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 (사도행전10:1‑48) '누가 능히 금하리요'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성경은 맥락이 중요합니다.
‑>맥락을 따라 읽으면 이때 이 사건, 이 사람이 등장하는 의미를 알 수 있고 그것으로 드러내고자 하신 하나님의 의도와 강조점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맥락 없이 읽으면 성경의 흐름을 거스르는 엉뚱한 해석을 할 수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 입니다.
‑>이탈리아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 즉 이방인이 확실한 고넬료에 대한 부가 설명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합니다.
‑>(사도행전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우리는 하나님, 경건, 경외, 구제, 기도와 같은 단어들이 나오면 감동부터 받습니다.
‑>그래서 고넬료가 이런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셨다, 이방인 가운데서 구원의 첫 열매가 될 수 있었다고 성경의 흐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엉뚱한 해석을 내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9장의 사울만 연결해 보더라도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찾아올 만한 거리가 있는 사람, 평소에 하나님을 찾는 사람, 하나님을 미리 경외하고 있는 사람, 하나님 없이도 잘 살고 있는 사람을 찾아오시지 않았습니다.
‑>사울 또한 교회를 잔멸하던 사람이었으며, 스스로 밝히는 대로 예수의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했던 사울에게 어떤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은혜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로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조건과 자격을 갖출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에 애초에 그런 사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고넬료도 예외일 수 없으며, 더구나 그는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라는 의미이고 사도행전의 흐름상 고넬료는 아직 복음을 듣지 않았고 성령이 임하시기 전입니다.
‑>만약 고넬료가 복음과 성령이 없이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될 수 있었고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다면 예수가 굳이 오셔야 했고 예수가 오실 이유가 없으면 성령은 더더욱 임하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방인 고넬료가 경건하다, 하나님을 그가 경외한다고 할 때의 의미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또한 유대교의 하나님이라고도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신을 섬기던 고넬료의 종교성을 부각시키는 설명일 뿐 그가 예수에 대해서 듣기도 전에, 성령이 임하시기도 전에 하나님 잘 믿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닙니다.
‑>비슷한 예로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아덴 사람들에게 전한 그들의 종교심에 관하여 하는 설교입니다.
‑>(사도행전17:23‑24)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섬기던 신과 하나님을 연결시키고 있지만 그 신이 하나님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아덴 사람들이 섬기는 알지 못하는 신에서 '신'이라는 단어와 바울이 섬기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에서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동일합니다.
‑>그러나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지만 전혀 다른 대상을 가리키듯이 고넬료가 경외하는 대상도 아덴 사람들이 섬기던 알지 못하는 신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신입니다.
‑>이방종교에도 구제, 기도가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현세와 내세에 좋기 위하여 공덕을 쌓는 행위의 일환일 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동일한 의미로 구제나 기도를 하고 있다면 이방종교적 행태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고넬료가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에 해당하는 단어도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기도했다고 할 때 사용된 단어와 다릅니다.
‑>이 부분을 '그가 신께 항상 빌더니'라고 번역했다면 그 의미가 잘 다가왔을 것입니다.
‑>고넬료는 종교심이 충만했던 사람, 신심이 가득했던 사람입니다.
‑>이것을 굳이 구별점이라고 한다면 구별점입니다.
‑>그러니 이제 사도행전 10장에서 고넬료를 '경건하다, 의인이다'라고 말해도 하나님과 관계없는 표현들인 것을 분별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고넬료를 은혜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사도행전10:4) 하나님이 천사를 통하여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인간의 필요에 반응하십니다.
‑>필요할 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필요하기에 이제 선물로 주시고자 합니다.
‑>고넬료가 다른 신, 헛된 신에게 기도와 구제를 드리던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찾아오셔서 그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하시니 큰 은혜인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행전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체가 되셔서 은혜로 이루어 가십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일하시는 현장입니다.
‑>사도들, 믿는 자들, 아직 믿지 않는 자들도 모두 하나님의 일하심의 대상이며,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은혜의 결과를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시는 일하심의 현장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할 자로 베드로를 택하십니다.
‑>베드로를 택하신 것도 베드로 정도 되니까 이방인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로 택하신 것이 아니라 앞서 사울을 위하여 아나니아를 택하신 이유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일하신다는 것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두 사람 모두를 가르치시기 위하여 베드로를 택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더 다듬어지고 깨어져야 할 부분이 있었기에 그를 택하여 부르셔서 베드로를 통하여 고넬료에게 복음이 전해지게 하는 역사를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 이방인 고넬료와 베드로가 대조 되고 있습니다.
‑>둘의 대조를 통해서 이방의 신을 따르던 고넬료나 하나님을 믿는 베드로나 지금 이 모습으로만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있다는 면에서 하나도 다르지 않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가 특별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넬료의 행동을 통해서 베드로의 무지함과 부족한 부분이 부각되는 것입니다.
‑>천사의 말을 들은 고넬료의 반응입니다.
‑>(사도행전10:5) 이방인의 대표인 고넬료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고 합니다.
