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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4-6.13 새벽말씀

권화영2024.06.13 09:1006.13조회 수 4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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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 (사도행전13:1‑12) '성령이 이르시되, 성령이 충만하여'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3장부터 일반적으로 바울의 1차 선교여행의 내용이 시작됩니다.

 

‑>(사도행전13:1‑3) 안디옥 교회에 유대인과 이방인 선지자들과 교사들, 즉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자들이 있었고 이들 가운데서 바나바와 바울이 보냄을 받게 됩니다.

‑>두 사람이 보냄을 받게 된 이유는 유대인이거나 안디옥 교회의 다섯 사역자들 가운데서 특별히 따로 세워질 만한하거나 교회의 공인을 받을 만한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제는 사람에게서 이유를 찾는 습관을 완전히 버리고 모든 이유를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일하심에서 찾는 묵상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보냈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하는 일은 하나님이 진행하시는 일들에 대하여 뒷북치는 일뿐입니다. 

‑>고넬료 사건을 듣고는 베드로에게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먹었느냐고 비난을 하고 안디옥 소문을 듣고는 바나바를 보내어 이게 무슨 일인가 사실 확인을 합니다.

‑>애초에 안디옥 교회를 더 잘 세우라고 바나바를 보낸 것이 아니라 사실 확인차 무슨 일인지 확인해 보라고 보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이해가 아직 예루살렘 교회에도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보냄을 받은 바나바를 통해서 안디옥에서 일하십니다.

‑>(사도행전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표현상으로는 바나바 때문에 교회가 부흥했다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성경은 사람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변화를 사실 그대로 전할 뿐입니다.

‑>바나바가 이런 지도자여서 교회가 부응했다는 말이 아니라 바나바를 변화시키신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일하셨다는 말입니다.

‑>초점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서 강조점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안디옥에서 바나바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다가 이때 사울을 찾으러 갑니다.

‑>(사도행전11:25‑2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옵니다.

‑>사울은(바울) 이때까지 다소에 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가 공인한 사역자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바울이 회심했음에도 예루살렘 교회 사람들, 사도들이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바울이 잠시나마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함께 있는데 그마저도 바나바의 중재로 가능했지만 믿지 않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하는 움직임이 계속되므로 바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게 됩니다.

‑>그 이후로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다거나 연락을 취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소가 바울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예루살렘과의 거리를 보면 멀리 떨어져 있는 곳, 쉽게 닿을 수 없는 거리였습니다.

‑>사도행전 9‑11장까지, 바나바가 다소로 가서 바울을 찾아 데리고 오기까지 시간상으로는 십여 년이 넘는 세월입니다.

‑>바울은 십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소에 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아서 '만났다'는 표현은 어디에 있는 줄을 알고 곧장 가서 만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발견했다'이며, '찾았다'는 말도 '주의깊게 추적했다'는 의미입니다.

‑>바나바가 사울이 어디 있는지를 주의 깊게 찾아서 결국 발견해서 데리고 왔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의 관심 밖에 있었던 다소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배우고 있었기에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보냄을 받습니다.

 ‑>(사도행전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들이 보냄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일해 오셨고 지금 이 순간 성령이 이르시되 따로 세우라고 하셨고, 교회를 잔멸하던 바울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세상에 증명해 보이시기 위하여 바울을 복음의 증인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복음의 증인으로 삼고자 뜻하셨기에 바울을 비롯하여 바나바까지 보냄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은혜로 구원하셔서 은혜로 세우셨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바나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후의 내용을 묵상할 때 사도행전 9장의 장면, 바울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꼭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바울의 모든 말과 설교의 강조점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13:4‑5) 두 사람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의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합니다.

‑>이 말씀에서 이들이 그냥 성경 들고 있었다는 것이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복음을 가지고 있었고, 복음과 성령으로 말미암은 결과, 성도로서 살아가는 삶의 열매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13:6‑8) 두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그 지역의 총독 서기오 바울이 이들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데, 여기서 서기오 바울이 듣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그들이 하고 다니는 이야기를 듣고자 했으며,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가 방해합니다.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는 단순히 방해한 것이 아니라 대적하고 작정해서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끔 힘썼습니다.

 

‑>거짓 선지자, 마술사가 작정을 하고 믿지 못하게 힘쓰고 작정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일에 훼방을 놓았으니 큰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판단이 되시나요?

‑>그래서 우리는 이 사람에 대한 바울의 말을 그냥 당연한 것으로 듣고 넘기지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의 여정을 함께할 때 바울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바예수라는 사람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었습니까?

