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 (열왕기하 20장) '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히스기야에 대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는 성경의 평가가 과연 그의 남다름으로 인한 것인지 하나님의 신실함으로 인한 것인지를 확인해 보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20장에서도 히스기야와 관련된 유명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죽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열왕기하 20: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그 때'를 히스기야 제십사년으로 본다면 삼십구세쯤 되었을 것이며 당시 평균 연령이 오늘날과 같지는 않았을 테니 젊은 나이라고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것이 팩트입니다.
‑>또한 '이사야가 와서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죽게 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히스기야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의미입니다.
‑>누구에게나 더 정확히는 모든 사람에게 있게 될 일이 히스기야에게도 찾아온 것입니다.
‑>열왕기하 13장에서도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었다는 상황을 소개한 바가 있습니다.
‑>그 때 엘리사의 반응은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하거나 자기가 한 일을 보시고 고쳐달라는 모습은 나오지 않고 그저 하던 대로 하나님 말씀 전하다가 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다는 짧은 설명과 함께 엘리사는 성경에서 사라질 뿐입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간구하여 치유받았다 혹은 치유를 받고도 교만하여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식의 단순한 교훈으로 그칠 수 없는 것은 앞서 엘리사와 같은 예가 있기 때문입니다.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도 살려달라 기도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께 필요한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는 하나님이 판단하실 일입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도 구하지 못할 것을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는 일을 경험했기에 그래도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열왕기하 20:2‑3)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무엇 때문인지 의도나 동기까지 알 수는 없겠지만 살고 싶어 하는 모습입니다.
‑>역대하에 따르면 히스기야가 이렇게 자기의 행위를 근거로 기도할 만한 근거가 나름 있습니다.
‑>왕위에 오른 첫 해에 성전 수리도 하고 백성과 함께 무교절도 지켰습니다.
‑>성전 수리는 앞서 요아스 왕도 한 적이 있지만 무교절, 유교절을 지킨 것은 무려 약 600년 만에 지키는 유월절이었으니 참으로 잘한 일이며 특별한 것입니다.
‑>물론 그 후에 앗수르를 의지하기도 하고 앗수르를 배반하고 애굽을 의지하려 하기도 했지만 히스기야는 자기가 행한 것을 근거로 병에서 낫게 해 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장면을 보면서 히스기야가 기도해서, 히스기야 앞서 잘한 것이 있어서 하나님이 응답하신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은혜입니다.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열왕기하 20:5‑7)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히스기야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넘치는 은혜를 약속하시며 은혜를 베푸실 때에 히스기야는 '아멘, 할렐루야' 하면서 감사히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에서 '삼일 만에 나아서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겠다, 앞으로 십오년을 더 살게 하겠다,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예루살렘을 보호하겠다'고 세 가지 약속을 하시고 바로 이어서 이사야가 무화가 반죽을 가져오라 하여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았습니다.
‑>상처로 인해서 상했던 몸을 삼 일이면 회복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갈 수 있도록 치료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히스기야가 보이는 반응인니다.
‑>(열왕기하 20: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징표를 구하고 있는 상황, 모습들은 불신의 증거입니다.
‑>삼 일 만에 낫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고 있기에 삼 일도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왕기하 19장에서도 히스기야에게 징조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앗수르를 두려워하고 있는 그에게 앗수르 왕에 대하여 행하실 일을 말씀해 주셨음에도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으므로 앗수르로부터 유다를 보호해서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을 더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십니다.
‑>(열왕기하 19:29)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하나님은 말씀대로 하시는 분이시니 히스기야에게 최소 삼년이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징조'라는 단어와 히스기야가 요구하는 '징표'는 원문상으로는 동일한 단어입니다.
‑>징표를 요구하는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은 이미 징표에 대하여 말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에게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어도 그보다 앞선 하나님 말씀에 따르면 최소 삼년은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삼년의 약속도 믿지 못합니다.
‑>삼년뿐 아니라 삼일의 약속도 믿지 못하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히스기야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하나님이 더 말씀하실 것이 없음에도 답하십니다.
‑>(열왕기하 20:9‑11)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증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이사야의 질문을 보면서 히스기야가 믿음의 사람이다, 세상 어떤 사람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경험한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히스기야가 믿지 못하므로 해 그림자가 십도를 더 가느냐 뒤로 오느냐까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생각에도 하나님이시라면 해 그림자를 십도 나아가게 하기는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십도 뒤로 물러갈 것을 요청했고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해의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다는 장면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히스기야가 범접할 수 없는 대단한 믿음의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아니면 우리와 똑같은 한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이 장면은 히스기야의 믿음이 대단하여 해 그림자를 십도나 뒤로 물러가게 했다는 감탄을 이끌어내는 장면이 아니라 히스기야가 얼마나 믿지 않고 믿지 못했으면 하나님이 해까지 움직이셨어야 했는가라는 탄식을 이끌어내는 장면입니다.
‑>인간이 구하는 징표는 언제나 이런 것입니다.
‑>인간이 구하는 징표와 하나님의 징조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징조는 언제나 인간이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먼저 주십니다.
‑>앞서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은 계속 징조를 말씀하시고 말씀대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계속 보게 하시는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말씀대로 되는 것을 보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조는 전적으로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오늘 하나님이 히스기야에게 보이신 징조는 결국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에게 좋은 것입니다.
‑>반면에 인간이 구하는 증표는 무익할 뿐만 아니라 무의미한 것들만 구합니다.
‑>사사기의 기드온은 하나님이 그를 부르실 때 떨면서
계속 하나님을 의심하여 양털로 테스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양털만 젖고 주변은 마르게 해주십시오, 주변만 젖고 양털만 마르게 해달라고 하기를 몇 번이나 요구하는 일이 무슨 유익, 의미가 있을까요?
‑>복음서의 베드로는 풍랑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자기도 물 위를 걷게 해달라는 징표를 요구합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대단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유익과 아무런 관련 없는 것, 단지 자기의 욕구를 충족하고 자기가 기대하는 바를 보장해 줄 만한 수단 혹은 방편을 늘 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히스기야가 구하는 증표, 하나님이 더 주실 것이 없어서 그에게 주시는 징표는 인간이 구하는 증표를 대표합니다.
‑>히스기야가 믿지 않으니 그의 욕구에 흡족한 징표를 주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징표를 받은 이후에 히스기야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기가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으면서 정작 자신은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우리도 여전히 나를 위한 징표를 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징조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을 위한 징표를 끊임없이 하나님께 구하고 있습니까?
‑>그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는 단 한 가지 징조에 대하여 변함없이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징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문제의 해결이 있고 모든 소원의 만족이 있음을 아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함으로 그 안에서 새롭게 된 은혜를 오늘 하루도 풍성히 누리시기를, 증표를 구하기 위해 절절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증조 안에서 자유와 평화와 안식을 누리며 십자가를 자랑하는 복된 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