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 (열왕기하 4:1‑7, 38‑44) '부르짖어 이르되, 외쳐 이르되'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열왕기하 4장은 엘리야가 갖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복음서의 예수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
‑>복음서를 볼 때 잘못된 접근 방식은 예수님이 행하신 다양한 이적의 근거를 사람에게서 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병 환자나 바디메오는 예수님이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간절히 구했기에 고쳐주셨다, 중풍병자나 백부장의 종이나 수로보니게 여자의 딸은 중풍병자를 지붕에서 침상채 달아내린 사람들의 믿음, 말씀만으로 낫게 하실 수 있다는 백부장의 믿음,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는다는 수로보니게의 여자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침을 받으려면 본인이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타인이 믿어주어도 되는 것입니까?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이나 죽은 나사로는 죽었으니 본인들이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죽기 전에야 야이로나 누이들이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지만 죽고 나서는 이들 중 누구도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와 예수님이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을 보이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죽었으니 믿음을 보일 수가 없는 것인데 왜 살려주셨을까요?
‑>또 귀신 들린 자들은 귀신이 들려 있으니 본인이 나올 수는 없는데도 어떻게 살리셨을까요?
‑>중풍병자처럼 사람들이 데리고 와주는 믿음을 보였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거라사 광인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그는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무덤 사이에 홀로 거하며 밤낮 소리를 지르고 돌로 자기 몸을 해치고 있었을 뿐인데 예수님이 그를 만나시고 온전하게 고쳐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드린 한 아이의 작은 헌신을 보시고 큰 이적을 행하셨다고 하지만 실제 아이가 예수님께 드렸다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안드레가 아이 하나 데려다 세워놓고 이것밖에 없으니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없다고 하는 장면에서 아이가 잠깐 등장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으로 남자만 오천천 명을 먹이십니다.
‑>혹시 이 어마어마한 숫자가 예수님께 믿음을 보였기에 오병이어로 오천천 명이 넘는 일만 명이 넘는 사람이 먹는 이적의 은혜를 받은 것일까요?
‑>우리가 어느 한 본문만 가지고 이 사람은 이 믿음 때문에 고쳐주셨다고 말하기에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 다른 장면들도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적 가운데서 사람의 믿음, 사람의 순종, 사람의 헌신 등을 찾는 접근 방식은 성경의 강조점을 완전히 벗어나게 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이적을 행하신 유일한 근거는 '은혜'입니다.
‑>'먼저 찾아왔다, 엎드렸다, 겸손하게 구했다, 강한 믿음을 보였다'는 것처럼 사람에게 이유가 있지 않고 '은혜'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다 고치셨다' 입니다.
‑>그 사람만, 그 믿음 보시고 고치신 것이 아니라 찾아오고 만나시는 모든 무리를 다 고치셨다는 표현들이 복음서에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해야 할 포인트는 예수님이 은혜로 인간이 문제라고 여기는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는데 과연 문제가 해결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문제라고 여기는 것들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오셨다면 아마 지금도 세상에 계셔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어제저녁 늦게까지 사역하시고 새벽 기도도 못 나오셨을 것입니다.
‑>열왕기하 4장을 볼 때도 우리가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강조점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빚을 갚지 못해 자식들을 종으로 빼앗길 위기에 처한 여인이 엘리사를 찾아서 간구하고 엘리사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했을 때 문제가 해결되었으므로 우리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자, 여자를 보라 그릇을 더 준비해 오지 못한 것이 얼마나 아쉬웠겠는가, 하나님은 믿음의 크기만큼 복을 주신다'는 식의 엉뚱한 이야기가 됩니다.
‑>또한 우리는 열왕기하 4장 8절 이하에 자식이 없던 수넴 여인이 아들을 낳게 되는 것과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여인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 이유를 찾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보고 세심한 배려를 했다, 아들이 죽자마자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고 그를 끝까지 신뢰했다'는 이유를 찾아서 아들도 갖게 해주시고, 죽은 아들도 살려주신 것이 여인의 행동 때문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인과관계입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4장 8절이하의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장면과 열왕기상 17장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방법이 비슷하므로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릴 때는 세 번 엎드렸는데 엘리사는 두 번만 엎드렸으니 엘리사가 갑절의 능력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구한 대로 주신다, 우리도 무엇을 구하든 갑절을 구하자'는 이야기들을 하기도 합니다.
‑>과연 문제 해결을 위한 믿음, 순종, 헌신이 열왕기하 4장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신 메시지일까요?
‑>그렇다면 열왕기하 4장이 이렇게 애매하게 마무리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추가로 소개되는 두 가지 이적의 내용입니다.
‑>(열왕기하 4:38‑41) 첫 번째 이적은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렀을 때 흉년이 든 상황이며 엘리사를 따랐던 엘리사의 제자들 중에서 사환을 시켜 이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게 합니다.
‑>어떠한 국을 끓이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 일을 하는 사람 중에 하나가 들에 나가서 무엇인지도 모를 푸성귀를 따와서 썰어넣었는데 그것이 먹지 못할 성분, 본문의 표현상으로는 죽음의 독이 있음을 알고 소리치는 것을 듣고 가루를 뿌렸을 때 독이 든 국이 흉년에도 충분히 먹을 만한 것이 되었습니다.
‑>(열왕기하 4:42‑44) 두 번째 이적은 앞선 이적과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가지고 와서 엘리사에게 줍니다.
‑>엘리사가 사원에게 그것들을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하니 백 명을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라고 대답할 때에 엘리사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게 되었습니다.
‑>앞선 두 사건들에 비하면 극적이지도 않고 그렇게 할 만한 행동을 찾을 수 없기에 두 가지의 이적의 본문을 믿음과 순종, 헌신과 충성의 예로 드는 경우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열왕기하 4장의 모든 사건은 인간의 행위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사람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인간의 행위가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따라 일하십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 대하여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의지, 신뢰하며 나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