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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4-5.23 새벽말씀

권화영2024.05.23 09:1705.23조회 수 4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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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 (사도행전4:32‑37) '큰 권능으로 큰 은혜를 받아'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나'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도행전으로 가리키는 바는 예수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는 것, 하나님의 나라가 땅끝까지 확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손가락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행전을 통해 가리키시는 것은 '성도의 변화된 삶의 내용'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을 바라보는 우리의 초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서 사도들이 공회에 잡혀서 갇히는 사건이 나옵니다.

‑>복음서에는 제자들이 잡혀서 갇혔던 경우가 없기에 이들의 변화를 직접 비교해 볼 수는 없지만 예수님과 관련된 사람 중에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혀 있는 장면이 복음서에 나오므로 서로 비교해 보면 복음서의 사람과 사도행전의 성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분봉왕 헤롯이 그의 동생 빌립의 아내를 차지한 것에 대하여 옳지 않다고 간언을 했다가 잡혀서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요한의 입장에서는 정의를 행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옥에서 그리스도에 관한 소문을 들으니 뭔가 이상하여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여쭙는 말입니다.

‑>(마태복음11: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질문합니다.

‑>옥에 갇혀있는 요한의 생각에 자신이 생각하고 그리는 그리스도의 상이 있으니 예수가 그리스도라면 예언대로 자기를 자유롭게 해주어야 마땅하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심지어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예수께 세례를 베풀었던 자인데 예수가 자기에 대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으니 예수가 그리스도가 맞느냐, 당신이 오실 그이가 맞느냐고 질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알았지만 그리스도께서 어떤 사역으로 메시아의 예언을 성취할 것인지는 몰랐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 중에 대표적으로 베드로는 예수님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처음 말씀하셨을 때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그가 그럴 수 없다고 예수님을 막아서면서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했고 실제로 예수님이 잡히실 때에 칼을 뽑아들고 저항하기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베드로가 복음서에서 옥에 갇혔다면 세례 요한과 동일한 반응을 보이고도 남았을 것인데 복음서에서는 갇히진 않았으며, 사도행전에서 갇히게 된 것이니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보아야 할 달, 초점입니다.

‑>상황만 놓고 본다면 베드로는 세례 요한보다 훨씬 더 억울합니다.

‑>베드로는 나면서 못 걷게 된 병자를 고친 일, 베드로의 말대로 하면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 때문에 잡혔으므로 억울하다 못해 원통할 만한 상황입니다.

‑>승천하신 예수를 다시 하강하게 하시는 한이 있더라도 이 상황을 모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도로 매달리든지 인맥에 호소하든지 갖은 시도를 다 해도 될 만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공회의 경고와 위협을 받고 나중에 놓이게 되지만 이것이 간증거리가 될 수는 없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옥에 갇혔다가 놓이게 된 것은 상황이 개선된 것이 아니라 악화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변화된 모습을 설명하려면 풀려난 것, 기도하고 찬송했더니 하나님이 풀어준 것을 강조하게 되면 성도의 변화된 모습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도행전 3‑4장의 강조점은 베드로가 나면서 못 걷게 된 병자를 고친 것, 사도들이 기도하여 옥에서 풀려나게 된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변화된 마음과 원리'입니다.

‑>사도들의 변화된 마음과 원리, 옥에 갇힌 상황 속에서도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져 가는 흐름 속에서도 제자들은 전혀 다른 마음과 원리로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변화를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사도행전4:23‑29) 사도들이 공회의 경고와 위협을 받는 모든 상황에 대하여 한마음으로 했던 것은 대주재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고백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더 알게 해주시고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의 복된 원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서 나타나게 해 주십시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는 변화의 열매를 우리가 누리게 해 주십시오' 라는 성도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마땅한 간구입니다.

‑>죄의 마음과 원리로만 인식하고 판단, 행동하던 사도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로 인식하고 판단, 행동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서 더욱 담대하게 되기를 바라는 모습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의 변화를 소개하는 사도행전의 방식을 잘 분별해서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의 수가 삼천이나 더했다고 했으며, 삼천이나 더한 사람들의 모습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사도행전2:44‑45)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오늘 본문에도 베드로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의 수가 남자만 오천이나 되었고 이 사람들의 모습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사도행전4:32,34‑35)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혹자는 이러한 모습을 초대교회의 특징이라고 소개 하면서 오늘날 교회, 기독교가 따라야 할 모델처럼 제시하기도 합니다.

