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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4-5.30 새벽말씀

권화영2024.05.30 09:0605.30조회 수 4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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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 (사도행전8:1‑8) '큰 기쁨이 있더라'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의 주체는 사도들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사도들이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사명으로 받아서 목숨 걸고 분투하는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역사하시므로 사도행전의 역사를 주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데반이 죽고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를 당하고 사람들이 다 흩어지더라도 사도행전은 중단되지 않습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하겠다고 백방으로 들쑤시고 다니더라도 교회가 잔멸되는 것이 아니고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버텨도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권자, 책임자이시기에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늘 이미 결론이 나 있습니다.

‑>사도행전도 이미 결론이 나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이미 알려진 결론이 7장까지 이르러 증명이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마귀의 시험에 승리하시므로 이미 끝난 것입니다. 

‑>이미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뜻은 끝까지 가보지 않아도 공생애 시작부터 결론이 나 있는 싸움, 예수님의 승리입니다. 

 

‑>사도행전의 결론입니다.

‑>(사도행전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내 증인이 되어라'가 아니라 '내 증인이 되리라'인 것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명령, 사명이 아닌 사도들의 삶에 성취될 일에 대한 선언이고 선포입니다.

‑>이 선언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를 사도행전 28장까지 가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중반에 이르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는 약속이고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7장까지만 보아도 확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첫째,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의 말씀은 사도행전 2장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나 부활하신 후에나 미리 말씀하셨던 대로 약속의 성령께서 사도들을 비롯한 모든 제자에게 한시에 임하십니다.

‑>사람의 수고나 공적, 누가 더 많이 붙들었느냐 누가 더 성령을 사모했느냐에 따라 임하신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서 기도하고 있었던 제자들 모두 위에 성령께서 약속하신 대로 임하십니다.

‑>그러니 사람의 입장에서는 '홀연히' 성령이 임한 것이며,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은혜로,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둘째, '너희가 권능을 받고'의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자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 자기들이 죄인이었고 오직 죄의 마음과 원리로만 행하여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됨과 동시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음의 진리, 그리스도로서 행하신 십자가 사역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죄의 마음과 원리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를 따라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 사도행전이 증거하는 권능은 대단한 기적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마음과 원리를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를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그 권능이 점차 구현되고 실현되어 가는 것을 사도행전 2장에서 제자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셋째,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러'의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사도행전2: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한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바꾸어 말하면 '땅 끝에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땅 끝까지 나아가지 않았는데 그 사람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나아온 것입니다.

‑>땅 끝까지 가야만 땅 끝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땅 끝에서 온다면 그것도 땅 끝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런 식입니다. 

‑>이 말씀에서 '경건한 유대인들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사도행전 2장 8‑11절에 따르면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무리에는 이방인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에게 일어난 일은 성령 받은 제자들이 방언으로 말하는 일을 그들이 보고 듣습니다. 

‑>그들 각 사람이 난 곳의 언어, 방언으로 하나님 나라의 큰 일, 하나님이 이루신 큰 일, 즉 복음에 대해서 듣습니다.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듣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는 하나님 나라의 일이 벌써 성취된 것입니다.

 

‑>넷째, '내 증인이 되리라'의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사도들이 사로잡혀도 경고와 위협을 받아도 증인이 되었고 옥에 갇히고 돌에 맞아도 증인됨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증인됨은 사도행전 2장이 아닌 7장에서 온전히 증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증명됩니다.

‑>그 이유는 7장에서 스데반이 죽음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이기면 세상에 이기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사단의 최대 무기가 사망이기에 과연 성도가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로 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죄의 권세인 사망을 이기는 것으로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의 스데반 사건은 순교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삶'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도의 삶, 하나님 나라의 삶은 주님의 마음과 원리를 따라 행하는 것이고 죽음조차도 세상의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바꾸지 않을 만한 것이다' 이것을 우리에게 증언하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가서 순교해라'가 아니라 '삶'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죽었느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느냐'를 말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이미 성취된 성도의 삶을 그 어느 것과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은 자신이 받은 은혜와 복을 누리는 삶이 가장 좋고 귀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이 받은 은혜와 누리는 복을 버리지 않고 부인하지 않습니다.

