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4-10.25 새벽말씀

권화영2024.10.25 08:2610.25조회 수 37댓글 0

AA

샬롬~♡

오늘 말씀은 (열왕기하 18:1‑16)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시매'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열왕기하 18장부터 20장까지는 유명한 히스기야에 관한 내용입니다.

‑>히스기야가 유다의 13대 왕으로 왕위에 오를 때 국내 정세는 어느 정도 안정되었던 편입니다.

‑>7대부터 10대 까지는 아달랴의 쿠데타로부터 시작해서 아달랴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제사장 혹은 신복들 세력의 반역에 의해서 왕이 죽고 그 세력 중에서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왕으로 세워지는 특이점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왕이 반역에 의해서 죽고 그 아들이 왕으로 세워지는 것은 그 왕을 세운 세력의 손에 왕권과 나라가 좌지우지되는 형국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10대부터 13대 히스기야에 이르기까지는 반역이 없이 왕위가 이어졌기에 국내정세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제정세는 앗수르라는 나라가 신흥 강대국으로 등장을 했기에 유다에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앗수르는 열왕기하 15장부터 등장하더니 북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받고 그 땅의 많은 영토를 빼앗고 또 백성도 사로잡아가는 일이 일어납니다.

‑>히스기야 직전 왕인 아하스는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알아서 성전 곳간을 털어다가 조공도 바치고 성전까지 개조해 가면서 앗수르 왕의 마음에 들려는 모든 수고와 노력을 합니다.

‑>그러던 중에 이스라엘이 끝내 앗수르에게 수도를 점령 당하고 완전한 패망에 이르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때 앗수르 왕의 심기를 건드린 북이스라엘의 결정적인 계기는 배반이었습니다.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치던 이스라엘이 애굽 왕에게 붙었기에 이스라엘은 멸망하지만 이것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애굽이 앗수르에 비해 열쇠했다기 보다 대제국 애굽과 앗수르가 세계의 패권을 두고 세력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는 것을 열왕기하 17장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마지막 왕 호세야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애굽이 확실히 열세였다면 굳이 앗수르를 배반하고 애굽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국내외 정세 가운데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이 된 것이며 왕권은 강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정되었지만 세계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입니다.

‑>이때 등장한 히스기야에 대한 평가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18: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다윗의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가 아니라 행하였다'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열왕기하 18:4)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또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이 히스기야 때까지 보존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같이 유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은 유물이 있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런데 놋뱀이 보존되어 있었다는 것은 특이점이며 유다의 여호와 신앙도 우상 종교와 같이 변질, 왜곡되었음을 알 수 있는 지점입니다.     

‑>놋뱀은 광야시대 이스라엘이 죄의 결과로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놋뱀을 세워 그것을 보는 자마다 살게 하신 것으로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함,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살 길이라는 것을 놋뱀을 보는 자마다 사는 그 역사를 통해서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는데 정작 이스라엘 자손,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놋뱀을 지금까지 보존해 오면서 그 효험을 보고자 한 것입니다.

‑>자기들을 고치고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놋뱀에 있다고 여겼기에 산당들에서 제사하고 주상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우상숭배적 종교 행위의 일환으로 놋뱀을 섬겨왔던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히스기야가 우상숭배와 관련된 모든 것을 타파했으니 칭찬받을 만한 일입니다.

 

‑>히스기야에 대한 더욱 놀라운 평가입니다.

‑>(열왕기하 18:5‑6)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유다 왕들 중에 아니 전체 왕을 통틀어서 이런 평가를 받은 왕은 없기에 우리는 히스기야를 신앙개혁 운동을 펼쳤던 전무후무한 왕으로 본받고 따를 만한 신앙적인 모델로서 추켜세우고는 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이러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 열왕기서를 읽을 때 이와 비슷한 평가가 조금이라도 나올 때마다 그 사람의 어떤 신실함, 특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히스기야가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그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열왕기하 18:7)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시매~'

‑>이 표현은 요셉 때에 나올 만한 말입니다.

‑>요셉은 그저 생존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의 삶 가운데 특별한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셨다, 그의 범사에 함께하셔서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 입니다.

