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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4-11.12 새벽말씀

권화영2024.11.13 08:4711.13조회 수 1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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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 (디모데전서 2:8‑15)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가끔 성경에 대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하지 왜 이렇게 어렵게 쓰여졌느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일부러 돌리고 꼬아서 쓴 것은 아니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첫째, 시간적, 문화적 간격 때문입니다.

‑>가장 늦게 기록된 요한계시록도 주후 90년대에 쓰여졌으니 오늘날 우리 시대와는 2천년에 가까운 시간적 간격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주전으로 가기에 훨씬 더 큰 간격이 있으며 또 시간적 간격만큼이나 문화적, 민족적, 지리적 배경들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터디 바이블을 보면 성경의 각권 앞에 간격을 좁힐 수 있는 내용들이 가득합니다.

‑>스터디 바이블을 성경 옆에 꼭 두고 보시기를 권합니다. (NIV 성경신학 스터디 바이블, ESV 스터디 바이블, 개혁주의 스터디 바이블)

‑>스터디 바이블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각 성경을 묵상할 때 참고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성경을 보는 우리의 관점이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과 온전히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이상하게 쓰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내 눈이 이상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에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를 따라 읽으면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보다 세상에서 습득, 체득, 체화된 세상적 기준과 원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의도와는 상이하게 읽히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는 누군가 가르쳐준다고 한 번에 깨달아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고 또 읽어서 성경의 분량이 채워지고 성경의 표현 방식이 눈에 익게 될 때 점차 익혀져가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입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의 마음과 원리를 체득하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렇다면 믿지 않는 사람도 성경을 많이 읽으면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를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아는 것은 믿음 안에서만 가능하기에 불가능합니다.

‑>은혜로 구원받고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더 풍성히 알아갈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는 것이니 귀하고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과 관련된 공부도 많이 하셔서 성경 어디를 펴서 보시더라도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로 자연스럽게 읽혀져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이 더하여지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 디모데전서 2장 8절 이하의 내용이 신학적으로 많은 논쟁을 벌여왔던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근거로 권하는 내용이 디모데전서 2장 말미와 3장으로 계속해서 이어지기에 맥락을 연결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디모데전서 2:11‑15)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교회 안의 남자들과 여자들을 향하여 전하는 바울의 권면은 신학계에서 수십 년간 큰 논쟁이 있어왔던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불평등했던 시대에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남자와 여자의 갭이 좁혀지면서는 논쟁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본문에 접근하는 일반적인 세 가지의 방식을 NIV 성경신학 스터디 바이블을 통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어떤 주석가들은 이 단락에서 여성에 대한 바울의 견해가 가부장적이고 그릇되며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 본문을 연구하는 신학자들 중에 이렇게 주장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가부장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인간적인 말을 한 것일까요?

‑>그럼 성경에서 특별히 서신서를 볼 때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지 못하는 인간적인 말들도 구분해야 되는 것입니까?

‑>성경의 흐름상 바울은 성도됨을 온전하고 풍성하게 누리는 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복음으로 인하여 변화된 삶을 누리는 성도의 존재를 세상에 나타내 보이시려고, 성도다움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시려고 택한 자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 7절의 표현대로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우시고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입니다.

‑>이방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며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봤을 때 배울 만한 스승으로 세우신 자가 바울입니다.

‑>그러니 성경의 흐름상 바울이 가부장적인 한계가 있다고 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또 다른 주석가들은 바울이 가부장적 관점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의 조언은 그가 살던 시대의 교회에서만 구속력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바울이 남성 중심의 사고 방식으로 꽉 들어차 있는 사람이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첫 번째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시대가 달라졌으니 바울의 말을 오늘날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약간의 융통성은 있지만 역시나 성경의 흐름을 고려하지 못한 주장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바울의 권면은 가부장적인 질서를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리를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이기에 바울이 하는 모든 권면은 하나님의 원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서 한 장으로 된 매우 짧은 사적인 바울의 편지 빌레몬서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인데 바울이 로마로 도망쳐 온 노예 오네시모를 그의 주인이자 성도 된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그를 종과 같이 대하지 말아라, 사랑받는 형제로 두라'고 기록하면서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권면하는 편지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노예제 폐지를 주장했을까요?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어떤 문장이나 내용이 바울의 서신서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어떤 구조나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노예제가 옳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구조나 제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외형적인 것들을 바꿔도 하나님의 마음이 없으면 굳이 노예제가 아니더라도 세상은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입니다.