‑>이보다 더한 자유, 평화와 안식, 행복이 없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렇게 말할 만한 것이라는 사실을 신앙 여정 속에서 깨달아 누려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스데반은 이미 성취자요 완성자요 행복자였기에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그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까지 말씀이 완성되었기에 8장부터는 더 이상 새로운 내용이 없으며, 성도들의 삶이 증명되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듯이 그 말씀이 계속 반복하여 성취되는 내용, 동일한 결론으로 다양한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므로 증명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너무나도 멋있고 감격적인 장면들이지만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전혀 다르게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세계관, 세상을 보는 관점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이 그러했듯이 오늘 본문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느냐, 세상의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인식이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행전8:1) '사울은 그가(스데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외형적으로는 세상이 이긴 것처럼 보이고 교회가 잘 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유대교는 박해했고 성도들은 박해를 당했습니다.

‑>유대교는 기득권을 잃지 않고 유지했으며, 성도들은 삶의 터전을 놓고 떠나야 했습니다.

‑>교회, 성도의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도행전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세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마치 잔멸되는 것처럼 보였던 상황입니다.

‑>이렇게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서 안타까워 하면 안 됩니다.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결론을 모르기 때문인데 우리는 이미 결론을 알고 있으니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성도들이 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하여 죄와는 전혀 다른 기준과 개념, 원리와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또 그 죄가 결코 성도를 이길 수 없고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끝까지 반복적으로 증명이 되는 것이고, 사도행전으로 증명된 역사가 성도된 우리의 삶에도 반복되는 것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사도들의 사명감과 충성심으로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의 박해가 극심해지자 사도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온 유대와 예루살렘을 넘어 사마리아로 복음 전파의 범위를 확장해야겠다고 판단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8:1)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이 장면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이루어져 가는 모습을 보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겠다던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는데 도리어 접대하는 일을 맡은 집사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져 나갔습니다.

‑>이들이 떠나가서 한 일입니다.

‑>(사도행전8:4‑6)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빌립이 나아간 곳입니다.

‑>(사도행전8: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까지 이르니라'

‑>스데반의 일로 흩어지게 된 곳입니다.

‑>(사도행전11:19‑21)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란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하나님의 손이 일하시는 것을 보실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의 삶을 세상이 감당치 못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실패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어도 그것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사도행전8:6) '무리가 빌립이 하는 말을 따랐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표현은 빌립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빌립의 말을 유심히 듣고 그가 행하는 표적을 주의 깊게 보면서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따르고 있는 형국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빌립의 말을 따랐다'는 표현은 '받아들였다, 믿고 순종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직까지는 주시하고 집중했다' 의미가 강합니다.

 

‑>큰 박해를 피하여 흩어진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신 결과, 끝까지 주시, 의심하면서 따랐던 그 백성을 향해서 이런 집사님들이 나아가서 복음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결과, 하나님이 일하신 결과, 그 은혜의 열매입니다.

 ‑>(사도행전8:7‑8)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귀신이 쫓겨나가고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걷는 일은 예수님이 행하셨던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지금도 성령으로 역사하고 계시기에 가능한 일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가 '그 성의 큰 기쁨이 있더라'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사람에 의해서 펼쳐져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아는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그 가운데 우리를 어떻게 보호하실 것인지를 아는 자들이고 알아가는 자들입니다.

‑>제대로 알아가고 있다면 담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알아가고 있다면 모든 상황 속에서 평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더 알아가면 되는 것이고, 더 하나님을 배워가면 그 평안이 우리 안에 이미 있고 평안이 누려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다 알고 있기에 평안한 마음, 넉넉한 마음, 온유한 마음, 담대한 마음, 성령의 마음으로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해주고 인내해주고 대신 감당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사도행전의 흐름이고 사도행전의 역사로 증명되는 성도들의 열매입니다.

 

*이미 결론이 나 있는 성도의 삶으로 그 풍성함을 세상에 증명하는 우리가 되기를, 그리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말미암는 큰 기쁨이 우리가 거하는 모든 곳에 늘 충만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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