‑>실제 이 모델을 따르는 여러 진보적인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에 걸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무소유를 권고하시거나 공동생활을 권면하시거나 유무상통의 사회를 기대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델이라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먼저 실천해 보이셨을 것이지만 재산을 파신 적이 없고 제자들에게 재산을 팔아서 가져오라고 하신 적도 없습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성도의 변화를 소개하는 방식은 '물건을 통용했다, 재산을 팔아서 내놓았다'는 것이나 이것은 포인트가 아닙니다.

 

‑>사도행전의 강조점은 사람이 달라졌다는 것, 대표적으로 제자들의 모습이 복음서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새로운 각오와 비전을 가졌거나, 능력과 기술, 재주를 익혀왔거나, 제자들의 주변 정황이 복음을 전하기에 적합하도록 개선된 것이 아닙니다.

‑>외형상으로는 아무것도 좋아진 것이 없으며, 도리어 전에는 예수가 함께 있기라도 했는데 이제는 예수도 없고 없는 예수를 부활했고 부활했는데 승천했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예수가 부활한 결과로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외형적인 증거, 세상적인 변화가 없습니다.

‑>또한 정의가 이기는 것도 아닙니다.

‑>제자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관원들에게 잡혀가고 위협받고 경고를 받습니다.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많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무리들이 삼천 명이 늘어나서 강력한 세력 집단이 되어 사회적 주도권을 잡은 것도 아닙니다.

‑>사도들이 먼저 모든 재산을 내놓은 것도 아니며, 부유하지도 않은 사도들이 어느 날 불쑥 나타나 사람들에게 재산을 팔아 내놓으라고 요구해도 순순히 자기 재산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내어놓을 리도 없습니다.

‑>공동체의 재력과 물력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그나마 있는 밭과 집을 팔아서 함께 나누어 썼으니 물질은 점점 줄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어느 면으로 보아도 복음을 담대히 전할 만한 상황,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일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려고 하는 것, 사도행전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데 복음이 전해지더라, 그런데 복음이 끊임없이 전해져 가고 그 복음을 듣는 자들이 삼천, 오천 끝없이 늘어만 가고, 사람들이 복음에 반응하고 주변 사람을 돌아보는 자비와 긍휼의 마음이 끝없이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가능한 이유이며, 핵심구절입니다.

‑>(사도행전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사도들이 큰 권능을 받았고 무리는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사도행전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권능이고 은혜입니다.

‑>사도들은 그 권능을 받아서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은 그 말씀을 은혜 가운데 받아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된 삶을 누리고 있는 놀라운 역사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권능과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선언이고 이것이 사도행전이 그 손을 들어서 가리키는 달, 초점입니다.

‑>그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보게 하시는 것이 사도행전의 가리키는 초점입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고 격려하는 정도가 아니라 또 제자들에게 좁은 길과 가시밭길을 가더라도 지치지 말라고 독려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친히 하나님이 제자들을 변화시키시고, 친히 하나님이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의 능력이 있게 하시고, 친히 하나님이 믿는 자를 더하게 하시고, 친히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 복음을 통한 삶의 변화가 나타나도록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보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반복되는 단어는 주로 사람들의 반응을 가리키는 표현들이며, '놀라더라, 심히 놀라더라, 두려워하더라, 주목해 보더라' 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반응을 계속해서 언급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이때 가장 놀라는 사람은 당연히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이 원래 이렇게 잘하던 사람들, 이렇게 담대하던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자신들이 담대하게 말하고 큰 권능이 나타나고 믿는 자들이 더해지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계속해서 자신들이 달라진 모습을 확인하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돌보고 책임지고 보호하고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이 보여주려는 달은 '복음사역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하신다' 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누가 어떻게 했고에 집중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이루어 가시는 변화를 주목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바라볼 때 우리 또한 사도들이 누렸던 그 변화를 누릴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바라보면서 그 능력을 의지하고 있으면 우리의 삶 속에 변화가 나타나는 이것이 기독교의 신비입니다.

‑>내가 뭔가 해보겠다고 애써서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기독교가 말하는 변화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고 의지함으로 나아갈 때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나는 변화, 우리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오직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 가는 것이 기독교의 신비입니다.     

 

*기독교의 신비를 누릴 수 있게 되시기를 바라고 그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사도행전을 통해서 바라보며, 확신 가운데 나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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