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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4-10.11 새벽말씀

권화영2024.10.11 09:4710.11조회 수 2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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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 (열왕기하 12장) '요아스가 사십 년간 통치하니라'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남유다의 8대 왕 요아스가 칠세에 왕으로 직위하여 무려 사십 년을 통치한 그에 대한 평가입니다.

‑>누구를 칭찬하고자 하는 것인지, 책망하고자 하는 것인지, 칭찬과 책망을 동시에 하는 것인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인지를 파악하며 보시기를 바랍니다.

‑>(열왕기하 12:2‑3)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요아스를 칭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요아스가 그렇게 행할 수 있도록 교훈한 제사장 여호야다를 칭찬하는 것입니까?

‑>만약 칭찬하는 것이라면 둘 중 누구의 공이 큰 것입니까?

‑>둘 다 공이 있는데 다만 한 가지 산당들을 제거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누구의 과가 큰 것입니까?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했다고 하니 백성의 책임자인 왕이 잘못한 것입니까? 아니면 성전의 책임자인 제사장이 잘못한 것입니까?

 

‑>우리는 그저 '정직히 행하였다'는 표현에 마음을 놓고 산당들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로인해 요아스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했는지를 보면서 '역시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할 만한 왕이구나, 다만 말년에 가서 솔로몬처럼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해서 실패하고 말았구나' 정도로 그의 행적을 평가하고, 우리도 요아스가 다윗의 후손답게 성전을 귀하게 여겨서 파손된 곳을 수리하고자 한 그 신앙의 열정을 본받자, 그러나 요아스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기 위하여 세상과 타협하는 신앙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등의 '본받자, 반면교사 삼자'는 식의 교훈으로 요아스의 통치내용을 결론 내립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훈에서 하나님은 어떤 역할을 하신 것일까요?

‑>결국 이러한 교훈에서는 인간의 신앙적 행동만이 강조될 뿐 하나님의 역할은 그것을 판단하셔서 그에 상응하는 상을 내리시거나 벌을 내리시는 평가자 노릇만 하실 뿐입니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에 큰 공허함을 느끼며 무언가 핵심이 빠져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문제는 '신앙이 있느냐 없느냐, 어떠한 신앙적 행동을 하느냐, 얼마나 신실하게 하느냐'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문제는 '죄'입니다.

‑>'죄'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이고 절망적인 문제인지를 성경을 통해서 인식해야 합니다.

‑>죄, 인간이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은 어떤 신앙의 여부를 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한 사람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기준 삼지 못하며 하나님의 원리를 따르지 못하고 죄의 원리로만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런 죄인을 위하여 하나님이 일하신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의 원리를 가르치신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없는 그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허공을 치는 이야기, 언젠가는 우리를 나가떨어지게 만들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큰 그림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나서 죄인 된 인간을 다시 하나님 안으로, 하나님 나라로, 영원한 생명으로 회복하시는 하나님 그분의 이야기입니다.

‑>그저 하나님은 저기 어딘가 평가자, 심판자로 계시고 인간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사망이라는 운명이 결정되어 있는 죄인들을 회복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일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뜻하시고 이끄시며 이루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었던 죄인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구속사입니다.

 

‑>그러므로 열왕기서를 보면서 '이 왕은 잘했다 저 왕은 못했다'가 아니라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이 왕 된 결과로 모두가 망해버릴 세상에서 세상과 같은 길을 가겠다고 선택한 이스라엘이 끝내 자초하게 될 결과가 무엇인지,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고 무엇을 가르치시며 무엇을 이루어내시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보기 위해서 한 문장, 한 장면으로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성경의 흐름 속에서 어떤 대조가 있는지, 어떤 대상들이 대조가 되는지, 어떤 배경과 맥락 위에서 이런 이야기가 들려지는지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서 강조점을 분별해야 합니다.

 

‑>열왕기하 12장을 세 가지로 나눠서 보겠습니다.

‑>첫째, 요아스가 통치하는 시대에 백성은 어떤 형편이었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열왕기하 12:3)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양하였더라'

‑>이 말씀은 '조금 아쉽다' 정도로 지나칠 이야기가 아니라 왕과 제사장의 관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이 말씀이 백성이 여전히 우상숭배했다는 백성을 책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백성의 잘못이 아니라 왕이 산당들을 제거하지 않았고 여호와의 성전이 백성이 언제든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되게 하지 못한 제사장에게 책임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요아스를 앞세운 반역을 도모하고 그 일을 성공했을 때 했던 일은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을 수직하게 한 것, 경비병들을 세워 지키게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곳, 그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곳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때의 문제가 아니라 이전부터 성전은 백성을 위한 곳, 백성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왕과 제사장의 소유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은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양할 수밖에 없었으며 '여전히'라는 표현은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표현입니다.

