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 (열왕기하 6:1‑14) '하나님의 사람이'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열왕기하는 이스라엘의 아하시야 왕이 병에 걸렸으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묻지 않고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자기의 병이 낫겠는지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아하시야는 결국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이것이 아하시야를 비롯한 모든 왕, 즉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동일하게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결말입니다.
‑>아하시야에 이어 왕이 된 여호람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점에서 선대 왕들과 다르지 않은 죄인이기에 그가 자초할 결과 또한 자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람 시대에 엘리사를 세우셔서 은혜 베푸시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리시는 것,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리셨듯이 엘리사를 통해서도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우게 하셔서 하나님을 아는 자가 어떻게 다른지를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자들에게 보이시는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열왕기하를 보면서 단순히 인간의 행동 혹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강조하는 해석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몰라서 자기만 위하여 행할 뿐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죄인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다루시고 대하시는지를 보면서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다.
‑>열왕기하 1장에서 에그론의 신을 찾아 물으러 갈 때 하나님이 아하시야에게 하셨던 말씀 '너에게 하나님이 없어서 바알세붑을 찾아가느냐?'를 열왕기하를 묵상할 때마다 꼭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알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그 일하심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서 이스라엘 왕이 이스라엘을 배반한 모압을 제압하기 위해서 유다 그리고 에돔과 동맹을 맺고 전쟁에 나섰다가 모압을 만나기도 전에 에돔 광야길에서 물이 없어 군사와 가축이 다 죽게 된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그들에게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고 했고, 다른 방법이 없었던 이스라엘은 밤새 개천을 팠습니다.
‑>다음 날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고 성경이 이야기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엘리사의 영적 능력이거나 말도 안 되는 말씀을 따른 이스라엘의 순종 때문이 아닌 하나님이 일하신 것입니다.
‑>그 땅에 물이 가득하게 된 것은 골짜기에 개천을 판 것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골짜기에 개천을 파도록 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알리는 것,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계시의 장치입니다.
‑>물을 얻은 직후에 모압과의 전쟁이 이어집니다.
‑>전쟁의 결과는 이스라엘이 우세를 점하는 듯 보였지만 끝은 이스라엘이 이긴 것인지 모압이 버틴 것인지 애매하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전쟁에서의 승패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안과 분란이 끝이 없고 평안과 화평이 없는 이유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하나님만이 아시기에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리시기 위한 과정을 진행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오늘 본문도 살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열왕기하 6:1‑8)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와 함께 거주하는 것이 좁아서 더 넓은 처소를 짓기 위해서 엘리사와 함께 나무를 베러 가는데 한 사람이 나무를 베다가 그만 쇠도끼를 물에 빠뜨리고 맙니다. 그때 그 사람이 탄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요청이 담겨 있는 것 같이 말합니다. '이것은 빌려온 것이니이다' 라고 외치니 엘리사는 쇠도끼가 빠진 곳에 나뭇가지를 던져서 그것이 떠오르게 하고 건지게 해주는 일을 행합니다.
‑>짧고 간단한 이 사건의 교훈은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구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일까요?
‑>이 사건도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고 한 것과 같이 하나님을 알리는 장치입니다.
‑>뒤이어 나오는 내용은 쇠도끼가 물에 빠진 일에 비하면 훨씬 중대해 보이는 문제이며 핵심은 하나님을 아는 것임을 고려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입니다.
‑>이것을 고려하지 않고 뒤이어지는 상황을 보면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기 위해서 진을 치다가 엘리사 때문에 계획대로 되지 않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서 엘리사가 있는 성읍을 에워싸는 상황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닥뜨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물에 빠진 쇠도끼도 금세 떠오르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계실 뿐만 아니라 엘리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고려하면서 보면 위기처럼 보이는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아는 자가 얼마나 평안할 수 있는지, 또 반대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얼마나 미련하고 호들갑을 떠는지를 명확하게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공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여기저기에 진을 치지만 그때마다 엘리사가 아람 왕이 진을 치니 경계하라는 말을 이스라엘 왕에게 해주었고 그 말을 듣고 계속 방비하여 위기를 벗어나는 상황인 것입니다.
‑>앞선 5장에서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나병을 고침받았던 사건을 통해서 아람 왕은 하나님을 배우지 못해서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려 하는 반면에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적어도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을 배워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말을 듣고 있는 변화가 보여집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배우지 못한 아람 왕의 모습입니다.
‑>(열왕기하 6:11‑12)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
‑>열왕기하를 통해서 확인하는 것은 실제는 이렇지 않은데 이렇다고 생각해서 불안해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으을 모르는 자는 마음이 늘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가 아닌데 자기가 문제를 만들고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닌데 그런 상황이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혼자 불안에 떨게 됩니다.
‑>그리고 안팎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적을 규정하여 경계하고 공격합니다.
‑>아람 왕의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엘리사가 하나님의 선지자여서 내밀하게 이야기한 것까지 미리 알고 왕에게 보고하니 그렇게 방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아람 사람의 나병뿐만 아니라 아람의 모든 지략도 능히 대비할 수 있는 자인 줄 알았다면 아람 왕은 더이상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지 않거나 더 지혜로운 방법을 모색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람 왕이 엘리사에 대한 조치를 우습게 묘사합니다.
‑>(열왕기하 6:13‑14)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앞서 절체절명의 위기처럼 보였던 상황입니다.
‑>아람 왕은 엘리사 하나를 잡겠다고 많은 병력을 동원합니다.
‑>우리라면 엘리사의 사환처럼 '큰일 났다, 다 죽게 생겼다'고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나 성경은 이 장면을 위기로 그리지 않습니다.
‑>아람 왕의 신복이 말한 대로 엘리사가 아람 왕의 침실에서 한 말까지도 미리 아는 자라면 자신을 잡으려고 하는 움직임 따위야 쉽게 포착하고 대처할 수 있으니 위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는 이 세상의 모습, 어떠한 일이 일어나기만 하면 호들갑을 떠는 세상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보라는 것이며 어쩌면 우리의 모습도 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가 엘리사 한 사람을 에워싼 상황은 하나님이 엘리사와 함께하시기에 위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조차도 하나님을 알리시는 목적으로 선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시고 우리를 위해서도 동일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기를 바라고 하나님을 아는 평안이 우리의 삶 속에도 실제적으로 누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