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 디모데후서 1장을 내일까지 상고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두 번째로 투옥이 되어서 처형을 앞두고 있을 때, 대략 64‑65년쯤에 기록된 바울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3‑4절에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디모데를 생각하고, 디모데의 눈물을 생각해서 그를 보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하는 바울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실제 부자지간은 아니지만 이토록 친밀하고 무조건적인 관계가 가능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새롭게 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1:6‑7)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블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바울이 안수해 주었을 때, 디모데는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 즉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구원의 은혜 안에서 세상에 대하여 두려움 없이 맞설 수 있는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으로 새로워졌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이미 부어주신 마음입니다.
‑>우리 안에도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 이미 부어져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4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가질 수 있는 마음입니다.
‑>성경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존재적인 표현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원리로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다'라는 고백에 풍성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 아들과도 같았던 디모데에게, 그리고 디모데와 같은 모든 성도에게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복음의 결론이자 신앙의 본질이었을 것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결과로 시작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들이 아니라 우리는 결과를 가지고 출발한 자들입니다.
‑>죄로부터 구원받았다, 구원받아서 성도가 되었다는 결론이 우리의 삶의 서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 손에 주어지고 우리 삶에 이루어진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구원이 은혜로 주어졌고, 성도의 삶이 은혜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출발은 여기서부터입니다.
‑>무슨 일이든 행하여서 구원을 유지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고난이든 견뎌내어서 성도 된 것을 증명해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받았음을 알고 성도됨을 누리면 됩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가 알고 누리는 만큼 더욱 풍성해져 갑니다.
‑>맛보는 만큼 더욱 맛난 것을 찾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동기를 부여하거나 보상을 제시하는 것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가 동기를 부여하는 종교, 보상을 제시하는 종교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예로 들어본다면 고난 중에 있는 성도에게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동기를 부여하거나 고난 뒤에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라고 보상을 제시합니다.
‑>결국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 공식은 모든 종교에 다 있으며, 구약이나 복음서에서 이 공식이 맞는 것처럼 보이는 교훈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기도해서 문제 해결받고,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서 무언가를 하더니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았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많으나 문제는 사도행전 이후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혔을 때 기도하고 찬송했더니 옥문들이 열린 것처럼 우리도 고난을 만났을 때 기도하고 찬송하면 문제가 풀린다, 복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수준이 낮은 것입니다.
‑>기도해서 옥문이 열렸으나 그들은 도망가지 않았고 지금 바울은 로마까지 압송되어 처형을 기다리면서 디모데후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기도하고 찬송하면 철옹성 같은 로마 감옥의 옥문이 다시 열릴까요?
‑>이 편지는 마지막 편지이며, 결국 바울은 처형되고 말았으니 문제를 풀지 못하고 실패한 것일까요?
‑>그러니 서신서로는 늘 하늘의 상급이나 나중에 죽어서 받을 면류관과 같이 내세에 받는 축복 말고는 제시할 만한 보상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서신을 기록하는 이 순간에도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은 성도의 삶을 권면합니다.
‑>어떤 동기를 부여하고 보상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삶을 권고합니다.
‑>(디모데후서 1: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부끄러워하지 말고'라는 표현은 뒤집어보면 '자랑스러워한다'는 의미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12절의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의미는 '나는 지금 내가 당하는 이 고난을 자랑스러워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로마서 1장 16절의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복음을 자랑스러워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그냥 '자랑스럽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또한 바울은 사도행전, 고린도전서에서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는 표현도 많이 사용합니다.
‑>그냥 '행복하다'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표현했을까요?
‑>바울이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의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자기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결과가 내가 일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신 열매인 것을 드러내는 기독교적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싶어서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의 모든 결과와 내가 지금 복음으로 말미암아 누리고 있는 변화가 나의 어떤 수고와 노력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신 열매를 나는 은혜로 받아서 누리고 있는 것뿐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러한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자랑스럽고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삶이 '고난'이라는 단어로 표현 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8절의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말씀은 동기부여나 보상제시, 이렇게 살면 고난을 극복하게 된다거나 꿈과 비전을 성취하게 된다는 말이 전혀 아닙니다.
‑>'고난'으로 표현되는 성도의 삶 자체를 자랑스러워하라는 것이고,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자신 있게 말할 만큼 그 삶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분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디모데후서 1장 8절의 '복음과 함께'를 정리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복음을 설명합니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혼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받아서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는 복음입니다.
‑>구원했다고 하시니 구원받은 것이고 성도가 되었다고 하시니 성도가 된 것이므로 우리의 행위가 끼어들 틈이 전혀 없습니다.
‑>그 은혜가 어떻게 나타났고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설명합니다.
‑>(디모데후서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 이라는 짧은 표현 안에는 성육신,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고 공생애를 사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전 존재와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존재와 사역으로 무엇이 나타났는지 새번역성경으로 인용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존재와 사역으로 나타난 것은 '이 은혜는 영원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타나심으로 환히 드러났습니다' 말합니다.
‑>처음에 나오는 '이 은혜는'의 의미는 죄인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고 아무런 값없이 죄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죄인 되었던 우리에게 온전히 나타났기에 우리가 그 은혜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결과가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입니다.
‑>'사망'은 죄의 결과이자 사단의 최고 무기입니다.
‑>'사망을 폐하셨다'는 것은 '부활하심으로 죄를 이기시고 죄로 인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하나님을 떠난 죄로 인하여 발생하는 우리 인생의 모든 비참함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다'는 복음입니다.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 것이 복음인 이유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었던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께 대하여 무지했던 죄인이 썩지 아니할 것, 즉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죄인에서 성도로 바뀌게 되었다'는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과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허락되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미 우리는 그 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성도로 변화된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모든 여건과 상황과 형편은 그 썩지 아니할 나라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지, 그것 자체가 썩지 아니할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썩어 없어질 것들을 의지하지 마시고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나라를 날마다 더 풍성히 누려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얻을 수 없던 것을 얻었고 누릴 수 없던 것을 누리게 되었기에 복음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1장 16절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고 고백하듯이 복음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우리에게 들려진 소식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들려진 소식이므로 디모데후서 1장 8절에서 복음 바로 앞에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라는 고백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오늘 함께 기도하고 묵상하는 자리에서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은혜대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하시고 그 복음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고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게 되었음을 감사하고 또 감격하며 나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