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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4-10.22 새벽말씀

권화영2024.10.22 08:5410.22조회 수 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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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 (열왕기하 16장)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열왕기하 16장은 남유다의 왕 아하스의 통치에 관한 내용이며 그간의 유다 왕들과 다른 새로운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보통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거나, 정직히 행하지 않았다는 정도의 평가를 받는데 아하스에 대한 평가입니다.

‑>(열왕기하 16:3‑4)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북이스라엘 왕들에게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행하였다'는 평가는 일반적이지만 남유다 왕에게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였다'는 평가는 처음 등장합니다.

‑>이 평가는 이후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였다'고 평가되는 유다의 14대 왕 므낫세에게서만 반복이 될 만큼 유다 왕들만 놓고 보았을 때 흔치 않은 것입니다.

‑>두 사람이 유독 악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은 남유다의 왕들도 존재적으로 북이스라엘의 왕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본입니다.

‑>하나님께는 다윗의 혈통, 다윗 왕조의 정통성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맺으신 언약대로 유다를 보존하시고 왕위가 이어지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는 다윗의 후손들이 신실하고 정직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분이시므로 남유다를 위해서만 일하시지 않고 북이스라엘을 위해서도 일하십니다.

‑>왕들이 끊임없이 자초한 결과와 하나님이 일하신 결과를 대조해 보이심으로써 하나님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원리여야 산다, 하나님이 왕이 되셔야 평안하다는 것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이 아닌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을 택한 아하스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어떠한 결과를 맞이하는지를 열왕기하 16장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아닌 앗수르 왕을 의지합니다. 

‑>(열왕기하 16:5) '이 때에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남유다의 오랜 숙적이었던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세력이 많이 약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대신에 열왕기하 15장부터 민수기 이후로 전혀 언급이 없던 앗수르가 신흥강대국으로 재등장합니다.

‑>북이스라엘 므나헴 때 앗수르에게 굴복한 목적입니다.

‑>(열왕기하 15:19) '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은 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그로 자기를 도와주게 함으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

‑>앗수르 왕을 의지해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했으며 그렇게 자기 손에 넣은 나라를 아들에게 물려주었으나 또다시 반역이 일어났고 반역해서 왕이 된 베가 때에는 앗수르에게 이스라엘의 많은 땅을 점령당하고 심지어 백성까지 빼앗기는 처참한 결과가 호세아 직전 베가 왕 때 벌어집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16장에 와서 유다와 앗수르 관계가 처음 소개됩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를 의지하다가 망할 지경이 되었지만 죄인은 배우지 못하고 늘 자기는 다르다고 생각하므로 죄인의 행동은 바뀌지 않고 북이든 남이든 상관이 없이 동일한 양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열왕기하 16:7)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라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앗수르 왕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했기에 북이스라엘 왕은 앗수르 왕에게 그저 도와달라 요청하는 정도였지만 남유다 왕은 앗수르 왕의 신복을 자처하고 심지어 왕의 아들로 삼아달라고 구걸하고 있습니다.

‑>세력이 약화된 아람과 이스라엘이었지만 그조차도 유다에게는 위협이 되었기에 구원의 손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하스가 행하는 조치입니다.

‑>(열왕기하 16:8)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아스로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역사는 반복되며 그 덕으로 아하스는 앗수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납니다.

‑>그러나 앗수르의 보호를 받기로 한 결과가 어떠할지 미리 예상해 본다면 몇 대도 못 가서 앗수르는 다시 쳐들어올 것이고 앗수르 보다 더한 위협이 유다 앞에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아하스는 성전을 다메섹 신전과 같이 변경합니다.

‑>아하스가 앗수르 왕과 성전 곳간의 은금을 가지고 화친을 맺고난 후 행동입니다.

‑>(열왕기하 16:10‑11)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앞서 앗수르 왕과 화친을 맺기 위한 방편으로 성전 곳간의 은금을 갖다 바쳤던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아하스 왕 뿐만 아니라 남유다 왕들에게 성전은 아무런 기준이 되지 못하고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습니다.

‑>열왕기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성전은 왕위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종교적 기능 외에 다른 역할을 하는 바가 없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 많은 기능에 대하여 말했지만 솔로몬 왕 때부터 성전은 솔로몬이 기도한 대로 기능을 하는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성전을 향해서 기도하지 않고 성전에 나와 하나님의 기준으로 심판받지 않으며 나라의 위기가 닥쳤을 때 유다의 왕들과 백성은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성전이 남유다에서 했던 기능은 딱 한 가지 '곳간' 역할 뿐입니다.

‑>은금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 뿐이니 위기가 닥치면 갖다 바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수많은 이방의 신들을 수입해 오면서 성전은 이미 왕정 초기부터 신전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아하스 때에 이르러서는 우상의 신전과 다를 바 없는 장소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전에 사는 제사장이 제대로 된 역할을 했을 리가 만무합니다. 

‑>요아스 때에 세력을 형성하고 왕족에 버금가는 엘리트 계층을 이루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전 제단의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변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만료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왕이 명령한 대로 순순히 성전의 제단을 없애버리고 다메섹 신전과 같은 큰 제단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을 행합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이 아니라 아하스의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아하스의 행동입니다.

‑>(열왕기하 16:18)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세웠더라'

‑>새번역 성경은 '아시리아 왕에게 경의를 표하려고'라고 번역합니다.

‑>유다의 왕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앗수르 왕의 백성이 되기로 한 것입니다.

‑>성전이 아무런 기준이 되지 못하고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는 것은 남유다도 하나님과 상관없이 행하였다는 것이며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왕들이 찾지 않아도, 유다 백성이 성전을 향해서 기도하지 않아도 정작 성전의 기능을 홀로 담당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열왕기서를 보면서 하나님만 하나님 다우시다, 왕들 아무것도 안하고 전혀 왕답지 못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중에 죄의 결과로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지게 되었을 때 유다 백성을 보존하시고 성전을 재건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감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원리여야 한다, 하나님이 왕이 되셔야 평안하다'는 것을 가르쳐내시기 위해서 기꺼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를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배우고 본받아 진정 성전다운 삶을 누리심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죄의 결과만 가득할 수밖에 없는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기준을 보이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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