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 (열왕기하 11:1‑3) '모두 멸절하였으나'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열왕기하 11장의 배경입니다.
‑>남유다의 네 번째 왕 여호사밧 때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북이스라엘 아합의 딸 아달랴가 왕들의 전략적인 판단에 의해서 혼인 관계를 맺습니다.
‑>화친을 이룬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각각 아달랴의 아들 아하시야와 아합의 둘째 아들 요람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함께 아람 왕 하사엘의 침공에 맞서 싸웁니다.
‑>그런데 연합군을 결성하여 전쟁을 치르던 중에 북이스라엘의 군대 장관 예후의 반란이 일어나서 큰 혼란을 맞이하게 됩니다.
‑>전쟁 중 부상으로 몸져 누웠던 북이스라엘 왕 요람과 병문안하려고 왔던 남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예후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두 나라의 왕이 한 날에 시해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고, 이때 왕들만 죽은 것이 아니라 각 왕과 관련된 자들도 수없이 살해를 당합니다.
‑>열왕기하 10장에서 아합의 아들 칠십 명, 남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 사십이 명이 죽습니다.
‑>이 반란에 의한 참상의 상황이 열왕기하 11장의 배경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열왕기하 11장을 통해서 세 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죄는 또 다른 죄를 낳습니다.
‑>하나님이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왕으로 삼으신 것은 맞지만, 예후가 기름을 부음 받은 후에 세력을 형성하고 반란을 주도함으로 왕위를 차지하고 수백 명의 정적을 제거함으로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모든 행동과 조치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죄입니다.
‑>이러한 죄가 낳게 된 결과입니다.
‑>(열왕기하 11:1)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그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였으나'
‑>이 결과를 보고 그저 아달랴가 아합의 딸답게 악한 행동을 했다고 단정지으면 안 됩니다.
‑>열왕기서에 등장하는 그 어떤 사람도 죄인이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다는 점에서 예외인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며 모두가 동일한 존재로 등장합니다.
‑>아달랴도 죄인이며 죄인이기에 할 수 있는 행동, 죄인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남유다의 대비 아달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예후의 손에 죽은 남유다 왕 아하시야는 아들이고 북이스라엘 왕 요람 역시 남매지간이라 볼 수 있으며 아합의 아들 칠십 명은 친정의 형제들이며 모두 잃어버린 것이고 아하시야의 형제들 사십이 명이 모두 아달랴의 친자식은 아니겠지만 왕의 어머니인 대비의 신분으로 볼 때는 아들들을 한꺼번에 잃은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달랴는 안위를 지키고 권력을 얻을 수 있기에 자손들을 전부 멸절해버리는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달랴가 유독 악해서 벌이는 일이 아니라 성경의 역사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자기 안위와 권력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자식, 손자는 소용없습니다.
‑>또한 이어지는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 수호 작전도 거룩하게 포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자기가 살고 안위를 지키고 권력을 얻기 위해서 죄인들이 합심하여 벌이는 일들일 뿐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판단하는 두 가지 기준입니다.
‑>첫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하나님의 일하심에 따른 변화인지를 봅니다.
‑>모두 죄인이라는 관점에서 그 사람이 행동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먼저 있었는가, 하나님의 일하심에 따른 변화를 보이는가를 먼저 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지시하신 행동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두 가지 기준에 따르면 열왕기서에 등장하는 사람들, 특히 왕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일하심에 따른 변화가 아닌 자기가 왕 된 죄인, 하나님을 모르는 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로서 행동을 합니다.
‑>열왕기서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왕 되어 있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판단하고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다만 다윗을 비롯한 소수의 왕들이 일반적인 모습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죄인들이 주도하는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길을 제시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먼저 일하신 결과이며 대부분의 왕들과 다른 어떤 선함이나 특별한 영성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이들 가운데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행하는 사람들은 엘리야, 엘리사와 같은 선지자들과 선지자의 말을 듣고 그 말대로 행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 역시 특별히 선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있도록, 따를 만하도록 하나님이 먼저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제시하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면 모두 자기 길, 망하는 길로 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심으로, 하나님이 먼저 일하심으로 제시해 주시는 것이 왕정시대입니다.
‑>열왕기서를 통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을 왕 삼은 이스라엘,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가 왕 된 모든 죄인들의 결국을 보아야 합니다.
‑>죄의 결과를 보는 것이 열왕기서를 기록한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신 결과가 아니라 죄인들이 자초하는 결과를 보는 것입니다.
‑>아합의 온 집이 멸망을 당하는 것, 유다가 여호와가 아닌 아합의 왕조를 의지하려다가 박살나버리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죄의 결과입니다.
‑>심판이라면 아달랴의 딸이자 아합의 손녀인 여호세바도 죽었어야 합니다.
‑>반란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북이스라엘에서 일어난 반란이 남유다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끊임없이 죄인들이 자초하는 결과를 확인하게 됩니다.
‑>죄의 결과 가운데서 살아남은 여호세바도 자기 살기 위한 길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열왕기하 11:2)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게 한지라'
‑>여호세바의 행동을 거룩하게 포장할 필요 없으며 자신이 살아야 하므로 당연한 대처를 하는 것입니다.
‑>여호세바의 당연한 대처에 따른 결과입니다.
‑>(열왕기하 11:3) '요아스가 그와 함께 여호와의 성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다윗 왕의 최후의 자손이 지금 여호와의 성전에 있으나 열왕기서에서 여호와의 성전이 등장한다고 거룩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에서는 왕궁에서 벌어지는 일과 다른 일들이 벌어질까요, 아니면 왕궁과 별반 다르지 않은 죄의 역사가 성전에서도 반복될까요?
‑>하나님의 일하심에 따른 변화인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행동인지의 기준을 가지고 열왕기하 11장 4절 이하의 내용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전이라는 장소, 제사장이라는 신분, 율법이라는 수단이 등장한다고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한 행동을 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행동을 한다고 판단하지 않고 이런 것들을 모두 제하고 앞선 쿠데타의 주인공들과 다르게 행하는가, 왕궁과 성전이 다른가, 다른 일들이 벌어지는가,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가, 다른 원리로 이들이 행동을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눈으로 세상을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죄의 세상 한복판에서 끊임없이 하나님 없이 살려고 하는 모든 죄인들을 보게 되며 그 가운데 함께 서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세상에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고 보여주고 들려줍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사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죄인들이 벌이는 수없이 많은 죄의 결과, 수없이 많은 실패,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모든 판단과 행동들,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은 선으로 이끌어가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 만나는 것입니다.
*누구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특별한 헌신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통해서 세상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알리시기를 뜻하신 하나님을 오늘도 성경 속에서 주어진 하루의 삶 가운데서 만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열왕기하 11장의 말씀을 한번 더 묵상해 보시고 목요일에 두 번째와 세 번째 내용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