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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4-8.23 새벽말씀

권화영2024.08.23 08:3508.23조회 수 2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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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 (열왕기하 2:15‑25)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려지는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불수레와 불말들까지 나타난 엄청난 광경을 엘리사가 지켜보았고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나이까'라고 탄식하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주어온 엘리야의 겉옷을 가지고 그에게서 본 것처럼 요단물을 쳤을 뿐인데 물이 갈라지고 요단을 건너는 기이한 일을 또 한 번 경험했습니다.

‑>엘리사에게 나타났을 한 가지 확실한 변화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능력이 그가 행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것, 능력을 행하신 이도, 이를 이루신 이도 모두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능하게 하신 변화입니다.

 

‑>이러한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와서 보이는 반응입니다.

‑>(열왕기하 2:15‑16)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감한 사람 오십 명이 있으니 청하건데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데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그들은 엘리사를 경배하는 행동을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은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보일 수밖에 없는 반응입니다.

‑>엘리사와 선지자의 제자들의 대화는 앞선 엘리야와 하나님을 알기 전 엘리사의 대화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의 제자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경험한 적도 없는 광경이었기에 그들의 인식 범위 내에서 최고치로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은 엘리야가 섬기는 신 여호와가 그를 들어다가 어디로 옮겨놓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의 제자들'은 '여호와의 선지자의 제자들'이 아니라 당시에 있었던 독특한 무리이며 여호와의 선지자 말고도 많은 선지자들, 예언자들이 활동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이 자신이 끼어들거나 붙잡고 늘어질 수 없도록 불수레와 불말들로 막으시고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가신 것, 엘리야가 사라지자 다 끝난 줄 알고 그의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물을 쳐댔을 뿐인데 요단이 갈라져 건널 수 있게 하신 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으므로 보내지 말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나 선지자의 제자들 무리는 뜻을 조금도 굽히지 않습니다.

‑>앞서 엘리사가 엘리야에 대하여 보였던 반응과 같습니다.

‑>(열왕기하 2:17) '무리가 그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그들이 오십 명을 보냈더니 사흘 동안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무려 삼일 동안 엘리야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은 못 찾고 돌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엘리사가 말합니다.

‑>(열왕기하 2:18)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하나님을 아는 자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극복될 수 없는 간격을 보게 됩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을 아는 자로 변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열왕기하 2:19) 여리고 성읍의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나와서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도움을 청하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은 곡식이 열매 맺지 못해서 양식이 부족한 문제인 것처럼 번역을 했지만 새번역성경이나 공동번역성서는 자식을 유산하는 보다 심각한 문제로 번역합니다.

‑>물로 인한 고통이 그 성읍에 극심했던 것 같습니다.

‑>이때 엘리사가 보이는 반응입니다.

‑>(열왕기상 2:20‑21)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엘리사에게 말씀하셔서 물 근원에 소금을 뿌리게 하시므로 물을 고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행하는 땅은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지고 열매 맺지 못하고 번성하지 못하는 불모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하나님 없이 사는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기준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야 산다는 것,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2:22)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고쳐서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 말씀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산다, 너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가르치는 역할을 엘리야와 같이 감당하는 자가 엘리사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변화를 엘리사가 누리고 있고 엘리사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보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의아한 장면이 나옵니다.

‑>(열왕기하 2:23‑24)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하나님이 너무 하시다 못해 잔인하신 분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장면이며 두 가지를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성경을 보실 때 하나님을 변호하기 위해서 보게 되면 변호가 됩니다. 

‑>또한 성경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는 부분들을 여러 번역본들이나 관련된 책들, 주석들을 보면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두 가지를 고려하지 못하기에 생기는 오해 중에 하나는 '벧엘'이라는 장소입니다.

‑>'벧엘'이라는 장소가 야곱과 여러 가지를 생각할 때 은혜로운 장소이긴 하나 왕정 시대에는 은혜롭지 못한 장소가 됩니다.

‑>벧엘은 나라가 분열되면서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던 여로보암이 금 송아지를 두 마리나 만들어다가 각각 벧엘과 단에 두었으며 왕정 시대 내내 우상숭배의 본거지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또한 벧엘은 앞서 아하시야가 엘리야를 잡아오라고 명령했던 오십부장들이 엘리야를 산꼭대기에 몰아두고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하나님의 사람아 왕께서 내려와 죽으라 하신다' 조롱했던 분위기의 장소입니다.

‑>우상숭배는 오직 자기만 위하는 탐욕과 거짓으로 비롯된 것이기에 벧엘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했던 말씀대로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탐욕을 부리며 심지어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거짓을 행하는 시대, 아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후계자라고 하는 엘리사가 벧엘에 왔을 때에 한 말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의미는 '저주받은 자여 엘리야처럼 올라가 봐라, 꺼져라'이며 저주이자 조롱인 것입니다.

 

‑>두 가지를 고려하지 못하기에 생기는 오해 중에 또다른 하나는 '아이들'이라는 단어입니다.

‑>엘리사를 둘러싼 이들이 최소 사십이 명 이상 오십 명 정도가 되었을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를 둘러쌌던 오십부장의 군대와 비슷한 숫자입니다.

‑>'아이들'로 번역된 원문의 단어는 '젊은이, 청년'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나아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다윗을 위해서 싸웠던 소년들'이라는 표현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나아르, 소년'을 '여린 소년들'로 쉽게 떠올리지만 다윗을 위해 싸웠던 자들, 싸움에 능했던 청년들입니다.

‑>중세 가톨릭이 이 단어를 왜곡해서 십자군 전쟁 때에 '다윗을 위해서 소년들이 싸웠다. 소년들이여 나가라'고 말하여 어린 소년들이 전쟁에 동원되는 참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엘리사가 맞닥뜨린 상황은 단순히 어린 아이들이 떼를 지어서 놀려대는 상황, 대수롭지 않은 상황이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는 오십여 명의 젊은이가 여호와의 선지자를 에워싸고 위협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인 것입니다.

‑>마치 산꼭대기까지 내몰렸던 엘리야의 처지와 비슷합니다.

‑>산꼭대기까지 내몰렸던 엘리야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듯이 엘리사도 이 순간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수십 명의 장병들로부터 엘리사를 구출하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섬기던 다른 신들은 암곰 두 마리도 막아주지 못하는 대조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장면들을 잘 보시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분별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면서 의지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목숨을 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것들이 없으면 못 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가지면 갖는 만큼 의지되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를 보호하지 못하고 책임지지 못합니다.

 

‑>우리를 영원히 보호하시고 책임지시는 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 한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로 확정된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 그 사랑을 의지하십시오, 그 사랑의 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엘리사와 같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세상이 누릴 수 없는 것을 누리도록 우리를 이끌어 온전한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알아가시고 의지하는 복된 한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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