‑>죄인들의 세상에서 바울은 개인과 교회의 모든 문제에 대하여 제도와 구조, 외형적인 것들과 형식을 바꿔야 한다고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성도들에게는 언제나 복음을 근거로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원리에 대해서 권하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라는 것을 서신서를 읽어가면서 깨닫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겉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지만 바울은 언제나 복음을 근거로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를 권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또 다른 주석가들은 바울이 교회역사 전체에 걸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이해해 온 것처럼 남성은 교회에서 특정한 지도자 역할로 부르심을 받았고 대부분의 여성은 그런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고 가르친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남성이 여성보다 더 유능하거나 탁월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성과 남성에 대해 각각 다른 기대, 곧 창조하실 때 그들에게 부여하신 차이와 조화를 이루도록 기대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부분적으로 동의가 되는 가장 상식적인 주장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고 할 때 중요한 전제는 '차이에 대한 인정' 입니다. 

‑>남녀평등 이야기를 하면서 '여자는 군대부터 보내라, 남자는 출산을 경험시켜라' 주장하는 경우는 무지몽매한 이야기들입니다.

‑>남녀평등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전제는 차이에 대한 인정이며 그 차이는 차별이 아닌 조화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설명을 신학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시대에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차이를 차이로 인정하지 않고 우열의 기준으로 삼고 우등과 열등을 결정하는 기준이라고 대부분 시대의 남자들이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차별을 정당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여성은 교회 안에서 어떤 지도자의 위치, 지위를 감당할 수 없을까요?

‑>교회는 높고 낮음이 절대 아니기에 위치, 지위라는 표현을 쓸 때도 조심스럽습니다.

‑>우리와 수천 년의 간격이 있는 당시 사회는 말할 것도 없이 남성 중심의 사회였습니다.

‑>바울은 구조나 제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으며 남성 중심의 사회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말이 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시에는 교회 안에서도 남성이 지도자의 역할을 하도록 두었던 것이지 남성만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어떤 질서에 의해서 남성만 담당할 수 있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시대는 남성중심 사회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사회입니다.

‑>여성도 지도자가 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 여성 지도자가 있을 수 있고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구조나 제도가 아닙니다.

‑>바울의 유일한 기대와 관심은 서로 다른 지위를 갖고 서로 다른 역할을 맡은 성도들에게서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가 적용되고 구현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기대와 관심은 하나님의 기대와 관심과 동일합니다.

 

‑>바울의 권면을 잘 들여다보시기를 바랍니다.

‑>(디모데전서 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남자들에게는 딱 한 줄의 권면이지만 뒤이은 여자들에게는 길게 이야기하므로 여자들에게 문제가 더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지지만 남자들에게 말한 한 줄이 너무나 중대한 것입니다.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일수록 딱 한 줄로 끝낼 수 있는 것입니다.

‑>남자들에게 하는 말은 에베소 교회 남자들 사이에 분노와 다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서로 비등비등하게 싸우고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의 지위가 크기 때문에 눌러버리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사회적 지위의 문제로 인한 갈등이 있어왔다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의 지위는 곧 아내된 여자들의 지위가 되었기에 에베소 교회의 남자 성도들 간에 있었던 문제가 여자들에게도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단장한 지위가 높은 여자들 중에 교회가 부여한 권한이 없는데 자기 지위를 앞세워 가르치려고 하고 심지어 지위가 낮은 남자들을 주관하고 감독하려고 하는 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여자들에게 하는 말이 길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문제의 발단은 남자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자들에 대한 말로서 남자들을 향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여자들에게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하면서 언급하는 것이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입니다.

‑>(디모데전서 2:13‑14)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이 이야기를 갑자기 꺼낸 것은 인류가 죄 아래 있게 된 것이 여자 때문이라는 말을 하는 것일까요?

‑>그러니 여자는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말일까요?

‑>그런 주장이 전혀 아닙니다. 

‑>바울이 언급하는 아담과 하와 이야기의 포인트는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다는 것이 아니라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중에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굳이 따지자면 속아서 죄에 빠진 하와가 아니라 하와가 속아서 죄에 빠지는 동안 옆에서 침묵하며 지켜만 보고 있었던 먼저 지음 받은 자로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고 하와가 건네준 것을 받아먹은 아담입니다.

‑>강조점을 분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성도들 사이에 있었던 지위의 문제, 지위에 따른 역할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디모데전서 2장과 3장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밀접하게 관련있는 내용이 됩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서 남자들이 교회의 지도자로서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열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남자의 지위에 따른 역할 부재 문제와 교회 지도자로서의 남자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이 된다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의 왕 되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내주시기까지 섬기는 원리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하나님을 아는 우리도 우리에게 있는 지위를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의 유익을 위해서 기꺼이 사용할 수 있는 원리로 나가야 한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지위,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그렇게 사용되어지기를 바라는 바울의 권면을 귀기울여 들으시고 그것을 기도 제목 삼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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