 모여 있는 유대의 지도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간청을 하고 그 권위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7:5) 백부장은 군대 지휘관으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지 사람들의 형편을 살펴보는 사람이었고 유대 사람들의 회당이 없으니 회당을 짓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기반을 마련해 주었던 사람이었다고 소개합니다.

‑>(누가복음 7:4) 백부장과 유대 사람들 사이에 서로 상호적인 긍휼의 마음이 이미 작용을 하고 있었고 그때에 그들이 예수님을 청하게 되었으며 예수님이 그들의 청을 기꺼이 들어주시는 것이 합당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의 문제를 유대인의 장로들이 예수님께 말하고 있으며 '저 사람의 청을 들어주시는 것이 합당합니다'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문제를 두고 '저 사람의 청을 들어주시는 것이 합당합니다'라고 기도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방문하시는 긍휼의 마음이 가득한 이들은 '주님, 내 옆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주님 제가 원하는 것은 주님께서 이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라는 마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누가복음 7:6‑8) 또한 예수님을 만나게 될 백부장에게 함께 가자고 했을 때에 '굳이 갈 필요 없습니다, 저는 당신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종은 충실히 따르는 사람이므로 당신이 주인이시니 말씀만 하면 충실히 따를 것이고 그 가운데 병들어 있던 백부장의 종이 낫게 되어진 일도 충실하게 일어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할 때에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말로만 표현하고 있으나 그 고백의 의미를 백부장이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고대했던 유대 사람들도 아니고 성경을 심각하게 연구했던 학자들도 아닌 백부장이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7:9) 이 고백에서 예수님은 '이스라엘 중에 이러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 말씀하십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믿음을 찾고 계시다' 입니다.

‑>예수님은 '주님 말씀하십시오, 종들은 충실하게 이행하겠습니다'는 이 믿음을 찾고 계십니다.

*메시아의 시대에 동참하는 이들,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는 이들은 '주님 나에게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따르겠나이다' 라고 말하는 이들이며 오늘 성령 안에서 우리 가운데 그러한 순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러한 이들이 인종을 넘어서고 사람들의 편견을 넘어서는 예수님이 역사하시는 현장에 증인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누가복음 7:11‑17)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사건입니다.

‑>(누가복음 7:11‑12) 예수님께서 나인성에 들어가실 때에 이미 장례 행렬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7:12)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다' 설명합니다.

‑>과부이자 아들을 잃어버린 한 여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방인 군대의 백부장에게도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보편적으로 일어났었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아들도 잃은 과부에게도 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사회 속에서 어떠한 안전 장치와 보호 장치를 갖추지 못했으며 사람들의 모임 가운데 존중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낮은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 한 여인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통치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그러한 이들을 위한 나라입니다.

‑>(누가복음 7: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하나님 나라는 그러한 이들이 울지 않게 되는 나라입니다.

‑>이 여인처럼 과부로 살아왔는데 아들까지 상실해서 현재 보호 장치가 없으며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는 불안정한 현실과 한스러움을 살 수밖에 없는 여인의 눈물이 그쳐지는 나라가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우리 가운데에 눈물 짓는 이들, 혹은 눈물 지을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려 있는 이들의 눈물이 그쳐지는 주님의 나라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라고 함께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누가복음 7:14) 예수님께서는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말씀합니다.

‑>지금 순간의 슬픔을 극복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청년의 삶을 통해서 자신뿐만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단순히 이적이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 사건을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누가복음 7: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엘리야와 엘리사를 떠올리며 어려웠던 시절, 가뭄의 시절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과부의 집을 찾아갔던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이야기,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에 그를 살려냈던 이야기가 불현듯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떠오른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만약에 메시아의 시대가 올 것이라면 그 메시아는 엘리야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대하는 메시아 왕국의 회복과 예수님이 드러내시는 하나님 나라는 결이 다르며 예수님의 임재는 구약에 등장했던 엘리야, 엘리사의 사역과도 결코 다릅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증언하는 것은 예수님이 임재하실 때에 하나님의 손길이 어떻게 임하시는지를 맛보았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7: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가능성이 열렸고 기회가 사람들에게 주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실 때 우리에게 가능성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 안에 살아가고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삶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그 긍휼의 은혜를 붙잡고 긍휼의 은혜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임재 속을 걸어가게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 붙잡고 기도하실 때 세 가지 기도 제목으로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첫 번째, 주님의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두 번째, 예수님의 긍휼을 본받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세 번째, 공군의 안전을 지켜주시고 오산 기지를 이끌어 주옵소서.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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