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 (예레미야 36:20‑32) '그 같은 말을 많이 더 하였더라'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사람이 서로 사랑을 할 때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에 차이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일반적으로 더 약해지고 늘 작아지는 사람은 더 사랑하는 쪽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가 더 큰 쪽이 상대방을 향한 마음이 더 커져서 오로지 자신만을 향하기를 바라며 애를 태우는 것입니다.
‑>짝사랑의 경우 상대방이 자신을 바라봐주고 사랑해 주기를 오매불망 바라며 그렇게 되도록 가진 노력을 다하지만 억지로 그렇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억지로, 힘으로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시도는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미화하기도 했지만 오늘날 그런 시도는 스토킹이며, 범죄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보다 더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늘 약해지고 작아집니다.
‑>심지어 왕정 시대에 하나님은 짝사랑 중입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원래 사랑했던 사이라는 것입니다.
‑>죄의 세상에서 방황하던 신세였던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삼으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이시고 부족함이 없이 풍성한 복을 주셨는데 그 복을 받음과 동시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버립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기에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더 복되겠다고 떠나간 사랑하는 대상이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건져내고 또 건져내지만 그것을 빌미로 마음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돌이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잘못된 사랑의 결과로 당하는 비참함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기에 이스라엘을 강제하실 수 없습니다.
‑>그들의 행동을 막으시거나 그들이 자초하는 결과를 바꿔주실 수 없습니다.
‑>돌이키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짝사랑, 이것이 예언서의 구도입니다.
‑>이 구도 안에서 오늘 본문을 들여다보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 백성에게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아 당하게 될 모든 재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재난, 재앙, 환난 등은 하나님의 폭력이 아닙니다.
‑>만약 이것들이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면 폭력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사랑을 강요하시지 않고 다만 사랑하실 뿐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유다에게 임할 모든 재난은 하나님의 벌이 아니라 유다가 자초한 죄의 결과입니다.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을 것이기에 당하게 될 보응입니다.
‑>하나님의 보응이 아니라 그들의 행위가 만들어낼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이에 대하여 겁박하시는 것이 아니라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미리 고지하시고 주의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유다의 반응을 여호야김 왕과 그의 신하들이 대표합니다.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유다의 반응입니다.
‑>(예레미야 36:24) '왕과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힘이 없으니 모든 재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두려워하는 것뿐이고 왕과 신하들은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니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레미야36:23) 하나님의 말씀을 갈기갈기 찢어서 불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지혜로 결과를 달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에 보일 수밖에 없는 반응입니다.
‑>도리어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는 명령으로 엄포를 놓습니다.
‑>(예레미야 36:26)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에게 명령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이것이 왕과 신하들, 가장 힘있고 가장 권세 있다는 자들, 자기들이 무엇이든 해낼 수 있고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여기는 자들의 행동이었습니다.
‑>'왕이 바룩과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하나님이 그들을 숨기셨다'는 짧은 문장 속에서 그들의 조치가 얼마나 무용하고 무익한지가 드러남과 동시에 그들의 힘과 지혜가 하나님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백성이 하나님께 요구하여 세워진 자입니다.
‑>백성이 왕을 요구하면서 기대한 내용입니다.
‑>(사무엘상 7장)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우리라'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줄 자, 우리보다 가장 앞에 앞장서서 우리가 두려워하는 싸움을 대신해 줄 자 그런 왕을 달라고 구했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기대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초대 왕 사울부터 골리앗 앞에서 소년 다윗 뒤에 숨는 모습을 보이고 심지어 다윗이 백성의 인기를 얻자 그를 시기하여 한 사람 잡자고 나라의 병력을 총동원하여 끈질기게 추적하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인간이 기대했던 왕의 실상이었고 유다 말미에 여호야김 또한 하나도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숨기신 하나님, 예레미야를 숨기셨다는 것은 인간 왕이 가진 힘과 지혜가 하나님께 비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인간 왕과 비할 수 없는 힘과 지혜를 가지신 왕 중의 왕이시고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 대하여 어떻게 행하시는가, 인간 왕들과 여호와는 어떻게 다르신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레미야서를 보면서 하나님은 화가 나시면 벌주시는 분으로 보고 있다면 인간 왕이 자기들의 힘을 쓰는 것과 하나님이 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왕중의 왕, 만군의 여호와 되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 대하여 행하시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36:27‑28) '왕이 두루마리와 바룩이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기록한 말씀을 불사른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다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서 인간 왕과 하나님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이나 여호야김과 같으셨다면, 하나님이 죄의 본성을 가진 나와 같으셨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불사르는 여호야김을 그 자리에서 불살라버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왕과 같으셨다면 유다를 비롯한 세상은 진작 남아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이 굳이 예레미야서까지 올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의 하나님은 세상을 불사르시기는커녕 인간들끼리 싸우고 죽이며 불살라진 땅을 바라보며 탄식하십니다.
‑>완전히 폐허가 돼버린 그 땅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이 슬퍼하십니다.
‑>예레미야가 자기 백성의 불행한 처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레미야를 일컬어 '슬픔의 선지자, 눈물의 선지자'라고 하지만 그 슬픔은 하나님의 것이며, 그 눈물은 하나님이 흘리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을 헤아리면서 다시 한 번 묵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다시'라는 놀라운 은혜를 하나님이 여호야김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 때문에 은혜를 은혜로서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마치 복수선언을 하시는 것 같지만 복수선언이 아니라 그들의 힘과 지혜를 앞세운 탓에 자초하게 될 결과를 미리 고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말하는 로마서 1장은 진노가 '벌하심'으로 나타나지 않고 '내버려두심'으로 나타납니다.
‑>'그 결과 그대로 둔다'는 것입니다.
‑>죄 지은 결과를 당하는 것, 그 결과 가운데 내버려져 있는 것 자체가 심판입니다.
‑>하나님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결과를 아시기에 미리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36:32) '이에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네리야의 아들 서기관 바록에게 주매 그가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책의 모든 말을 예레미야가 전하는 대로 기록하고 그 외에도 그 같은 말을 많이 더 하였더라'
‑>하나님이 다시 기록하게 하신 두루마리에는 원래 기록한 모든 내용이 그대로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같은 말을 많이 더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 같은 말'은 '유다 가문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니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 돌아오면 내가 너희를 용서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회복시킬 것이다, 내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입니다.
‑>다시 가져오게 하시어 기록하게 하신 그 말씀에 '너희가 내가 너희에게 전한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내가 너희의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는 이 같은 말을 많이 더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을 깊이 묵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레미야 29:11)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자기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징계와 형벌이 아니라 구원과 회복입니다.
‑>구약을 통해서 우리에게 증명되는 바는 '우리는 돌이킬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언서를 보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자'는 교훈으로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돌이킨 자들, 이미 방향이 하나님께로 돌이켜져 있는 자들입니다.
‑>다만 예레미야서와 같은 예언서를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길에서 돌이킬 수 없었던 우리의 악과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 대신 담당케 하시므로 그가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자신을 버리사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어 내셨으니 우리가 받은 은혜가 큰 것이며, 우리가 받은 은혜에 감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절하실 수 없고 사랑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을 만나실 수 있기를 바라고 구원의 복음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실 뿐만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이 주실 복된 미래와 영원한 희망을 바라보시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예레미야서를 묵상하는 모든 시간에 우리 마음 가운데 기억하시고 고백하시는 결론이 복음 안에 있기를, 복음으로 말미암은 결과이기를 바라며 그런 은혜가 오늘도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 가운데 복음 안에서 충만하게 우리 심령 가운데 부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