‑>바울은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으며, 그의 말에 따르면 죽이기까지 하던 자였고 또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던 그런 자가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이 바예수보다 더 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어떠한 심정으로 바예수를 대하였을지 헤아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사도행전13:9)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향하여 가지셨던 마음으로 바울이 바예수를 향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이 충만하여 말했다는 의미는 성령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이해를 해도 무방합니다.

‑>(사도행전13: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굳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성령이 바울을 통하여 전하시는 음성이 영성 뛰어난 카리스마적인 권위로 눈을 부릅뜨고 매섭게 몰아붙이는 말처럼 들리시면 안 됩니다.

 

‑>바울은 모든 서신서에서 자신을 포함해서 편지의 수신자는 항상 교회와 성도들이며, 그들을 향해서 우리가 다 이와 같은 자들이었다는 것을 항상 이야기합니다.

‑>(에베소서2:2‑3)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사단을 가리키는 표현이며, 전에는 우리도 다 마귀 자식이었다, 사단에게 속한 자였다, 죄에 사로잡힌 자들이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모든 서신서에서 바울이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도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자식이었고, 하나님께 속한 모든 의의 원수였기에 모든 거짓과 악행을 일삼고 주의 바른 길을 굳게 하기를 우리 스스로는 그칠 수 없는 자들이었다는 분명한 인식, 죄인 되었던 때의 인식이 바울에게 있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마치 그랬던 적이 없는 자처럼 바예수를 지금 몰아붙이고 있는 상황의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고 모든 서신서에서 이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자신도 동일한 존재였고 동일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바예수를 향해 이르는 말은 판단, 정죄, 경고하는 말이 아니라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의 행동을 안타깝게 여겨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입니다.

‑>(사도행전13: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바울의 말로서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이 말이 바울 개인의 말이 아니라 성령께서 바울을 통하여 하시는 말씀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이 구절을 볼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울을 찾아와 만나주신 장면이 생각납니다.

‑>바울을 죄의 길에서 돌이키게 하심으로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께 속한 모든 의를 따라 진실과 선행이 가득한 삶을 지난 십년 동안 누리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인 바울이 지금 바예수를 향해서 그 은혜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손이 네 위에 있다'는 말은 저주, 심판의 손이 지금 네게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복음이라는 것을 바울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바울에게 손대셨을 때 그의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바예수의 이야기는 그가 앞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분명한 사실은 얼마 동안이었을 것이며, 중요한 것은 주의 손이 그의 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바예수에게도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서기오 바울에게도 있었다는 것,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러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장면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의 은혜를 입었고 다소에 가서 십여 년의 세월 동안 초야에 묻혀서 살았던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십년, 이십년은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결코 아닙니다.

‑>요셉을 통해서 보았던 것처럼 십년의 세월은 그냥 흘러갔던 시간이 아니라 죄에서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렸던 시간입니다.

‑>바울의 서신서들을 보면 그 어떤 삶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정말 놀랍게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지난 십년의 세월 동안 누리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후반부에서 성도의 표본으로 제시되는 사람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이 1차, 2차, 3차에 걸쳐서 자신이 계획하여 열심히 선교를 다니는 것이 아니며, 엄밀히 말해서 바울의 선교 여행이 아닌 하나님이 바울과 동행해 주시는, 바울이 앞서가는 여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끌고 가시는 여정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복음의 증거로 하나님의 일하심의 열매로 세우시는 여정입니다.

‑>바울은 구약부터 사도행전 전반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모든 일하심의 결정체입니다.

‑>아브라함, 다윗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증거입니다.

‑>그가 쓴 모든 서신서는 시편의 노래들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하고 온전하게 쏟아부어주신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가 마침표 하나에도 담겨 있기에 그렇습니다.

‑>성경의 흐름상 바울은 성도의 표본으로 제시되는 사람이기에 바울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의 온유와 긍휼, 하나님의 원리로 행하는 자의 평안과 행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도 바울과 동일한 존재와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인 것을 확인하고 바울과 같이 성도로서 살아가는 기쁨과 감격을 만끽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의 삶을 우리에게 복음의 증인, 증거로서 제시해 보이시는 하나님의 의도이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이 이루시는 복음을 온전히 들으시고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의 삶을 풍성히 누리실 수 있기를, 그런 은혜가 우리가 바울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면서 바울의 삶을 함께 묵상하면서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누려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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