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 (사도행전2:37‑42)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 14‑36절까지 베드로 설교의 핵심은 '우리에게 이루어진 일은 모두 하나님이 행하셨다' 입니다.
‑>(사도행전2:23)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다'의 의미는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셨다, 살리셨다, 하나님이 다 하셨다는 것을 전하고 있으며, 이 복음을 이루시는 과정에서 사람이 한 일은 전혀 없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음을 강조하려고 유대인들에 대하여 언급한 내용입니다.
‑>유대인들만을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자들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사도행전2:36)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았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로 말미암아 복음을 이루시는 과정 가운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한 목적은 결국 하나님이 살리셨다, 하나님이 다 이루셨다는 복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베드로 설교의 복음에 대한 반응입니다.
‑>(사도행전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이들이 죄인 된 상태를 자각하고 죄인 된 자신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감당하신 역사에 감동을 받았다면 마음에 찔릴 것이 아니라 마음에 안도감이 찾아오고 기대감으로 가득했어야 합니다.
‑>죄에 사로잡혀 있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수밖에 없었지만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요엘과 다윗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하나님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내신 목적대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기에 감사, 감격하여야 했으나 도리어 마음에 찔렸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설교의 초점은 '너희들이 죽였다'가 아니라 '우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마음에 찔렸다는 것은 결국 복음의 본질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셨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셨다는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부활과 승천을 보지도 못한 자들이 그 일로 말미암은 복음을 알아들을 리가 만무하며, 그로인한 질문입니다.
‑>(사도행전2:37)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하나님의 일하심을 선포했는데 자기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슨 일을 행하셨다고는 하는데 그것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기에 묻는 것입니다.
‑>이 반응은 베드로의 설교가 대단하여 이들이 감동을 받아서 특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서에서 있어왔던 반응을 동일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설교했을 때 그 자리에 찾아왔던 신분과 계층이 다양한 수많은 사람들, 일반 민중, 관리들, 군인들이 하나같이 와서 묻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냐' 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관리, 율법교사들, 부자 청년도 하나같이 묻는 것이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느냐, 내가 뭘 해야 하느냐' 입니다.
‑>죄인들의 일관된 모습 속에서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누군가 나타나서 새로운 말을 할 때면 죄인들은 언제나 나아와서 질문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다른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을까 하여 나아온 것입니다.
‑>죄인들의 무지를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두 번째, 새로운 것을 기대함에 있어서 죄인들 간의 차이가 없습니다.
‑>신분과 계층을 막론하고 누구도 행복과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진리이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참되다고 자부하지 못합니다.
‑>죄인들의 한계를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세 번째, 그러한 기대로 죄인들이 질문하는 내용이 항상 동일합니다.
‑>'무엇을 하리까,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우리가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똑같이 묻습니다.
‑>죄의 원리에는 은혜가 없으며, 철저하게 자기가 해야 할 일만 항상 남아 있기에 죄인들은 이러한 사고 방식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무언가 달라지게 하고 기대할 만하게 하려면 자기가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는 복음을 듣고 그 복음에 대하여 은혜를 구하는 반응이 아닌 죄인들이 보일 수밖에 없는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복음서는 이러한 죄인들의 질문에 단 한 번도 대답을 해준 적이 없습니다.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전혀 대답이 될 수 없는 말씀만이 그 질문을 가져온 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복음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누가복음10장) 예수님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라고 물어온 율법교사, 부자 청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라' 말씀하셨을 때에 '내가 그 말씀 다 지켰다'고 하는 율법교사에게 예수님은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사람을 유일하게 돌보아준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마지막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라고 질문하십니다.
‑>이 질문은 율법 교사가 지금까지 자기가 기준되었기에 모든 율법의 말씀을 다 지켰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 기준이 상대에게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상대가 기준이 된 이웃 사랑에 대하여 자기 행위를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질문을 통해서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예수님이 '그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해라' 말씀하신 것은 이렇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영생을 얻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너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지적하시는데 대답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는 관리에게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대답하신 것도 영생 얻는 방법이 아니라 이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자기들의 행위로 구원에 이를 수 있고 영생에 이를 수 있다는 그들의 생각 자체가 틀렸음을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8장)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너희가 할 수 없다,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하시겠다는 복음을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리이까,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질문에는 대답이 없는 것입니다.
‑>죄인은 구원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없는 상태이기에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어주셔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죄인을 구원하신 것이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행하신 일입니다.