‑>성전이 백성을 위한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신약 성경에 와서도 백성과 소외된 이들이 성전 문 어귀에 주저앉아서 구걸하고 돈과 자격이 있어야 들어가는 곳이 되어버립니다.

‑>백성이 이러한 형편에 있었습니다.

 

‑>두 번째,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양할 때 왕과 제사장은 무슨 일을 하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열왕기하 11장의 맥락 위에서 열왕기하 12장의 미묘한 갈등 관계를 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요아스 시대에 정치적 실세는 일곱 살 어린 요아스가 아니라 제사장 여호야다였으므로 제사장들의 대단한 권세를 볼 수 있으며 이 후에 요아스가 장성하여 왕으로서의 실권을 발휘하게 되었을 때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국면 전환의 순간을 열왕기하 12장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12:4‑6)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성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모든 은 곧 사람이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여 성전의 어느 곳이든지 파손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으나/ 요아스 왕 제이십삼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요아스가 정치적 실세인 제사장 세력에 정치적 독립을 선언했으나 제사장들이 왕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왕의 말을 이행하지 않을 정도의 권세가 제사장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요아스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12:7) '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제부터는 너희가 아는 사람에게서 은을 받지 말고 그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위하여 드리게 하라'

‑>이 말로 보아 제사장들이 성전의 은을 착복하고 유용했을 가능성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당연히 반발합니다.

‑>죄인은 손해 보기를 가장 싫어합니다.

‑>(열왕기하 12:8)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성전 파손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동의하니라'

‑>이 모습이 종교인들의 최초 단체 파업 현장입니다. 

‑>얼마나 권세가 있었기에 이런 파업이 가능했을까요?

‑>열왕기서의 배경과 맥락 위에서 성전은 그저 은혜롭고 거룩한 곳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성전이 부와 권력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는 곳, 왕궁이나 세상과 하나도 다른 것이 없는 곳이 되어버린 현장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성경은 왕과 제사장들을 성전의 일꾼들과 대조합니다.

‑>성경은 요아스와 여호야다가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작 성전을 관리하고 성전이 백성을 위한 곳이 되게 해야 할 왕과 제사장들이 권력 다툼이나 하고 있을 때 자기가 맡은 일을 성실히 하는 이들을 소개합니다.

‑>(열왕기하 12:14‑) '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으며/ 또 그 은을 받아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왕과 제사장의 관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열왕기하 12장의 강조점은 일꾼들을 본받으라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으며 이들은 일꾼이기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목적은 대조입니다.

‑>(열왕기하 12:16)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성전에 들이지 아니하고 제사장에게 돌렸더라'

‑>받는 것이 있고 성전을 중요하다 하면서도 성전의 파손된 곳은 고치지 않으며 왕의 말도 듣지 않은 제사장과 성실히 일을 하는 일꾼들을 대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아스 왕의 실체까지 대조의 자리로 끌어옵니다.

‑>마치 성전을 굉장히 귀하게 여기는 것 같았던 요아스 왕을 보게 합니다.

‑>(열왕기하 12:17‑18) '그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하므로/ 유다의 왕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을 떠나갔더라'

‑>이러한 요아스 왕의 조치가 의미하는 바는 애초에 성전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요아스에게 성전은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수리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 왕의 권위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위태롭게 되자 가장 먼저 버리는 것이 성전입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왕들 또한 가장 먼저 내다버리는 것이 성전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성전을 세웠고 성전을 통해서 이러저러한 말을 했지만 왕들에게 성전은 자기를 위한 것이기에 가장 먼저 성전을 버립니다.

‑>백성은 성전 덕을 못 보았지만 왕은 성전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그러나 요아스는 얼마 가지 못해서 신복들의 반역으로 쳐죽임을 당합니다.

‑>이것이 열왕기하 12장의 내용입니다.

 

‑>열왕기하 12장의 첫 부분에서 고작 일곱살에 왕이 된 요아스가 무려 사십 년간 통치했다,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요아스가 잘났기 때문이거나 여호야다가 잘 가르쳤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들의 실상은 열왕기하 12장의 시작과 마무리부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결국 성경은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의 암투와 그들이 자초한 혼란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일하셨기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기에, 하나님이 없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셨기에 가능한 역사를 하나님이 제시하신 길로서 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왕들이 주도하는 길 위에 하나님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그 길이 아니라고 가르치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실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보아야만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분이 일하셔서 이런 결과가 가능했다는 것을 알아가야 우리는 세상과 우리의 삶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의지하여 능히 죄의 현실에 맞서 성도의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리고 오늘의 삶에 하나님이 계심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우리가 걸어갈 삶의 길 위에서도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세상의 통치자요 왕 되심을 나타내 보이시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고 경험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넉넉하고 여유로운 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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