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 (갈라디아서3:1‑9) '먼저 복음을 전하되'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은 '율법과 믿음'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오늘 본문은 1절에서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라고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앞선 갈라디아서 1장 6절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라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 대하여 지적하는 다른 복음을 따르는 문제에 대해서 갈라디아서 3장에서 구체화합니다.
‑>핵심 키워드가 '율법의 행위'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의 문제가 '율법의 행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고 의롭게 되는 것에 율법의 행위를 개입시키는 문제, 어떤 복을 받는 것에 인간적인 행위, 종교적인 행위를 개입시키는 문제는 비단 갈라디아 교회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앞선 2장에서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할례자들이 오자 두려워서 자리를 피했던 일을 바울이 언급하며 자신이 베드로를 책망했다는 표현도 나옵니다.
‑>또한 베드로뿐만이 아니라 베드로의 행동을 보고 남은 유대인들도 베드로와 같이 외식했고 그때 바나바마저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을 볼 때에 베드로는 단순히 할례자들과의 논쟁을 피하기 위하여 물러갔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복음의 진리를 알면서도 은혜 안에서 아무런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원리를 실천하지 못하고 도리어 율법의 행위를 신경쓰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일컬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유대인답게 즉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않는 것이라고 앞서서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에게서도 동일한 모습이 있음을 알게 된 바울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에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라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자꾸만 율법적, 행위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하려는 갈라디아 성도들의 모습에 대하여 바울이 제시하는 해결책입니다.
‑>(갈라디아서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다시 말합니다.
‑>새 번역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 공동 번역 성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너희가 보면서도 왜 다른 복음을 이렇게 따르느냐' 번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사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합니다.
‑>성도들에게 질문합니다.
‑>(갈라디아서3: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이 구절을 '복음을 듣고 믿으면 성령 받는다'는 '사람의 듣고 믿음'을 강조하는 결론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로마서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단순히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긴다는 것을 강조하는 교훈이 아니라 (로마서10:16‑21) 맥락에서 이 구절을 들여다보면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는 결론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으나 듣고도 믿지 않았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이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 즉 이방인들에게 찾은 바 되시고 나타나셨다는 것이 로마서 10장의 강조입니다.
‑>결국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하나님께 물을 수도 없는 순종하지 않고 거슬러 말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기에 하나님이 그들 모두를 위하여 일하셨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듣고 믿어라'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들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듣고도 믿을 수 없었던 너희를 위하여 하나님이 일하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들음에서 믿음이 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일하셨다는 복음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라는 갈라디아서의 물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듣고 믿을 수 있게 된 것임을 강조합니다.
‑>너희가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아서 너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그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복음의 기초, 은혜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복음, 율법의 행위로서 어떤 복받을 근거를 찾고 또 구원받고 의롭게 된다고 주장했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바울이 제시한 해결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3:3,5)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하나님이 성령으로 시작하신 일이 변경될 수 있거나 하나님이 성도에게 성령을 주시고 성도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일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성도가 율법의 행위를 추구한다고 해도 복음이 변경되거나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다만 복음은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요, 구원은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3: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괴로움'이라는 단어는 다른 번역본들은 '경험, 체험'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강조되어야만, 성도가 율법의 행위가 아닌 복음의 진리를 따라 경험하는 삶, 죄의 원리가 아닌 하나님의 원리를 행함으로 체험하게 되는 삶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가 되었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아가지 않기에 하나님의 열심으로 말미암은 복음의 진리를 누리지 못하고 자기의 열심으로 말미암는 율법의 행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가 되었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아가지 않으면 율법의 행위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행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의 열심으로 말미암은 복음의 진리를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결과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같이 많은 경험, 체험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려느냐'라고 바울이 강조하면서 안타깝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자 하는 바도 동일합니다.
‑>(갈라디아서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이라는 조건의 복이라는 결과를 제시하신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3: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라고 먼저 복음을 전하시고 약속하시고 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게 되도록 그리하여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어내실 그 믿음을 그에게 의로 정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의 모든 행위를 감당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믿음의 삶에 이르도록 설득하신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으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우리도 의롭게 되었음을 알고 율법이 아닌 복음으로, 육체가 아닌 성령으로 하나님을 아는 성도의 삶을 온전하고 풍성하게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은 성도의 삶을 복음을 더 깊이 묵상하고 날마다 복음 가운데 머무르고,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를 본받고 배우므로 말미암아 더욱 온전하고 풍성하게 누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