‑>이것을 베드로가 성령 받은 뒤에 깨닫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구원의 사역을 감당해 주신 이후에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듣고 난 이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가 어찌할꼬'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기 전에도 대답이 나올 수 없었듯이 하나님이 행하신 이후에는 이미 하나님이 하셨으니 대답이 나올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말씀은 '우리가 어찌할꼬'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조건이 아닌 복음의 선언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히 뉘우치고 돌아서는 것, 구원의 선행 조건이 아닙니다.
‑>죄는 뉘우치고 돌아선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죄를 뜻하는 헬라어 단어는 '하마르티아'이며, '화살이 과녁을 벗어났다'는 의미입니다.
‑>과녁을 벗어난 화살은 뽑아서 다시 제대로 쏘아야 과녁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복음을 설명함에 있어서 그 일, 화살을 뽑아서 다시 정조준하여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과녁을 맞춰주시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사람이 행하는 일은 과녁을 벗어나 있었던 생각과 행동을 멈추고 새롭게 하나님이 정조준해 주신 생각과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구원받는 조건이나 방법이 아니라 구원받은 결과이자 열매입니다.
‑>회개는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음을 깨달은 자들이 할 수 있습니다.
‑>회개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들이 회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회개를 구원받는 조건이나 방법이 아니라 구원받은 결과이자 열매임을 '우리가 어찌할꼬' 묻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회개하여' 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즉 대답이 아니라 이제는 헛된 생각을 멈추고 쓸데없는 행동을 그만두라, 너희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하는 죄된 생각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도 이들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 행동을 멈추고 하나님이 지금 너희에게 주시는 은혜를 그냥 받으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무엇을 할 수 없는 죄인이었던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그대로 받으라고 하는 첫 일성이 '너희가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입니다.
‑>강조점은 '받으라'입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묻는 이들에게 너희가 할 것 없고 '받으라' 말합니다.
‑>우리가 어찌 할 거라는 생각과 행동을 멈추고 그만두라고 말했으면 이제 반대되는 말, 사람의 일에 대한 대가와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말미암은 결과와 열매가 나와야 하므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받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겠다, 하나님이 지금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거저, 값없이, 은혜로, 선물로 주겠으니 받으라는 복음입니다.
‑>이 말씀을 구원의 조건이나 방법으로 오해하는 이유는 '그리하면'이라는 표현 때문이며, 구원에 있어서 사람이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하면'은 조건이 아닙니다.
‑>선물이 선물되고 은혜가 은혜되려면 반드시 무조건이어야 합니다.
‑>원문에 '그리하면'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카이'는 보통은 '그냥, 그리고'라고 번역 되는데 이 말씀에서 유독 '그리하면'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이제 그런 생각과 행동을 멈추시고 그만두십시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십시오 죄사함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입니다' 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성령이 임하시고 나니 자기들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멈추게 되었고, 예수님이 자기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일하심에 담겨 있는 의미가 깨달아졌으며, 이것이 자기들에게 일어난 일이었기에 이렇게 선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확증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2:39‑40)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 죄사함을 받는 것, 성령의 선물을 받는 것 모두 우리의 어떠함으로 되는 일, 사람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약속대로 될 것이니 이 패역한 세대에서 복음을 듣는 여러분 이 복음에 반응하여 구원을 아무런 값없이 받으라 선포하고 있습니다.
‑>결과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음에 이 날의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베드로의 사역의 결과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이기에 이 구절을 보면서 '청출어람'을 떠올리면 안 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뿐만 아니라 약속하신 성령을 주셔서 일하신 결과가 지금 이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는 독특한 표현이 '받은 사람들, 더하더라' 입니다.
‑>'사람이 들은 것'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 '받았다'는 표현이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복음을 베드로가 받았고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주셨기에 당연히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수동형 표현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더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부르신 결과가 지금 삼천이나 믿는 자의 수가 더하는 놀라운 광경인 것입니다.
‑>얼마든지 부르시고, 얼마든지 주시고, 얼마든지 더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행전의 역사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가 전하는 설교를 듣고 복음에 반응하여 믿는 자리로 나오는 광경을 통해서 성도는 내가 믿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기를 원하고, 내가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신 삶이기에 어떤 상황과 형편에도 요동하지 않는 성도의 삶을 우리가 하나님을 더 알아가므로 더욱 온전하고 풍성하게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