‑>이것은 요셉에게 어떤 믿음이나 신실함이 있어서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함께하셔서 그의 삶을 형통하게 보상해 주셨다는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히스기야의 삶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는 표현도 앞선 히스기야의 행동들로 인한 하나님의 반응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열왕기서 내내 하나님은 누가 신실, 정직, 충성, 헌신해서 그것을 보고 감동하셔서 일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도 없었을뿐더러 지독히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로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으면 유다, 이스라엘은 이미 망했어야 했지만 하나님이 은혜로 일하셨기에 그나마 이스라엘이 호세아 때까지, 유다가 지금 이때까지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열왕기하 13장에서 아람 왕 하사엘에게 학대를 당하던 이스라엘을 단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구원하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왕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저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행했다는 평가만 있는 그러한 시대에 하나님은 단지 언약 때문에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은혜로 히스기야와 함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히스기야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수 있었던 것임을 그의 생애를 들여다볼 때 반드시 전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 하나님은 히스기야와 함께하시는 은혜를 베푸셨는가'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열왕기하 18:9‑12) '히스기야 왕 제사년 곧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칠년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 왕의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이 말씀은 앞선 열왕기하 17장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미 종결된 멸망 이야기를 히스기야에 대한 칭찬이 있은 다음에 언급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은혜로 하나님께 연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던 히스기야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아서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된 이스라엘을 대조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 때에 하나님은 히스기야와 함께 하심으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게 하셔서 형통하게 하시는 삶을 대조해 보이시는 것입니다.

‑>'무엇이 살 길인지, 어디로 가는 것이 살 길인지, 하나님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원리여야 산다, 하나님이 왕이 되셔야 평안하다' 이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최적의 타이밍에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이스라엘이 볼 만한 기준으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다른 왕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으며 히스기야와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하나님만이 참된 왕이심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이 다르신 것입니다.

‑>이것이 히스기야의 생애를 통하여 주목해야 하는 바입니다.

 

‑>히스기야에 대한 평가 이후에 소개되는 그의 행적을 유심히 보시기를 바랍니다.

‑>(열왕기하 18:7)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앗수르가 아닌 하나님만을 의지했다는 의미일까요?

‑>그에 대한 설명입니다.

‑>(열왕기하 18:13‑16) 앗수르 왕이 조공의 불량을 정하고 히스기야는 할당된 조공양을 채우기 위해서 아하스와 똑같이 성전과 왕궁 곳간을 털어다가 바치고 그것으로 부족했는지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서 바쳤습니다.

‑>과연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맞습니까, 정말 그런 평가를 받을 만한 통치를 했나요, 그런 모습을 우리에게 보이고 있습니까?

‑>이 때에만 그랬을 것이고 그래도 결국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하나님만 의지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앗수르 왕 사이에서 고민한 것이 아니라 세계 정세 속에서 앗수르를 의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 왕이 보였던 모습과 동일한 모습, 어떻게 보면 더 처절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 이어지는 17절 이하에서 앗수르 왕의 장군들이 대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 그들 중 하나인 랍사게가 히스기야의 신하들에게 앗수르 왕의 말을 전하며 조롱하는 내용이 길게 이어집니다.

‑>이 내용은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를 향한 조롱이기도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지적의 대상이 히스기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앗수르 왕이 히스기야에게 랍사게를 통해 질문합니다.

‑>(열왕기하 18:19)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너는 누구를 믿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앗수르 왕이 히스기야의 대답을 대신합니다. 

‑>(열왕기하 18:21,24)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는도다/ ~애굽을 의뢰하고'

‑>애굽을 의뢰하려 한다는 말이 반복이 됩니다.

‑>히스기야도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서 누구를 의지할까 번뇌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열왕기하 20장까지 계속되는 히스기야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로 하여금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는지, 그 결과를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지를 묵상해 보시기를 바라며 그 자리에 하나님만 남아계시기를 축복합니다.

권화영
댓글 0
댓글 달기 Textarea 사용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이름 암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61 24-11.19 새벽말씀 권화영 2024.11.19 45
560 24-11.15 새벽말씀 권화영 2024.11.15 34
559 24-11.14 새벽말씀 권화영 2024.11.14 33
558 24-11.13 새벽말씀 권화영 2024.11.13 28
557 24-11.12 새벽말씀 권화영 2024.11.13 31
556 24-11.8 새벽말씀 권화영 2024.11.08 26
555 24-11.7 새벽말씀 권화영 2024.11.07 42
554 24-11.6 새벽말씀 권화영 2024.11.06 26
553 24-11.1 새벽말씀 권화영 2024.11.01 33
552 24-10.31 새벽말씀 권화영 2024.10.31 30
551 24-10.30 새벽말씀 권화영 2024.10.31 24
550 24-10.29 새벽말씀 권화영 2024.10.30 30
24-10.25 새벽말씀 권화영 2024.10.25 37
548 24-10.24 새벽말씀 권화영 2024.10.24 18
547 24-10.23 새벽말씀 권화영 2024.10.23 30
546 24-10.22 새벽말씀 권화영 2024.10.22 30
545 24-10.18 새벽말씀 권화영 2024.10.18 31
544 24-10.16 새벽말씀 권화영 2024.10.16 33
543 24-10.15 새벽말씀 권화영 2024.10.16 27
542 24-10.11 새벽말씀 권화영 2024.10.11 41
Prev 1 2 3 4 5 6 7 8 9 10 ... 32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