‑>(사도행전10:7‑8) 고넬료는 하나님의 천사의 말에 즉시 반응합니다.
‑>반면에 유대인의 대표인 베드로의 반응입니다.
‑>(사도행전10:9‑16) 베드로는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 말씀을 여러번 거부합니다.
‑>베드로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행전10:11‑12) 베드로는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내 귀퉁이가 끈에 매달려서 땅으로 드리워져 내려왔는데 그 안에 온갖 네 발 가진 짐승들과 땅에 기어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골고루 들어 있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10:13‑14) 이러한 환상 가운데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음성이 들리지만 그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볼 때 환상 중에 하늘로부터 내려온 그릇에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부정한 것들로 분류된 것들이 들어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베드로는 나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0:15‑17) 두 번째로 동일한 소리가 들렸을 때도 베드로가 동일한 반응을 보였고 이런 일이 세 번 있었다는 설명에 따르면 베드로는 끝까지 먹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베드로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따랐는데 이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여전히 몰랐던 것으로 보이며, 베드로는 의아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단순히 잡아먹으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대한 베드로의 이해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나누어 주셨던 것은 실제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중에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죄인 되어 있었기에 율법이 있어야 했고 그 율법 가운데서도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류해 주시는 말씀이 있어야 했습니다.
‑>죄인들에게 하나님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신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정함과 부정함의 분류가 필요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하셨으나 인간들이 자기가 주인 되어서 자기가 기준 되고 모든 것을 그렇게 나누어 버리니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만큼은 하나님이 기준 되신다는 사실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정한 짐승, 부정한 짐승, 정한 것, 부정한 것들을 하나님이 기준이 되셔서 나누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 삼으신 것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택하실 만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 되심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하여 택하신 족속이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이스라엘로서는 택함 받을 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으며, 단지 하나님이 택하셨기에, 단지 하나님이 사랑하셨기에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 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10:28) 베드로는 아직 이것을 몰랐기에 여전히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여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하는 것이 위법인 줄 안다는 선민의식, 유대교적 사고 방식이 여전히 그의 안에서 오해와 왜곡으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런 환상을 보고 아직 의아해하고 있는 중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 이방인이 자신을 찾아왔고 이방인들이 찾아온 순간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환상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우십니다.
‑>(사도행전10:19‑20)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사도행전10:29) 그리고 이들로부터 자초지종을 상세하게 듣고 나서 고넬료에게 가서도 베드로는 또 묻습니다.
‑>베드로가 반복하여 묻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방인을 찾으시고 이방인들에게 역사하셨다는 사실과 자신과 유대인들이 받은 복음을 왜 전하라고 하시는지를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유대교적 사고 방식 안에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10:34‑43) 베드로는 여전히 석연치 않은 마음이고 고넬료는 그의 가족과 친지, 지인들을 모았고 그 모든 사람들, 이방인 앞에서 전하는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이 편협되어 있고 대상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10:34‑35)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이 말은 고넬료를 향하여 하는 말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이스라엘 자손들, 유대인들에게 국한된 것처럼 아주 편협하고 배타적으로 말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복음의 결과는 분명히 알고 있지만 그 결과가 미치는 범위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였기에 은혜의 대상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 유대인들, 스라엘 자손들까지였으며, 왜곡된 은혜 의식인 것입니다.
‑>은혜가 무엇인지는 알지만 이 은혜가 미치는 범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베드로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10:44) 그런데 놀랍게도 베드로가 불완전한 복음, 왜곡된 은혜 의식으로 가득한 편협한 복음을 전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십니다.
‑>목회자가 말씀을 전할 때 열심히 노력하고 연구하지만 조금은 잘못된 내용을 전할 수도 있고 일대일 멘토링을 할 때에도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 자리에 성령이 임하시면 불완전이 완전이 되고 무지가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말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복음이 있는 곳, 복음이 기반된 곳에는 성령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10: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게 됩니다.
‑>만약 베드로가 온전한 복음, 복음의 은혜가 미치는 범위를 바르게 이해하고 복음을 전했다면 놀랄 것이 아니라 반가워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인은 예외라고 생각했으며, 전혀 예상치 못하고 기대치 않았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 구원에 대한 베드로의 무지가 깨어지고 왜곡이 바로 잡히는 정말 은혜롭고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사도행전을 묵상해가면서 우리 안에도 자리하고 있을 무지가 깨어지고 왜곡이 바로잡혀 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해왔던 것을 더 견고히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지가 깨어지고 왜곡이 바로잡혀 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시간이 깨어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고 이 말씀 붙들고 묵상하는 시간이 바로잡혀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지금 깨어지는 순간입니다.
‑>(사도행전10:47) '누가 능히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자기가 금하려고 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통렬한 깨어짐,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것, 주구장창 맞다고 생각하며 가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끊임없이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누가 능히 금하리요' 라는 베드로의 마지막 고백처럼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기에 기꺼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담대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평안히 하나님이 주신 삶을 누리는 진정한 변화, 사도행전이 말하는 변화가 우리의 삶 가운데도 열매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