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매일성경 (여호수아 13:15-33)
1월 22일 새벽예배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땅을 분배받은 것은 이스라엘이 땅을 모두 정복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을 정복하실때에 총 31명의 왕을 정복하셨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당시에 왕 1명이 하나의 도시였고 나라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총 31개국의 나라를 정복했다고 나옵니다. 가나안의 모든 나라가 정확히 몇개인지 알 수는 없으나 실제 고대문서에서는 이집트에서 가나안을 정복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가나안의 150명의 왕을 정복했다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가나안은 150개 이상의 나라가 있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31개의 나라를 정복한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아직 정복할 나라가 많다는 뜻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호수아의 선택은 땅을 기업으로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나면 땅을 분배받은 지파의 사람들이 그 지역을 책임지고 정복하는 것, 이것이 땅분배의 방식이었고 더 중요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그 지역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야하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철저히 훈련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마자 이방신을 섬긴 이유는 왕을 정복하긴 했지만 실제로 백성들을 쫓아내진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과 함께 살다보니 금방 동화가 된 것이었습니다. 일례로 예루살렘 왕은 여호수아시대때 정복했지만 백성들은 쫓아내지않았으므로 다윗시대에 가서야 비로서 여부스 족속을 다 쫓아내었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환경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이방사람들과 어울려 살다보니 생각이 변화되고 변화시켜야될 사람들이 변질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서에서 굉장히 중요한 신학적인 의미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땅에 대한 이해가 다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특정민족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심판으로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모리 족속의 죄가 다 찰때까지 기다리셨던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도 죄를 지으면 누구를 통해서도 심판하실 것입니다.
두번째는 누가 과연 그 땅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가 였습니다. 순수한 혈통의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믿음으로 그 나라를 사모하고 반응하는 자,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번째는 단순히 땅을 배정받아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을 정화시키기 위해서 사명으로 먼저 지도상으로 배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150여개의 나라 중 31개의 나라를 정복했으니 앞으로 정복하고 정화해야할 나라들이 많으며 맡겨질 사명이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의 신학용어로 바꾼다면 예수님께서 사단의 머리를 무너뜨리시고 우리를 승리케 하셨지만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 땅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승리를 쟁취해가야합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서 새사람이 되긴 했지만 앞으로는 새사람으로서 온전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우리의 최종적인 목표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성숙해가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 믿게 하신 것은 우리는 죽어서 천당, 믿지않는 자들은 죽어서 지옥, 이런 이분법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를 새사람을 만드시고 앞으로 새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꼭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했던 이유는 그 곳에서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영적 새신분으로 바뀐 것이 아닌, 이제는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바뀌고 온전히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시기 위해(이전의 우리로선 불가능했기때문에) 우리를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기적은 없어도 됩니다. 신앙생활에 기적이 다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 반드시 일어나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변화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정도면 믿었으면 되었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땅을 정복하고 있지않은 이스라엘 모습 그대로인 것입니다. 레위지파에겐 땅을 기업으로 주지않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셨습니다. (33절) 이 말씀을 기업을 유산으로만 이해한다면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업을 지키고 온전히 해야할 소명이라고 이해하게 되면 레위인들에게 기업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대대로 이어가게 하고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대대로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 레위인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레위인의 기업의 사명이 있습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소명과 사명을 가정대대로 이어나가야합니다. 그것을 이어나가기 위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닌, 아름답게 접근하기 위한 지혜와 명철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기업은 사명이고 사명은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 즉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냥 신앙생활하다가 삶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우리의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신앙적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를 지키는 레위지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대구기지교회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